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우리 이렇게 살지 말자 (예의 없는 것들)

道雨 2011. 10. 4. 15:11

 

 

 

              (우리 이렇게 살지 말자)

 

                  예의 없는 것들

 

 

우리, 이렇게 살지 말자.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9월19일 서울 명동 토마토2저축은행을 찾아 2천만원을 예금했다. 전날 발표한 저축은행 영업정지 조처로 다른 저축은행에서 뱅크런(대량 인출)이 벌어질까 걱정돼 ‘저축은행에 안심하고 예금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란다.

그런가?

2천만원은 법률에 정한 예금자 보호한도(5천만원) 이내일 뿐만 아니라 영업정지된 저축은행에서도 즉각 인출 가능한 가지급금 범위 안에 있다. 언제든 찾을 수 있으니 위험과 거리가 멀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생쇼다. “이자 한 푼이 아쉬워” 저축은행에 5천만원 넘게 예금했거나 후순위 채권을 들고 있다 졸지에 돈을 떼이게 된 이들의 속만 뒤집어놓았다. 우리, 이렇게 살지 말자.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9월19일 국정감사에서 강창일 민주당 의원이 정전사태와 관련해 ‘허위 보고’라며 문제 삼자, “일국의 국무위원이 국민을 상대로 허위 보고를 했다고 하는데 그 말에 책임질 수 있는가”라고 따졌다. 당당하다.

그런데 최 장관은 초유의 순환정전 사태가 난 날, 수습은 뒷전인 채 청와대 만찬에 얼굴을 내밀었다. 책임과 의무는 남 탓으로 돌리고 권리만 주장하는 ‘대통령님 따라배우기’인가. 우리, 이렇게 살지 말자.

 

행정안전부는 2008년부터 지난 8월까지 주민등록 전산자료가 담긴 개인정보 4733만188건을 민간 채권추심업자에게 팔아넘긴 것으로 밝혀졌다. 사채업자들이 빚을 받아내는 데 도움이 되라고 국민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1건에 30원씩 받고 팔아넘겼단다.

이명박 정부 행안부는 개인정보를 비롯한 프라이버시 보호가 현대 국가의 기본 책무라는 사실도 모르나 보다.

“내 개인정보 값이 문자메시지 하나 값이네” “이게 정부인가, 사채업자인가” 따위 누리꾼들의 냉소가 쏟아졌다. 우리, 이렇게 살지 말자.

 

국가보훈처의 국립묘지안장대상 심의위원회는 지난 8월5일 ‘광주학살과 5공 비리 주범’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호실장 안현태씨의 국립대전현충원 안장을 결정했다.

안씨는 5공 시절 대기업에서 5천만원 등을 받은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6개월형을 선고받은 인물이다.

그런데 국립묘지안장대상 심의위원들은 “5천만원은 ‘떡값’”이라며 “도덕성을 위배했거나 반사회적 범죄자로 보기 어렵다”고 안씨의 국립묘지 안장을 밀어붙인 사실이 뒤늦게 공개된 회의록을 통해 드러났다.

5천만원이 ‘떡값’이면 최저임금(시급 4320원)도 받지 못하는 수많은 노동자는 뭔가? 우리, 이렇게 살지 말자.

 

국가인권위원회는 9월19일 전원위원회를 열어 ‘한진중공업 고공농성자 등의 인권보호 관련 의견표명’ 안건을 부결시켰다. 회의에서 윤남근 위원은 “김(진숙)씨는 시설을 점거해 회사를 방해하고 있는 위법 상태의 농성자다. 그런 지위에서 물과 배터리 등을 요구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주장했단다.

지난 1월6일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아홉 달째 농성 중인 김씨에게 생존 필수품인 물과 전기를 공급하는 걸 ‘위법’의 잣대로 비토한 것이다.

생명권은 인권의 주춧돌이어서 합법·위법 구분에 구애받아선 안 된다는 걸, 이명박 정권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들은 정말 모를까. 우리, 이렇게 살지 말자.

 

문화방송은 9월19일 인사위원회를 열어, 대법원이 무죄판결한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 제작진 5명에게 정직 등 중징계 처분을 내렸다. 일간신문 사과 광고와 <뉴스데스크> 사과 방송에 이은 3연타석 ‘뻘짓’이다.

김재철 사장은 노조의 항의에 “허위 보도에 대한 징계는 마땅하다”고 주장했단다. ‘허위 보도’라면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내용을 조작했다는 것인데, 대법원은 그런 판결을 내리지 않았다.

언론사 사장이 허위 보도와 단순 오보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을 터. 김재철 사장의 누워서 침 뱉기가 가련하다. 우리, 이렇게 살지 말자.

 

 

[ 한겨레21 편집장 이제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