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방송의 조중동화” 막아내야

道雨 2011. 8. 23. 11:51

 

 

 

          “방송의 조중동화” 막아내야
 

 

» 홍세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인
오랜만에 투표에 참여했다.

 

공공성이나 사회통합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없는 정치꾼이 벌인 투표, 부자 아이와 가난한 아이를 가르는 데 멈추지 않고 참여자와 불참자로 서울시민을 가르는 주민투표가 아니다.

공정방송 복원과 조중동 방송의 광고 직거래 저지”를 내걸고 진행된 파업 찬반투표에 전국언론노동조합 산하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판’ 분회 조합원 자격으로다.

85% 파업 찬성 쪽에 동참했는데, 그렇다고 ‘르디플로’ 발행을 멈추기 어려운 것은 언론이 가진 견제와 비판의 구실 때문이다.

 

 

누구나 말하듯이 언론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에 대한 견제와 비판의 기능을 기본으로 가져야 한다. 그래야 ‘공기’(公器: 공익을 담는 그릇)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조중동은 오롯이 ‘사익을 담는 그릇’이다.

신문이 ‘사회의 거울’이라면 조중동이 주류인 신문시장의 판도는 사익추구세력의 힘이 공공성을 압도하는 우리 사회를 그대로 반영한다.

공공성의 실종에 대해선 우리 사회에 몇 안 되는 합리적 보수인사인 윤여준 전 여의도연구소장도 지적한 바 있다.

 

조중동이 권력을 견제, 비판해야 하는 언론의 소명을 갖는 대신 그들 자신이 족벌자본이면서 언론권력인 것은 그들의 존재 목적이 사익추구에 있기 때문이다.

공익을 담아야 하는 신문을 사익추구의 무기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조중동을 ‘보수’라고 말하는 것은 보편적 의미의 보수에 대한 능멸인데, 일제침탈과 분단상황 아래 ‘사적 안위와 영달’을 목표로 한 세력이 참칭한 보수는 그들 자신의 지배가 오래 관철되면서 사익추구의 본모습을 가리면서 뻔뻔하게 드러내는 이념으로 굳어지고 말았다.

 

한국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몰상식이 판치는 것도 거의 힘센 사익추구세력이 보수의 탈을 쓴 데서 비롯되는데, 그 앞장에 선 조중동이 종합편성채널 방송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한나라당의 날치기 법안 통과로 시작되고 헌법재판소의 눈치보기식 보신주의로 태어난 조중동 방송은 사익추구집단이 힘의 논리를 앞세워 그들의 탐욕을 제도화한 사례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생긴 과정 자체가 이미 우리 방송계의 앞날을 예고한다.

 

언론노조는 이명박 정권의 미디어 정책에 관해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복합체에게 권력 재창출을 위한 선전도구로 언론을 전락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는데, 그 핵심을 “방송의 조중동화”라고 말할 수 있다.

조중동이 신문을 지배하고 있듯이, 방송을 조중동화함으로써 87년 6월항쟁의 열매로 높은 수준은 아닐지라도 그나마 지켜온 공영방송의 공공성을 파괴하려는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주도하는 “방송의 조중동화”는 크게 두 가지 길로 관철되고 있다.

하나는 우리가 한국방송(KBS)과 문화방송(MBC), 와이티엔에서 두루 보았고 보고 있듯이, 이명박 정권의 충실한 마름을 경영진에 낙하산으로 앉혀, 공공성을 담보하는 구성원들의 자율성을 억압하는 한편, 상업화를 촉진해 기존 공영방송을 ‘조중동화’하는 게 그 하나라면, 그렇게 흔들고 와해시킨 자리에 ‘조중동방송’을 온갖 특혜를 주어 안착시키는 게 다른 하나다.

조중동 종편에 중간광고를 허용하고, 의무재송신, 편성규제 완화 등의 특혜를 준 것으로도 모자라, 황금채널 배정, 광고규제 완화까지 허용할 태세다.

 

이와 같은 방송의 조중동화가 이미 힘센 한나라당(정치권력)-재벌(자본권력)-조중동(언론권력)의 기득권 보수 삼각편대를 더욱 강화시키리라는 것은 누구나 금세 알 수 있는 일이다. 막가파로서 악명을 충분히 떨치는 이명박 정권 아래 더 이상 나빠질 게 있느냐고 묻는 이가 있다면 나는 서슴지않고 방송의 조중동화가 우리 눈앞에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모든 권력에 대한 견제와 비판을 소명으로 가진다면 우리 언론노동자들이 조중동 종합편성채널의 광고 직접거래를 금지하는 미디어렙(방송광고 판매대행) 법안 입법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방송의 조중동화를 약화시키거나 지체시킬 일차 방어막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