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작가들의 자존심

道雨 2010. 2. 27. 14:32

 

 

 

              작가들의 자존심

 

<박범신 작가·명지대 교수>

                                                             

 

작가에겐 빵보다도 자존심이 중요하다.

 

문학 가치의 본질은 독자성에 있고, 독자성을 지켜가려면 ‘자존’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훼손당하지 않은 자기존재의 눈으로 세계를 독자적으로 보도록 운명지워진 사람이며, 그것을 통해 세계의 구조적 모순과 허위를 까발릴 권리를 부여받은 사람이고, 최종적으로는 그가 속한 부조리한 세계를 넘어, 좀더 깊고 완전한 세계를 꿈꾸도록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는 사람이다.

그의 부정(否定)은 그러므로 그의 존재 이유이며, 그를 통해 그는 아프게 부정한 세계 너머의 새로운 이상에 대해 말함으로써, 마지막엔 좀더 깊고 높은 생산성을 담보하게 된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작가의 ‘자존’은 그 사회의 풍향계와 같아서 그것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란 전제주의거나, 아니면 새로운 세계에의 꿈과 희망이 사라진 사회라는 것이다.

 

 

최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한 문학단체에 요구한 ‘확인서’를 보면, 우리가 다시 전근대로 되돌아가자는 건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확인서엔 ‘본 단체는 광우병국민대책회의에 소속되었으나 실제 불법 시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음을 확인하며, 향후 불법 폭력 시위 사실이 확인될 경우 보조금 반환은 물론 관련된 일체의 책임을 지겠습니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한마디로 ‘말을 안 들으면 돈을 주지 않겠으며 이미 지원한 돈도 반환하라’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치사하고 참담한 확인서를 요구할 생각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묻고 싶다.

 

‘예술위’는 ‘예술이 우리 모두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으로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사업과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모든 이가 창조의 기쁨을 공유하고 가치있는 삶을 누리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 설립된 기관이다.

작가들의 비판적 사유를 보호하고 창조적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도와야 할 의무가 바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있다.

그런데 저들이 앞장서서 작가들에게 ‘돈 몇푼’을 앞세워 굴욕을 강요하다니, 이 무슨 해괴한 일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설립 목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예술위’의 독자적인 발상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왜 하필 뒤늦게 ‘광우병’으로 뒤통수를 치는가. 예술인을 오히려 보호하고 예술창작을 지원해야 할 ‘예술위’가 ‘광우병’과 ‘촛불’을 앞세워 예술문화단체를 ‘돈’으로 압박하려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작가의 한 사람으로서 비탄을 넘어 정말 참담하고 ‘쪽팔려’ 죽을 지경이다.

잘못된 세계의 부정을 통해 그 너머의 이상과 꿈에 대해 말하도록 운명지워진 작가로서 사회적 이슈에 대해 ‘발언’을 보태는 것은 참으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빛과 소금이 될 터이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엔 약 1800여 시민단체가 소속되어 있다. 확인서를 강요받고 있는 문학단체는 내가 아는 바, ‘불법 폭력 시위’를 주도한 적이 없고 주도적인 단체도 아니다.

 

다시 지적하거니와, 작가에겐 빵보다 자존이 중요하다. 자존에 근거하지 않은 문장이란 노예의 목소리에 불과하다.

그들은 자유롭게 ‘말하는 사람’들이다. 어떤 확인서를 강요해도 그들의 ‘말’은 막지 못할 게 뻔하다. 앞으로는 작가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은 온 국민에게 재갈을 물리려는 짓과 다름없다는 ‘말’을 보태야겠지.

 

작가들까지 ‘돈’으로 길들이고 나면 ‘태평성대’가 될 것이라고 혹시 생각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무지한 바보이거나 전제주의에 대한 병든 숭배자일 것이다.

 

더 나은 세계를 꿈꾸는가.

누구보다 작가들이 그렇다. 작가들의 문장과 발언이 지향하는 것은 최종적으로 더 나은 ‘인간주의’ 혹은 ‘사랑’이라고 나는 감히 믿는다. 더 나은 세계에 대한 열망이 없다면 기실 단 한 문장도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작가회의 도종환 사무총장>

    “굴욕적인 확인서 요구 … 저항 글쓰기 운동 펼칠 것”

       


문화예술위 ‘시위불참 확인서’ 제출 요구 거부

“선비는 목이 잘리더라도 무릎을 꿇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설사 문예진흥기금을 받지 못하더라도 뜻을 굽히면서 잘못된 정책을 따라갈 순 없어요.”

11일 서울 용강동 한국작가회의 사무실에서 만난 도종환(56) 사무총장은 문예진흥기금과 관련해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 대해 화가 단단히 난 듯 보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가 기금 지원 조건으로 ‘시위 불참 확인서’ 제출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낸 것은 작가들을 모독하는 반문화적인 행태라는 게 그의 입장이었다.

예술위는 지난달 “실제 불법 시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으며, 향후 불법폭력시위 사실이 확인될 경우, 기금 관리 규정에 따라 보조금을 반환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작가회의에 보낸 바 있다.
공문에는 “유감스럽게도 우리 위원회는 귀 단체가 2008년도 불법폭력시위단체인 ‘광우병국민대책회의’에 소속돼 있음을 경찰청으로부터 확인한 바 있습니다”라는 문구도 들어있었다.

도 총장은 “작가회의는 고은 황석영 조정래 박완서 정호승 성석제 신경숙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모두 소속돼있는 단체”라며, “이런 작가들이 속한 단체를 불법폭력시위 단체로 규정하고, 향후 행동까지 통제하려는 발상이 말이 되느냐”며 개탄했다.
또 “만약 우리가 폭력을 휘둘렀다면 형사처벌을 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면서, “재정지원을 무기로 문화예술인을 좌지우지하고 단체의 근간을 흔들려는 의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작가회의는 계간지 발간 및 세계 작가 초대행사 비용 등 총 3400만원의 지원금을 받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확인서 제출을 거부함에 따라 사업은 차질이 불가피하다.
지금까지 통권 57권을 내온 ‘내일을 여는 작가’는 정간될 위기이며, 가라타니 고진, 위화 등 세계 유명 작가를 초청해 교류해오던 ‘세계작가와의 대화’도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작가회의 내부에서도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2300여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그냥 각서 한 장 써 주고 돈 받자”고 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사업을 못하더라도 굴욕적인 확인서를 써주는 건 작가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확인서 제출에 반대했다.

“계간지 올 봄호 원고까지 다 모아져있지만, 지원금이 없으면 책을 발간할 수 없습니다. 또 올해는 남미 작가들을 초대할 계획이었지만 그 역시 힘들겠죠. 15년 간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 세계 작가와 교류해왔는데, 한국의 후진적 문화정책이 세계에 다 알려질 겁니다.”

답답한 문제는 현실적인 해결책이 없다는 점이다.

“각서를 쓰면 돈을 주고, 아니면 안 주겠다는 건데, 대응할 방법이 없어요. 작가들끼리 예술위 앞에 모여 글을 낭독하는 퍼포먼스를 벌이든가, 재정탄압이 사라질 때까지 비판적인 글을 쓰는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저항해 보는 수밖에요.”

작가회의 측은 오는 20일 총회 때 회원들의 서명을 받아 정부 정책 전반에 대한 ‘저항의 글쓰기’ 운동을 펼쳐나갈 예정이다.

도 총장은 ‘접시꽃 당신’ 등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시로 이름 높은 시인이지만 예술위를 비판할 때는 격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예술위는 예술 진흥 사업을 지원할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지, 예술단체 검열과 통제를 위해 생긴 단체가 아니에요. 김병익 전 예술위원장도 작가회의 소속입니다. 예술을 위해 수십 년간 함께 일해 온 동지들한테 이게 무슨 행태입니까.”

도 총장은 “정부도 이제 원칙과 정도를 지켜야 할 때”라며, 정부에 대한 충고와 비판도 잊지 않았다.
“예술위 ‘한 지붕 두 위원장’ 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 입맛에 안 맞으면 쫓아내고, 재정 탄압하고 이런 일들이 자행되고 있어요. 예술인은 자존심과 긍지로 사는 사람들인데, 이렇게 길들이기를 하다니요. 국민은 영원하지만 권력은 짧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양지선 기자 dybsun@kmib.co.kr

 

 

 

 

 

    3,400만원에 자존심을 팔라고?

 

                                               - 문인들이 뿔났다

 

"3400만 원에 문학의 자존심을 팔 수는 없다."

한국작가회의 정기총회가 열린 지난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중부여성발전센터 강당 곳곳에서 나온 목소리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지난달 작가회의에 3400만 원의 보조금 지급 조건으로 불법시위 불참 확인서 제출을 요구한 일에 대해 원로부터 신진까지 문인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앞서 유인촌 문화체육부 장관은 "예술가 입장에서는 기분 나쁜 일"이라며 한 발 물러섰지만, 문인들의 반발은 다른 문화예술 영역으로 확대될 조짐이다.

향후 불법시위 사실이 확인될 경우 보조금 반환을 비롯한 일체의 책임을 지겠다는 확인서를 예술위가 작가회의에 요구한 일이 이날 총회에서 특별안건으로 올라오자, 최일남 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은 "현 정부의 문화정책이 얼마나 황당한가를 보여주는 사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도종환 전 사무총장은 경과 보고와 함께, 한 원로 문인이 작가회의에 3400만 원을 익명으로 전달한 사실을 회원들에게 전했다. 3400만 원에 작가의 자존심을 팔 수 없다는, 무언의 시위다.

나종영 신임 부이사장 역시 "그 돈은 매우 상징적인 것"이라며 "보조금 없이도 지낼 수 있다. 작가들이 어떤 입장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총회에 참석한 문인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정치 성향, 연령 등에 관계 없이 곳곳에서 박수 소리가 터져나왔다. 보조금을 미끼로 문화예술인을 길들이려는 시도에 대한 반감이 워낙 강력했기 때문.

한 작가는 "자존심 없는 예술가는 시체"라며, "머지 않아 현 정부는 분노와 저항의 펜이 가진 힘을 생생하게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시위 불참 확인서를 요구한 일에 대해, "행정적으로 확인이 필요하다면 섬세하게 접근해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던 유인촌 장관에 대해서도, 그는 "창작을 관리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한계가 명백하다"고 선을 그었다.

 

<성현석 기자>

 

 

 

 

작가회의 도종환 시인이 회원에게 보낸 글

 

안녕하세요?

도종환입니다.


매섭던 추위 끝에 하루 종일 잔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비를 머금은 잿빛 하늘처럼 마음이 온종일 무겁습니다.

어제 아침 작가회의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였습니다.

<굴욕적인 확인서 제출을 거부한다>고 검은 글씨로 쓴 현수막에 앞에 앉아 염무웅선생님께서 낮고 무거운 음성으로 성명서를 읽으셨습니다.


지난 1월 하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문인단체인 우리 한국작가회의를 불법 폭력 시위단체로 매도하면서 불법 폭력시위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향후 불법 폭력 시위 사실이 확인될 경우는 지급한 문예진흥기금 보조금을 반환하고 책임을 지겠다는 확인서를 써서 2월 10일까지 제출하라는 공문을 보내왔습니다.


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2월 6일의 이사회에서는 ‘이 확인서는 각서다’, ‘굴욕적이다’, ‘굉장히 큰 수모다’, ‘돈으로 작가를 길들이려고 하는 행태다’, ‘적극적으로 대응하자’, ‘배수진을 치고라도 싸워야 한다’ 등등의 발언이 나왔습니다. 


“예술이 우리 모두의 삶과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일하는 작가 예술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몇 푼의 보조금을 미끼로 작가 예술인들을 길들이려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여러 날 우울하였습니다. 물론 이것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독자적인 결정이라기보다 자본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이명박정부의 반문화적 행정폭력을 그냥 지시대로 따르고 있는 것일 겁니다.


기자들은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고 우리에게 물었습니다.

실제로 대응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확인서를 써주면 보조금을 지급하고, 안 쓰면 지원할 수 없다는 상황에서 작가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하는 순간 우리는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오는 것을 감내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57호를 발행한 <내일을 여는 작가>의 발행이 중단될 수가 있습니다. 이명박정부의 경제적 탄압에 의해 정간 또는 발행 중단 사태가 찾아오는 것이지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확인서 제출 요구를 거두지 않는 한 이런 사태가 곧 찾아올 게 뻔합니다. 지난 해 12월 말 문예진흥기금 사업에 선정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뒤 추진해온 <내일을 여는 작가> 봄호의 편집이 거의 완료되었는데, 고료를 지급할 수 없는 사태가 찾아오게 됩니다. 작가들에게 문예지 발행을 중단시키는 일은 발표지면을 빼앗아가는 일이면서, 창작의 공간 하나를 무참하게 짓밟아 버리는 일이라는 걸 현 정권은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또한 16회째 진행해온 <세계작가와의 대화> 행사를 중단하게 됩니다. 그동안 일본의 가라따니 고진, 칠레의 아리엘 도르프만, 미국의 리타 더브, 중국의 모옌과 위화, 베트남의 바오닌, 올해 아일랜드의 클레어 킬로이 등 거의 모든 대륙의 작가를  초청하여 우리 문학을 세계에 알리고, 세계 여러 나라의 문학에 대한 이해를 넓혀오던 국제 행사를 중단하게 됩니다. 만약에 여기서 이 행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게 되면 우리는 이렇게 국제 교류를 멈출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전 세계 작가들에게 알리고 설명하고자 합니다.


<4. 19 50주년에 돌아보는 한국문학>이란 행사도 지원 대상에 선정되었던 사업입니다. 이 행사도 취소해야 합니다. 올해부터 관행적인 세미나에서 벗어나 한국문학의 미적 갱신을 위해 문학판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자는 취지로 이 세미나를 계획하였습니다. 올해부터 매년 연속 기획으로 진행하고자 했고, 작가회의 전체 회원이 모이는 수련회나 작가대회 시기에 개최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계획이 좌초되고 말 것 같습니다.


사실은 지난 해 여름 <고교생 백일장> 행사도 기업의 스폰서를 받지 못해 회원들의 특별회비를 거출하여 실시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지원을 해주던 공기업에서는 이번에 보낸 것과 같은 내용의 공문을 받았는데 정부의 지시를 어기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재정적인 탄압과 압박은 지난해부터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올해 들어서면서 더 직접적인 제재를 가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경제적 탄압을 있는 그대로 당하고 핍박받으면서 현 정권의 부도덕함을 증거하든지, 아니면 공세적으로 싸워서 문제를 해결하든지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싸워서 이 난국을 헤쳐 나가야 할지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저와 이번 집행부가 무능하고 정치력이 없어서 이 지경까지 온 건 아닌지 반성하면서 책임을 통감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무기는 글을 쓰는 일입니다. 2,300여 회원 모두가 이명박 정부의 반문화적 행태와 정치, 경제, 환경, 사회, 문화, 복지 전반에 걸친 부당함과 천박함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글을 이 탄압이 멈추는 날까지 신문을 포함한 모든 매체에 지속적으로 쓰실 수 있을지, 우리가 심사나 사업심의나 작품 발표 등을 통해 협력하고 있는 문화예술위와의 관계를 중단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을지, 문학적 행동으로 싸운다면 어디까지 싸울 수 있을지, 이 싸움을 이끌어 갈 별도 조직을 구성할 필요가 있을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문화 관련 단체들과 연대해서 싸워야 할 것인지, 재정지원을 받지 못한다 해도 우리 힘으로 작가회의를 살려내고 보란 듯이 일을 해 낼 수 있는 자립적인 재정구조를 갖추는 일은 가능할 지 총회 자리에서 발언하여 주시고 대안을 마련해 주시기를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공허한 외침이나 실현 불가능한 싸움을 제안해 놓고 물러나 관망만 하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 힘으로 해낼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일들을 지금 당장이라도 전화나 메일로 알려 주셔도 좋습니다.


작가회의는 지난 시절 이보다 더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싸웠습니다. 감옥에 끌려가고, 직장에서 쫓겨나고, 책을 빼앗기고, 고문을 받으면서도 작가정신을 지켜낸 바 있고, 한 시대의 맨 앞에 서서 싸우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민족의 현실을 걱정하고 정권의 부도덕함에 맞서는 일이라면 생존의 위협을 무릅쓰고 싸웠습니다.

문제는 이 어렵고 난감한 국면을 어떻게 슬기롭고 힘차게 헤쳐 나가야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혼자의 힘으로는 어렵습니다. 이사장이나 이사 몇 몇의 힘으로도 불가능합니다. 작가회의 회원 여러분의 조직화된 지혜와 결집된 힘이 아니고는 돌파해 내지 못합니다.


임기가 거의 다 끝나 가는데 어젯밤 자정 가까운 시간까지 사무실에 앉아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이게 무슨 팔자인가 싶기도 합니다. 언론 보도를 접하며 궁금해 하시기도 하고, 놀라시기도 할 것 같아 지금 처한 작가회의의 현실을 회원 여러분께 있는 그대로 알려 드립니다. 회원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리고 조직 운영을 잘 하지 못해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 데 대해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찬비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총회에서 뵙겠습니다.



2010. 2. 9.


도종환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