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의 역사 | |
해적은 돈 냄새를 쫓는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도 해적이 등장한다. 고대 이집트와 페니키아가 지중해를 무대로 해상무역을 활발히 전개했을 때도 해적이 활개를 쳤다. 로마제국이 식민지를 상대로 교역량을 늘리자 또 해적이 들끓었다. 역사상 황금이 움직이는 곳마다 늘 해적이 준동했다.
문명의 변경에서 배곯던 이들은 자신들의 해적행위를 정당화했다. 머나먼 옛적 가난에 시달리던 그리스 사람들은 해적질도 일종의 전쟁이라 우기며 스스로를 기만했다. 로마 때도 소외되고 가난한 변방민족들은 해적질을 일삼았다. 권력투쟁에서 실패한 로마 군인들도 해적이 되어 제국에 복수했다. 유명한 카이사르 황제도 젊은 시절 로도스섬으로 여행하다가 해적에게 붙잡혀 몸값을 물어주고 풀려났다.
로마가 멸망하자 유럽의 중심은 대서양 연안으로 옮겨갔다. 그러자 북유럽의 노르만족이 그쪽으로 몰려들어 해적질에 몰두했다. 그들 바이킹은 부유한 프랑스 사람들을 포획하여 몸값을 요구했다. 저항하는 포로들은 도끼로 목을 잘라 창에 꽂았다. 혹독한 북구의 겨울철을 나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말하지만 바이킹의 해적질은 엄청난 범죄행위였다.
동아시아에도 해적이 있었다. 중국과 한반도의 풍요를 선망하던 일본 사람들은 해적이 되어 침략을 반복했다. 왜구라 불린 그들은 서구의 바이킹보다 잔인했다. 살인과 강간을 다반사로 여긴 왜구는 문화재만 약탈해 간 것이 아니라, 그저 닥치는 대로 사람을 납치해 노예로 팔아먹었다. 왜구들 가운데는 이름난 일본 귀족과 사무라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영원한 해적은 없다. 해적질하던 그리스 사람들도 아테네가 번영하자 방향을 바꿔 해적 소탕에 앞장섰다. 바이킹의 후예들은 숫제 평화의 수호자가 되었다. 왜구 자손들도 세계 굴지의 부자로 거듭났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겠지만, 소말리아 해적도 달라질 것이다. 그들을 몽땅 쏴 죽이기보다는 우리와 함께 살길을 찾는 것이 더욱 옳다.
<백승종 : 역사학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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