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세금징수 민간위탁은 봉건 회귀

道雨 2010. 11. 4. 16:19

 

 

 

         세금징수 민간위탁은 봉건 회귀
 
 
지난 5월 국회에 발의된 체납 지방세 징수 업무의 민간 채권추심업체 위탁 허용 법안에 대해 최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일부 국회의원들이 찬성 발언을 했다.
대한민국 납세자라면 누구나 어처구니없고 화가 날 일로,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문제다.

 

우선 ‘정부조직법 제6조’에 위배된다.

해당 조항에는 “국민의 권리, 의무와 직접 관계되지 않은 사무만 민간에 위탁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납세 의무’는 헌법 38조에 따른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이다.

국가의 조세 징수 업무는 대표적인 공적 업무이다. 정부조직법상 절대 민간에 위탁될 수 없는 것이다.

 

둘째, 국가권력 중 ‘형벌권’ 다음으로 인권침해 가능성이 높은 분야가 ‘징세권’이다.

잘못된 세금징수는 자유 실현의 물질적 바탕인 재산권과 인간 존엄성을 파괴한다. 법대로 공평하게 징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납세자의 인권침해 소지를 없애는 것도 징세권자의 중요 고려사항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잘못된 세금징수가 혁명의 도화선이 된 사례가 많다. 세금의 인권침해 가능성 때문이다.

실적 위주의 민간 채권추심업체의 업무 속성상 인권침해가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우수한 수사기술을 보유한 탐정에게 검찰 업무를 맡기는 시대가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셋째, 악의적인 조세회피가 아닌 징세당국의 ‘잘못된 세금부과’나 ‘복잡하고 불합리한 세법’ 등 세금 체납 원인이 국가에 있는 경우, 국가가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세금을 걷는 게 과연 온당한 것인가의 문제다.

지난 2007년부터 잘못 거둔 지방세가 무려 8518억원이나 되는 것으로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얼마 전 수원교차로 창업자인 황필상씨는 불합리한 세법 때문에 장학재단에 210억원을 기부했다가 140억원의 증여세를 부과받았다. 이런 경우에 강압적으로 세금을 받아내는 국가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넷째, 체납자의 정보가 1년 이상 장기간 민간에 제공됨에 따라 개인정보 유출 등 프라이버시권이 침해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혹자는 “민간 채권추심업체 종사자들의 관리감독을 강화하면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지만, 공무원보다 신분 유지의 이득이 적은 민간업체 직원의 개인정보 오남용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민간 위탁의 생산성(징세비용 대비 징수액 증가) 문제다.

민간이 공무원보다 생산성이 높다는 것이 민간 위탁 주장의 주된 논거이나, 실제 미국 국세청(IRS)의 독립기구인 납세자보호담당관은 “국세청의 세금징수 효율이 오히려 민간 위탁 업체보다 3배 높다”고 의회에 보고했다.

민간 위탁을 시행해봤던 미국도 단 3년여 시행한 뒤 2009년 중지했다. 체납자 선정 뒤 민간에 위탁돼 실제 징세 행위까지 걸리는 시간이 더 길어 해당 기간만큼 가산금도 늘어 납세자는 불이익을 받고 국가도 초기 징수 적기를 놓쳐 세금징수액이 되레 줄어드는 문제가 발견됐다.

현재 징세 민간 위탁 폐지 법안이 미국 의회에 계류돼 있다.


 
사업 실패로 세금을 체납한 납세자에게 남은 재산인 전세보증금을 압류해 길거리로 내모는 정부나, 오로지 월급만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체납자의 급여를 압류해 최저생계비를 뺏는 국가를 상상해보라.
‘사람 위에 세금 없다’는 점은 일찍이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도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아무리 최악의 국가라도 그 정부는 국민이 있어야 국가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느 정도 국민의 사정을 고려해 세금을 징수하는 데 반해, 민간 세금청부업자는 국민의 번영과는 상관없이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활동한다”고 말했다.

 

세금 징수의 민간 위탁은 로마시대에도 있었다. 18세기 프랑스에서도 민간 업자에게 위탁해 세금을 징수했다. 민간 청부업자의 횡포가 심해 프랑스 혁명의 원인 중 하나가 됐다. 전제권력을 도와 세금을 걷는 데 앞장선 민간 청부업자는 혁명 이후 단두대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세금 징수의 민간 위탁 추진은 세금의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는 것이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