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과잉경쟁의 저주

道雨 2010. 7. 17. 12:09

 

 

 

                   과잉경쟁의 저주
»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
 
 
한국에서 사람들이 모이면 언제나 ‘평등’에 대해서 말한다. 아파트 ‘평’수와 학교 ‘등’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아파트 가격으로 온 나라가 들썩인다. 학교 앞 담장에는 명문대학에 몇 명 합격했다는 큰 펼침막이 걸려 있다.
정말 온 국민이 ‘평등’에 매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왜 그럴까?

 

많은 경제학자들은 시장경쟁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기 때문에 공공의 이익에 봉사한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지나친 경쟁은 비용을 증가시킬 뿐 아니라 비생산적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교육과 주택 시장이다.

이 두 영역은 한국에서 가장 개인적인 경쟁이 극심하고 공공성이 약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은 공교육비 지출은 바닥이고, 사교육비 지출은 최고이다. 공공주택 비율은 최하위권인데, 주택가격은 최상위권이다.

 

 

얼마 전 서울대 박세일 교수는 “우리 사회에 경쟁이 아직 부족하다”고 말했지만(<한겨레> 7월5일치), 거꾸로 나는 과잉경쟁이 더 문제라고 본다. 그는 “경쟁은 불편하고 비인간적인 측면이 있지만 경쟁 없이 인간과 공동체가 발전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는 절반만 맞다.

오히려 과잉경쟁은 낭비적 비용 지출뿐 아니라 불평등의 증가로 사회를 파괴할 수 있다. 사교육 과열, 기러기 가족, 부동산 거품이 그렇다.

 

미국 경제학자 로버트 프랭크는 <승자독식사회>에서, 사람들이 경쟁에 몰두하는 이유로 지나친 보상의 차이를 지적한다. 특히 최고 실력자의 사회적 가치보다 과도한 보상이 주어지는 경우가 문제다.

한국에서도 최상위층의 보상은 빠른 속도로 커지는 반면 나머지 사람들의 보상은 작아지고 있다.

2009년 500대 기업 신입직원 평균초임은 연 3138만원인 데 비해 중소기업은 2010만원으로 무려 1128만원이나 차이가 났다. 기업 임원의 월평균임금은 약 781만원인 데 비해, 임금근로자는 약 202만원에 불과했다. 대기업 임원의 개인 연봉은 공개하지 않지만 평균 1억~2억원, 최고경영자는 5억원이 넘어 근로자 평균임금의 수백 배에 달한다.

 

물론 자본주의 경제에서 능력 있는 사람이 많은 보상을 차지하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그런데 수능 1점과 같이 근소한 차이로 임금의 2배, 아니 200배 차이가 생긴다면 어떨까?

최상위층과 나머지의 격차가 지나치게 커질수록 모두가 학력경쟁, 과외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경쟁의 초기 단계에서는 ‘재빠른 소수’가 유리할지 모르지만, 모든 사람이 경쟁에 뛰어드는 단계에 이르면 비용이 증가하고 모두가 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는 ‘경쟁의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그러면 과잉경쟁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역사적으로 보면 시장의 지나친 경쟁을 줄이기 위해 사회는 ‘게임의 법칙’을 규제했다.

사치를 규제하는 특별소비세, 부유층에 대한 누진적 소득세, 정치자금의 모금상한액이 대표적이다. 유통점 영업시간 제한, 주택담보대출 비율 규제, 고속도로 속도제한, 심지어 일부일처제도 소모적 경쟁을 줄인다.

 

교육과 주택 부문은 더욱 중요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과 미국은 공립학교를 많이 세우고 대학의 문턱을 낮췄다.

오이시디 국가들의 공공주택 비율은 25~45% 수준이다. 헤리티지재단이 발표하는 ‘경제자유지수’가 높은 싱가포르의 공공주택 비율은 85%에 달한다. 홍콩도 45%다. 좁은 땅에서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 지나치게 경쟁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지금 한국 사회는 무자비한 승자독식사회로 변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사회적 합의를 통해 보상의 격차를 줄이고 경쟁을 완화해야만 과잉경쟁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런 합의는 사회정의는 물론 경제적 효율성을 위해서도 필수조건이다.

최근 유행어가 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은 결국 인간과 공동체를 불행하게 만들 것이다. 명문대 합격생 수를 적은 학교 앞 펼침막이 학생들을 행복하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