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권상황에 대한 유엔 보고관의 개탄
“1987년 이래 인권분야에서 상당한 진전을 성취한 한국에서 지난 2년 동안 전반적인 인권과 특히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가 축소돼왔음을 우려한다.”
지난 6일부터 12일간 우리나라 표현의 자유 침해 상황을 조사해온 프랑크 라뤼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어제 조사를 종결하면서 내린 결론이다.
그는 지난 20년 가까이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이 되고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개최국이 될 정도로 경제적으로 발전한 점을 평가하면서도 이것만으로는 국제적 지도국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인권을 존중하는 민주적 통치 모델을 따르지 않고는 국제사회의 존경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미네르바 사건이나 박원순 변호사에 대한 국가의 명예훼손 소송, 피디수첩 사건, 전교조 교사의 시국선언 및 야간집회 금지 등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국내 현안을 일일이 거론했다. 그는 이들 사안이 국제 인권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과도한 침해라며 우리 정부에 시정을 촉구했다.
표현의 자유는 제한될 수 없으며, 어쩔 수 없이 제한해야 할 경우라도 필요성과 비례성의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뤄냄으로써 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유치할 정도의 국격에 도달했다고 자찬하는 나라로서 이런 지적을 받게 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정부가 진정 선진사회를 지향한다면 그의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인권현실의 퇴행을 막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라뤼 보고관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을 보면 우리 정부에 그런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는 한국 정부의 초청에 따른 공식방문이었음에도 대통령과 총리는 물론 장관 가운데 한명도 만날 수 없었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검찰총장 면담과 국정원 방문도 이뤄지지 않았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상임위원들과의 공식면담도 거부했다고 한다. 심지어 국정원의 사찰 의혹까지 제기됐다.
라뤼 보고관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의사 결정권자와의 면담은 인권문제에 대한 정권의 관심을 보여주는 척도로서 중요하다.
“손님을 불러놓고, 주방장만 만나라고 하는 꼴”이라는 그의 평가는 이 정권의 인권 경시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을 함축한다.
정부는 더이상의 국제적 망신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라뤼 보고관의 보고서가 내년 6월 인권이사회에서 채택되기 전에 적극적 개선조처에 나서길 바란다.
<한겨레신문 2010. 5. 18 사설>
“한국, 말·글·집회의 자유 제한 놀랍다”
- 라 뤼 유엔 특별보고관 방한 결산 회견
17일 출국한 프랭크 라 뤼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1년 뒤에 한국을 다시 찾겠다고 말했다. 얼마나 개선됐는지 점검하겠다는 뜻이다.
이날 출국 전 그의 기자회견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급격히 후퇴하고 있는 국내의 실상이 전방위적으로 소개됐다. 현 정부 출범 후 시민단체나 진보성향 지식인들이 제기한 문제와 일맥상통했다. 국내 표현의 자유가 급속히 약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국제사회로 번지는 상황이다.
라 뤼 보고관은 이날 국가와 사법제도를 통한 표현의 자유 억압을 지적했다. 그는 “표현의 자유 제약은 유엔의 시민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ICCPR)에 규정된 범위를 넘어서는 안되며 법률로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국 정부가 자의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통제해 온 행태를 비판한 것이다.
라 뤼 보고관은 촛불집회 이후로 교통을 방해한다거나 폭력집회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등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집회·시위에 대해 사전 금지통고를 내리고 있는 점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 및 이적표현물 소지죄)가 모호하게 적용돼 아직도 처벌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도 개선을 권고했다.
그는 이어 표현의 자유의 다양성이 원활히 확보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민간기구라고는 하지만 위원장이 대통령의 임명을 받아 활동하는 등 사실상 정부에 비판적인 인터넷 글을 투명한 절차없이 삭제 권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병성 목사가 인터넷 게시판에 쓴 ‘쓰레기 시멘트’ 글과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의 보이콧 운동 게시물이 업무방해라는 이유로 삭제 권고받은 것을 예로 들었다.
대기업·신문사·외국자본 등이 방송에 진출하도록 개정된 방송법에 대해 “미디어 소유를 집중시켜 매체의 다양성을 침해하고 다양한 의견 표출 기회가 상실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무원이 ‘정치적 중립’을 이유로 개인적인 정치적 의사 표현이 금지돼 있는 것에 대해서도 “개인적이거나 근무 시간 이후의 의사표현은 특히 보장돼야 하며, 특정 노조원이라 하더라도 관계없다”고 말했다.
국방부의 불온서적 반입 금지에 대해서는 “한 인간으로서의 지위가 군인으로서의 지위를 앞선다”며 “특정 책을 금지하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비민주적인 처사”라고 말했다.
국가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지만 아무런 제동장치가 없다는 점도 지적됐다. 특히 인권위가 주요 현안마다 ‘침묵’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출했다. 표현의 자유 논의에 이데올로기가 개입돼서는 안 된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라 뤼 보고관은 “상임위원 면담 요청이 성사가 안됐고, 뭔가 과거와는 다른 징조”라며 “인권위원 선정 절차가 공식적인 자문 절차도 없고 후보의 자질을 평가하는 과정도 없는 것은 개선돼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는 “한국이 국제적으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경제·기술적 기량을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인권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국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엔보고관, 한국정부 비협조…일찍 떠나고 싶었다
- "촛불집회 이후 2년간 표현의 자유 크게 위축
- 선거는 토론의 장, 4대강 등 비판 막는건 잘못"
- 프랑크 라뤼 유엔보고관 출국 기자회견
프랑크 라뤼(58)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17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촛불집회 이후 2년 동안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크게 위축됐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4대강 사업 비판과 무상급식 운동에 대한 선거관리위원회의 제재는 중단돼야 한다"고 밝혔다.
라뤼 보고관은 지난 4일부터 시작된 방한 조사 일정을 마치고 이날 오후 출국했으며, 출국 직전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그동안의 조사 내용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내년 6월까지 유엔인권이사회에 한국의 의사·표현의 자유 실태에 대한 공식 보고서를 제출하게 된다.
라뤼 보고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 집회·시위의 자유
△ 인터넷 실명제
△ 국가의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 등
이명박 정부 들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지적됐던 사건에 대해 한국 정부에 개선을 권고했다.
그는 표현의 자유가 퇴보한 대표적 사례로 정부에 비판적인 인터뷰를 했다는 이유로 국가정보원이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건과, 광우병의 위험성을 보도한 < 문화방송 > '피디수첩' 제작진이 기소된 사건을 꼽았다. 또 그는 "공영방송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장이 바뀌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4대강 사업'과 무상급식 등 6·2 지방선거 쟁점과 관련해, 라뤼 보고관은 "정치에 관한 토론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져야 하는 기간이 선거인데, 어떠한 선전이나 집회도 못하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게다가 선거 시작 6개월 전부터 이를 금지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는 "내년에 다시 방한해 권고사항이 잘 이행됐는지 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라뤼 보고관은 자신에 대한 국가정보원의 미행·사찰 논란에 대해 "매우 아쉽다.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라면 정부의 제재가 없어야 한다"며 "다만 방한 기간 중 만난 사람들이 피해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정부가 자신의 조사 활동에 비협조적이었다는 인권단체들의 지적과 관련해선 "대통령, 국무총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국방부 장관, 행정안전부 장관, 국정원장, 경찰청장 등과의 면담을 외교통상부에 요청했지만 한 건도 성사되지 않았다"며 "내가 아닌 다른 특별보고관이었다면 벌써 한국을 떠났을 것"이라고 강한 어조로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손님을 우리 집으로 초대했다면 내가 손님과 대화를 하지, 주방장보고 손님과 대화하라고 시키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통상적인 특별보고관들의 방문에 비추어 대통령, 국무총리 면담 요구는 과도한 것"이라며 "그의 발언으로 정부가 특별보고관 활동에 비협조적이었던 것으로 비치고 있는 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손준현 선임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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