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동안 음악회만 시청하라는 방송사들
<한국방송> <문화방송> <에스비에스> 등 3개 공중파 방송은 어제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2시간 동안 ‘밴쿠버 동계올림픽 개선 국민음악회’를 생중계했다. 이 음악회 때문에 각 방송사는 애초 내보낼 정규 프로그램들을 방영하지 않거나 시간대를 조정했다. 시청자들은 음악회가 진행되는 동안 꼼짝없이 다른 프로그램을 보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이 유례없이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을 축하하기 위해 한바탕 신나게 노래하고 즐기는 자리를 마련한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방송 3사가 일제히 음악회 개최에 달려들고 공동 생중계까지 한 게 바람직한가에 이르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방송사 쪽은 애초 개별적으로 음악회를 추진하다가 대한체육회에서 “선수들이 피곤하니 한꺼번에 하는 게 좋겠다”는 뜻을 전해와 합동음악회를 연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아무리 사정이 그렇더라도 방송 3사의 음악회 공동 생중계는 시청자의 선택권 박탈이요 전파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방송사들이 올릭픽 공동중계 합의에 실패한 것과는 달리 음악회에는 쉽게 의기투합한 것도 쓴웃음을 짓게 한다. 올림픽 경기 중계는 시청자에 대한 서비스 부족이요, 음악회는 서비스 과잉이니 앞뒤가 바뀌어도 한참 바뀌었다.
시청자 입장에서 보면 정작 올림픽 기간에는 에스비에스의 중계권 독점으로 다양한 경기 중계를 접하지 못하고, 이번에는 음악회 때문에 다른 프로그램을 못 보는 이중의 시청권 박탈을 당한 셈이다.
방송 3사의 합동음악회 개최가 더욱 씁쓸하게 다가오는 것은 우리 사회에 드리워진 획일주의, 국가주의의 어두운 그림자를 다시 확인하기 때문이다.
이런 대규모 이벤트의 뒷면에는 스포츠의 본질과는 무관한 국민화합, 국운상승, 민족적 에너지 결집 따위의 거창한 정치적 구호도 어른거린다. 모든 방송사들이 음악회 중계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은 것도 그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번 합동음악회가 현 정권의 방송 장악이 완결됐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나오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이번 겨울올림픽에서도 확인됐지만 우리의 젊은 선수들은 이제 국가나 거창한 명분 등에 집착하지 않는 경쾌하고 발랄한 감성의 소유자들이다. 그런데 정작 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행사를 여는 방송사들은 구태의연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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