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민주주의를 반공과 시장의 틀에 가두지 말라

道雨 2011. 8. 23. 12:07

 

 

 

   민주주의를 반공과 시장의 틀에 가두지 말라
 

 

박정희는 유신체제를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칭했다.

 

시민의 정치·사회적 권리는 물론 신체의 자유까지 유린하는 체제에 그런 허울을 씌웠으니, 세계인은 그저 황당했다. 남북
대치 상황에서 체제 수호를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변명했지만, 그것은 북쪽의 인민민주주의나 다름없는 민주주의의 포기였다.

 

그로부터 40년 뒤 이 정권은 민주주의를 지우고, 대신 애매모호한 자유민주주의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려 한다. 역사는 반복된다지만 너무나 희극적이어서 실소부터 나온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멋대로 초·중·고교 역사 교과과정을 이렇게 바꾸도록 한 지 벌써 10여일이 지났다. 그러나 자유와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면서 기본적인 민주적 절차를 싸그리 무시했으니 논란이 가실 리 없다.

 

교과서의 핵심적인 내용이나 방향, 개념을 바꿀 때 거치도록 되어 있는 교육과정 개발정책 연구위원회(연구위)는 그동안 추진위원회나 공청회 등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는 문제는 단 한번도 언급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을 교육과학기술부는 정권과 가까운 관변 연구자들 의견을 듣고 멋대로 변경했다.

어용 학자가 아니라면 누가 이를 좌시할까.

 

 

내용의 문제 또한 심각하다. 교과부는 자유민주주의가 대한민국 건국 이념이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제헌 헌법은 ‘자유롭고 민주적인 질서’를 강조했다. 이를 위해 사유재산권을 제한하고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공식화하고, 공공성을 강조하는 등 ‘열린 민주주의’를 이념으로 제시했다.

 

본디 자유민주주의는, 전제정권의 부당한 지배와 간섭, 인권침해를 배척했던 서구의 자유주의가 민주주의와 결합해 나왔다. 그것이 우리나라에서 공산주의 체제에 맞서는 대립 개념으로 차용됐고, 기득권 세력들은 독재와 인권유린을 합리화하고 시장만능주의를 미화하는 데 이용했다. 모든 부당한 지배와 억압을 배척하는 이념이 인간에 대한 억압을 용인하는 이념으로 둔갑한 것이다.

 

이 정부가 이렇게까지 무리를 범하는 배경은 불문가지다.

하나는 이승만·박정희의 독재를 정당화하고, 이를 통해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위협받는 기득권 체제를 유지하고 합리화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하필 왜 이승만·박정희의 전철인가.

양식이 있다면 연구위원 90%의 단호한 요구를 받아들여 ‘민주주의’를 원상회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