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무상급식을 찍고 첼로까지

道雨 2010. 3. 5. 12:18

 

 

 

         무상급식을 찍고 첼로까지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추진하다가 도의회의 반대로 좌절된 무상급식은 지방선거의 핵심 쟁점이 되었다. “무상급식은 사회주의적 발상이다”라며 호들갑을 떠는 집권세력의 반응은 진보·개혁진영에 ‘반엠비(MB)’나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구호가 어떻게 구체화되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었다.

 

이 논쟁의 핵심은 우리 사회에 어떠한 복지가 필요한가이다.

박정희식 사회발전 전략의 후과로 우리 사회의 지배적 복지 관념은 ‘시혜적 복지’이다. 복지를 빈민이나 걸인에 대한 적선 정도로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복지는 항상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맨 뒤로 밀려나고, 그 결과 저소득층은 항상 근근이 연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실제 한국의 복지예산 등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바닥권이다. 한국은 ‘복지병’을 한 번도 앓아본 적이 없다.

 

이제 복지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전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G20’ 소속 다수 국가가 시행하고 있는 ‘보편적 복지’ 정책은, 복지야말로 수요와 일자리를 창출하고 사회를 안정시킴을 보여주었다.

무상급식 정책도 단지 공짜 밥을 주자는 것이 아니다. 이 정책의 요체는 헌법 제31조가 규정하는 ‘무상 의무교육’을 온전히 실현하자는 것, 저소득층의 부담을 줄여 이들의 실질소득을 올리자는 것, 저소득층 학생이 어릴 때부터 자기모멸감을 느끼는 것을 막고 사회통합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무차별적으로 무상급식을 하면 부자만 득을 보고, 저소득층을 위한 다른 교육예산이 부족해진다는 집권세력의 그럴듯한 주장은 “악어의 눈물” 격이다. 집권세력이 부자감세, 서민증세를 포기하고 난 후 이런 말을 한다면 경청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역으로 묻고 싶다. 현재 초등학교 수업료는 부자와 빈자 무관하게 받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이 정책도 포기해야 하지 않겠는가.

 

예산이 없다는 주장에도 솔직함과 진정성이 없다.

서울시의 경우 오세훈 시장의 역점사업인 ‘디자인 서울’이나 ‘한강 르네상스’ 등에 4년간 8조원가량이 들어갔다.

경기도의 경우 심상정 진보신당 전 대표가 “4대 거탑 사업”이라고 명명했던 성남·용인·안양의 시청사 및 도청 신청사의 건설비용은 3조7000억원이 넘어선다. 이런 전시성 예산만 줄여도 다른 교육예산을 줄이지 않고 무상급식 예산을 마련할 수 있다.

한나라당 소속 인사가 기초단체장인 성남과 과천 소재 학교를 포함하여 전국의 1500여 초중고교가 이미 무상급식을 하고 있으며, 여당의 원희룡 의원도 다른 복지예산의 희생 없이도 전면적 무상급식이 가능하다고 단언하지 않았는가.

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지적한 것처럼, 무상급식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의 의지의 문제다.

 

최근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첼로를 켜고 있는 자신을 표지사진으로 한 책에서 “모든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나라”가 그의 꿈 가운데 하나라고 밝혔다.

감흥이 일었다.

 

향후 무상급식을 둘러싼 논쟁은 ‘사회권’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로 발전해야 한다.

성별이나 정규직 여부와 관계없이 동일 노동에 대해서는 동일 임금을 받는 사회, 성실하게 노동한다면 교육비와 주택 마련 부담에서 자유로운 사회, 아무리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더라도 소질만 있다면 아마추어 첼리스트가 될 수 있는 사회는 한낱 꿈이 아니어야 한다.

이 점에서 “역동적 복지국가”(복지국가 소사이어티) 제안, “무상급식, 아동수당, 공공주택, 사회적 일자리 등 보편적 복지연정”(이계안) 제안은 의미가 크다.

무상급식을 기본으로 찍은 뒤 일자리와 주거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첼로까지 나아가자.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