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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이 ㄴ보다 세다? 빠르다!…훈민정음 오역 2탄

道雨 2009. 9. 10. 15:24

 

 

 

   ㄷ이 ㄴ보다 세다?   빠르다!…훈민정음 오역 2탄

 

【서울=뉴시스】신동립의 잡기노트 < 145 > =
 
1446년에 창제된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 번역에서 오류가 또 발견됐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대종언어연구소 박대종(46) 소장이 찾아냈다.
앞서 해례본의 凝(응) 자를 잘못 풀이했다고 지적 < 뉴시스 8월26일 오전 8시49분 송고 '똥[똥×·도오옹○]…훈민정음 번역오류?' > 한 학자다.

그 凝에 이어 厲(려) 자마저 오역됐다는 설명이다.

 
 
厲는 훈민정음 牙舌脣齒喉(아설순치후) 각 음의 가획 이유를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글자다. ㄴ에 획을 하나 더하면 ㄷ, ㄷ에 가획하면 ㅌ이 되는 까닭이 바로 厲에 들어있다.

한문으로 쓴 해례본에는 厲자가 7회 등장한다.
한글학회국립국어원,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모두 厲를 '세다, 거세다'로 해석했다.
이를 토대로 국립국어원은 지난해 영문판 '알기 쉽게 풀어 쓴 훈민정음'을 내면서 厲를 strong(스트롱)이라고 옮겼다. 같은 맥락에서 最不厲(최불려)를 '가장 약한 소리'로 국역한 후 영문으로는 weakest sound(위키스트 사운드)라고 적었다.

그러나, '세다'가 아니다.
해례본에 사용된 厲는 모두 '빠르다'는 의미다.
"한글전용=한자배척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순 한문으로 된 훈민정음 해례본 번역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 우리나라의 딜레마"라는 판단이다.

"한자는 영단어와 마찬가지로 한 글자에 여러 뜻이 있어 번역할 때 조심해야 한다. A와 B, C의 세 가지 뜻을 가지고 있는 어떤 한자를 A 하나의 뜻만 알고 있는 사람이 C의 뜻으로 쓰인 한문을 번역할 경우에는 필연코 오역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단국대 동양학연구소가 2008년 말 완간한 세계 최대 규모 한자사전인 '漢韓大辭典(한한대사전)'은 '세차다'와 '촉급하다, 소리가 높고 빠르다' 등 厲의 뜻 39가지 싣고 있다.

"해례본 17쪽 뒷면~18쪽 앞면에 나오는 厲를 살펴보면, 문장의 서두에서 '소리에는 느리고 빠름의 다름이 있다'고 운을 뗐으니 누구나 그 뒷부분을 보지 않고서도 소리의 느리고 빠름을 설명하는 대목임을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이 문장과 직결된 終聲解(종성해)의 訣曰(결왈) 부분에 '전청·차청 및 전탁음을 종성에 쓰면 모두 입성이 돼 그 소리가 促急(촉급)하다'고 했으니 厲는 '촉급하다=빠르다'의 뜻이 분명하다"고 강조한다.

厲 자의 앞 문장이 '소리에는 느리고 빠름의 다름이 있다'이고, 厲자의 뒷 문장이 '그 소리가 촉급하다'이므로 중간의 厲는 당연히 '빠르다'는 확신이다.

厲가 '빠르다=촉급하다'라는 사실은 '文選(문선)'에서 확인 가능하다. 고려 때부터 선비들의 필독서인 문선은 중국에 현존하는 가장 이른 시문총집이다.
문선의 주석인 李善注(이선주)는 凝을 '음조가 느리다', 厲를 '촉급하다=소리가 빠르다'로 주했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필로와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

박 소장은 "厲를 '빠르다'가 아닌 '세다'로 번역했는데 이는 문맥과 맞지 않고 어감상 몹시 이상하다. 기존의 번역자들이 厲자가 나타내는 '촉급하다, 소리가 높고 빠르다'의 뜻을 살펴보지 못했거나 미처 인식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오역"이라고 짚는다.

훈민정음은 牙舌脣齒喉라는 5음으로 크게 분류된다. 각 음은 모양이 서로 닮은꼴이다. 가획 상황을 혓소리(ㄴㄷㅌ)로 파악하면, ㄴ→ㄷ→ㅌ으로 이어지는 가획은 소리가 세지기 때문이 아니라 빨라지는 데 기인한다. 실제로 아주 빨리 '느'를 발음하면 '드', '드'는 '트'로 변한다. 세종대왕(1397~1450)의 가획 이론은 이토록 과학적이다.

해례본은 우리나라 어문규범의 근간이다. 모든 문화사업의 기초다.
"된소리 표기가 일제 강점기 때 전탁으로 뒤바뀐 것을 바로잡지 못한 데다, 잘못된 가획이론을 계속 방치한 상황에서 정부가 세종사업을 강행한다면, 한글의 로마자 표기법과 어문규범 등을 잘못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세종대왕을 모독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영어, 중국어, 몽골어, 베트남어 등 4개 국어판 해례본이 작년에 나왔다. 올해는 일본어와 러시아어 본을 발간할 예정이다. 순한문인 해례본 1차 한글번역이 그릇되면 각 외국어로도 연쇄파급, 오역되게 마련이다.

박 소장은 "훈민정음의 厲 자를 '(거)세다'로 인식함은 오역이며, 그로 인해 확대된 훈민정음 제자·가획 이론의 왜곡 및 '여린히읗'과 '거센소리' 같은 오칭, 그리고 제2차 외국어 오역 및 교육 등을 시급히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거듭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