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조용환·피디수첩 사건이 말하는 것

道雨 2011. 9. 21. 16:17

 

 

 

      조용환·피디수첩 사건이 말하는 것 

 

친여 보수언론과 정부가 맞장구치며 퍼뜨린 억지 논리가 아직도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 김이택 논설위원
일찍이 “한국 정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하는 축구 경기와 비슷하다”고 갈파한 정치인이 있었다.

 

보수세력은 위쪽, 진보세력은 아래쪽에서 뛰니 진보에 불리하다는 것이다.

최근의 두 사건은 이 말을 실감나게 한다.

 

 

먼저 피디수첩 사건.

 

최근 드러난 위키리크스 내용은 그간 소문으로만 나돌던 한-미 쇠고기 협상의 이면을 명쾌하게 정리해준다.

 

이명박 당선자와 측근 최시중·현인택 등을 통해 쇠고기 시장 개방을 약속받은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는 2008년 3월25일 라이스 미 국무장관에게 2급 비밀전문을 보낸다.

 

“한국 협상팀은 이 대통령 방미 전까지 ‘우리 요구에 맞춰’ 결과를 발표할 수 있도록 물밑에서 열심히 작업하고 있다.”(Korea’s trade team is working hard behind the scenes to tee up a deal that will meet our needs and can be announced by President Lee’s visit.)

 

한국 협상단은 위키리크스에서 드러난 시나리오대로 ‘4월 총선 이후’ 한-미 정상회담 하루 전인 4월18일 ‘미국의 요구에 맞춰’ 30개월령 이상, 위험물질 부위까지 수입하기로 합의함으로써 미국과의 약속을 충실히 이행했다.

 

이 무렵 보낸 전문들을 읽어보면 당시 쇠고기 파동은 이 대통령을 비롯한 현 정권 핵심 인사들이 정권 초기 캠프 데이비드 별장에서의 부시-이명박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미국의 무리한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는 바람에 빚어진 일이라는 게 잘 드러난다.

그러나 현 정권과 친여 보수언론은 시민들이 피디수첩의 광우병 ‘허위’ 보도에 속아 촛불시위가 일어났다는 논리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최근 확정된 이 사건의 판결문들을 보면 피디수첩 보도에 일부 잘못된 대목은 있지만 정부의 졸속협상을 폭로하는 전체 기조를 뒤흔들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피디수첩 보도와 촛불시위가 아니었다면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정부가 재협상에 나섰을 리도 없다.

이나마 최소한의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을 확보한 것도 촛불 시민과 피디수첩의 공이라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문화방송은 정권과 친여언론의 논리에 적극 부응해 사과광고에 이어 피디들에 대한 중징계까지 강행했다.

보수언론과 정부가 맞장구치며 퍼뜨린 억지 논리가 아직도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것이다.

 

 

조용환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 문제는 어떤가.

위장전입을 문제삼는다면 조 후보 쪽도 반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당은 현 정부가 더 문제 많은 인사들까지 중용한 사실을 잘 알기에 그 얘기는 드러내놓고 하지 않는다.

대신 그가 80년대에 썼다는 글 몇 구절과 천안함 발언에 시비를 걸고 있다.

정부 발표를 믿는다는데도 “왜 확신하지 않느냐”며 말꼬리를 잡고 늘어진다.

냉전시대 함량미달의 수구언론들이 즐겨 하던 색깔론이다. 합리적 보수와는 거리가 멀다.

 

이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런 식이면 앞으로 현 정권이 대법관과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보수 일색으로 물갈이하지 말란 법이 없다.

 

여당과 보수언론이 진보의 싹을 잘라버리겠다는 듯이 덤비는 걸 보라.

 

헌재가 보수 일변도로 바뀌면 총선 뒤 국회에서 아무리 개혁입법을 해도 위헌 결정으로 뒤집어버릴 수 있다.

법원도 소신형 보수주의자라는 사람이 대법원장이 되면 보수성향 대법관들을 줄줄이 기용할 가능성이 크다.

야당과 진보진영이 사활을 걸고 사법부의 ‘균형 인사’를 외쳐야 마땅한 상황이다.

 

그런데 균형은커녕 겨우 한자리 배당받은 헌재 재판관마저 ‘사상검열’에 막혀 있으니, 노무현의 ‘기울어진 축구장’은 아직 그대로인 게 틀림없다.

 

< 김이택, 한겨레  논설위원, rikim@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