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링컨과 오세훈

道雨 2011. 8. 30. 11:43

 

 

 

                       링컨과 오세훈

 

투표장 풍경은 ‘노예해방’만큼 이타적이고 인류애가 넘쳤다. 그러나 결국 ‘세금전쟁’이었다

 

 

 

» 김의겸 사회부장
# 노예해방 대 무상급식

 

역사의 뒷면에는 종종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올해가 150주년인 미국의 남북전쟁도 그렇다. 학교 다닐 때는 흑인 노예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다고 배웠지만, 미국 역사를 다룬 교양서만 들춰봐도 이내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된다.

 

링컨이 남부에 요구한 것은 결국 “노예제도를 유지하려면 그렇게 하라. 그러나 연방 탈퇴는 안 된다”였다.

남부동맹의 대통령조차 “노예제도가 남부의 독립에 방해가 된다면 폐지해야 한다”고 했다.

노예해방은 전쟁이 터진 지 2년이 지나고 나서야 선포된다. 전세가 밀리자 남부의 노예들을 이탈시키고 유럽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전술’의 성격이 더 짙어 보인다.

 

 

서울판 남북전쟁이었던 무상급식 주민투표도 명분과 실질이 맞지 않는다.

서울시 예산의 0.3%밖에 안 되는 애들 밥값을 놓고 한판 전쟁을 치렀고 서울시장이 물러났다.

투표장 풍경은 ‘노예해방’만큼이나 이타적이고 인류애가 넘친다.

강남 부자들은 “돈 내고 아이들 밥을 먹이겠다”고 줄을 섰고, 강북 사람들은 “부자 아이들도 공짜로 밥 먹여라”고 뜻을 밝힌 셈이기 때문이다.

 

 

 

# 관세전쟁 대 세금전쟁

 

남북전쟁의 진짜 이유는 관세 때문이란다.

북부의 자본가들은 관세를 올리려고 했다. 그래야 영국의 공업제품이 밀려오는 걸 막고, 자신들의 제품을 남부에 팔 수 있기 때문이다. 거꾸로 남부의 지주들은 높은 관세에 반대했다. 영국 수입품에 관세를 매기면 영국도 남부의 목화에 관세를 매길 것이고, 이 때문에 목화 수출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

 

그러나 링컨은 취임하자마자 관세율을 미국 역사상 가장 높은 47%로 올렸다. 자신을 지지해준 북부 공업지역에 대한 보답이었다. 이에 남부의 7개 주는 독립을 선언하고, 전쟁 개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주민투표 결과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지만, 결국은 ‘세금전쟁’이었던 것 같다.

투표 날 강남의 타워팰리스를 둘러본 후배들 얘기를 들어보면, 이곳 주민들의 정서는 이렇게 요약된다.

“무상급식 하면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 다른 무상 시리즈가 봇물처럼 쏟아질 거다. 그러면 곧바로 세금폭탄이 터진다.”


한달 5만원짜리 급식비 때문이 아니라, 종부세의 부활 등 큰 세금에 대한 공포감이 이들을 투표장으로 몰아간 것이다. 주민투표를 독려하는 대형 펼침막에는 ‘전면무상급식 NO’라고 적혀 있었지만, 강남의 부자들은 이를 ‘종부세 NO’라고 읽은 것이다.

 

이런 민감함 때문에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모두 ‘증세 없는 복지’를 내세운다. 하지만 투표 바로 다음날 민주당의 정동영 최고위원이 증세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나서는 등 세금 문제는 계속해서 민심의 지각을 흐르는 ‘마그마’로 작용할 것이다.

 

 

 

# 공업국가 대 복지국가

 

남북전쟁에서 북부가 이겼기에 오늘의 미국이 성립한다.

남부의 후진적인 농장제도가 붕괴하고 북부의 공업을 중심으로 자본주의가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으로부터 경제적 독립도 북부 승리의 덕이다. 만일 남부가 이겼더라면, 미국은 남미처럼 여러 나라로 갈라지고, 대부분 농업국가로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도 복지국가로 나가느냐 마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주민투표 ‘한방’으로 국가의 침로가 결정되지는 않는다. 주민투표는 두달 뒤 서울시장 선거, 내년의 총선과 대선으로 이어지는 1년4개월짜리 대결의 샅바싸움 정도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짜인 복지국가의 틀은 앞으로 수십년은 지속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 사회 모든 세력들은 이미 총력전에 돌입한 것이다.

 

< 김의겸, 한겨레 사회부장 kyummy@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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