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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총부채율 세계4강!

道雨 2011. 10. 4. 16:12

 

 

 

         한국, 총부채율 세계4강! 
1990년대 저축률 세계 1위서 대표 부채국가로 전락… MB 정부 들어 정부·공기업 부채 폭증 속 가계부채 미국보다 심각
 

 

 

1990년대 내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최고의 저축률을 자랑했던 나라는?

일본이나 독일이 떠올랐을지도 모르겠다. 답은 우리나라다.

벌써 오래전 얘기 같지만,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저축 강국이었다. 우리나라 저축률은 1987년(24.0%) 처음으로 OECD 최고 수준에 올라선 뒤, 2000년 벨기에(12.3%)에 자리를 내줄 때까지 부동의 1위를 지켰다. 1998년 금융위기의 혼란 중에도 순위는 흔들리지 않았다.

 

가계살림뿐 아니라 정부의 나라살림도 안정적이었다. OECD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국가 채무는 2002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19.2%였다. 룩셈부르크(8.4%)에 이어 OECD에서 두 번째로 낮았다. 이웃한 일본은 국가 채무가 이미 152.3%까지 치솟을 때였다. 우리나라의 채무 비율은 당시 OECD 국가 평균인 71.6%의 반에 반 정도 수준이었다.

 

 

» 경제주체들의 빚이 숨가쁘게 증가하고 있다. 국가 채무는 2002~2010년 253조원이 늘었고, 같은 기간 가계 부채는 704조원이 늘었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알뜰했던 개미, 베짱이 되다

불과 10년 남짓 흘렀을 뿐이다. 상전벽해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가운데 저축에 가장 인색한 나라가 됐다. 대신 소득과 견준 가계 부채 비율은 OECD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 10년 전 알뜰했던 개미는 베짱이로 변신했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국가 채무는 OECD 회원국 가운데서 가장 빠르게 늘고 있다. 개인이나 국가나 한국에서는 일종의 금기였던 빚은 이제는 ‘빛의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1970년대 이후 꾸준한 증가세를 보여온 우리나라의 저축률은 최근 몇 년간 다소 정체하는 모습을 보임에 따라, 이에 대한 우려가 증대하고 있음. 저축률의 감소는 경상수지를 약화시키거나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의 둔화를 가져올 수 있음.”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낸 ‘우리나라 저축률의 분석과 전망’ 보고서의 한 대목이다. 언뜻 보면 2011년 지금의 얘기 같다. 보고서는 14년 전인 1997년 3월 발표된 것이다. 1990년대 초 20%를 훌쩍 넘던 가계저축률이 당시 16.1%까지 떨어졌다. 국책연구기관은 이를 두고도 경제성장을 둔화시킬 수 있다고 걱정했다. 여전히 한국의 저축률은 세계 최고일 때였다.

 

이 보고서의 작성자가 지금의 현실을 본다면 경악할 일이다. 우리나라 가계저축률은 2000년 이후 한 자릿수로 뚝 떨어졌다(표1 참조). 지난 3월 OECD가 내놓은 국제 통계는 더 극적으로 상황을 제시한다. 여기서 우리나라의 2010년 저축률은 2.8%였다. 조사 대상인 20개 회원국 가운데 다섯 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소비대국인 미국의 5.7%에도, OECD 회원국 평균 6.1%에도 못 미쳤다. 도대체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지난 6월 삼성경제연구소가 낸 ‘가계저축률 하락의 원인과

경제적 파장’은 몇 가지 이유를 설명했다.

 

우선 노동자의 벌이가 1990년대 말 금융위기 이후 주춤했다. 1990~97년 가계의 근로소득은 해마다 16.4%씩 늘었지만, 외환위기를 거친 다음인 1998~2002년에는 해마다 6.4%씩만 증가했다. 벌이가 줄어드니 저축을 위해 돈을 따로 마련할 여지도 줄어들었다.

 

국민연금과 같은 사회부담금이 크게 늘어난 것도 저축 감소에 한몫했다. 가계소득 가운데 사회부담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1997년 2.7%에서 2002년 5.2%로 2배 가까이 늘었다. 한 달에 100만원을 번다고 칠 때, 국민연금·건강보험 등으로 지출하는 액수가 5년 만에 2만7천원에서 5만2천원으로 늘었다는 뜻이다. 사회보험은 국가가 개인의 안전을 위해 보험을 들어주는 셈이다. 따라서 사회보험료가 오르면 사람들은 그만큼 저축할 동기를 잃게 된다.

 

고령화도 한 변수였다. 1995년에서 2000년까지 65살 인구 비율은 100명당 5.9명에서 9.3명으로 크게 늘었다. 노인층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저축을 할 이유는 적었다. 노인인구가 느는 만큼 저축률이 주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집값 폭등, 저축률 저하의 가장 큰 원인

그렇지만 저축률을 끌어내린 가장 큰 변수는 집값이었다. 특히 2000년 중·후반에 아파트값의 영향은 강력했다.

원리는 간단했다. 아파트값이 크게 오르자 사람들은 저축하는 대신 집을 샀다. 개인 처지에서만 보면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2004~2008년 서울 아파트값은 해마다 8.8%씩 올랐다. 같은 기간 시장금리는 회사채 수익률을 기준으로 해마다 5.5%씩 올랐다. 똑똑한 사람이라면 집을 사는 게 맞았다. 당연히 저축률은 2005년을 지나며 5% 이하로 뚝 떨어졌다.

저축률 하락은 나라 경제에도 타격을 줬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가계저축률이 1%포인트 떨어질 때마다 경제성장률은 0.15%포인트 떨어지는 효과가 있다”고 풀이했다.

 

가계 저축이 크게 빠지는 동안, 가계빚은 폭증했다(표2 참조). 2000년대 후반 이후에는 역시 집값 상승의 영향이 가장 강력했다. 2005~2010년 개인이 은행에서 빌린 돈 126조원 가운데 75%는 주택담보대출이었다. 5년 사이 100조원에 가까운 대출액이 순수하게 집을 사거나 빌리는 데 쓰였다는 말이다. 그러니 2007년 말 595조4천억원이던 가계 부채는 계속 늘어 지난 6월에는 826조원으로 뛰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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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부풀어오른 가계 부채라는 ‘풍선’이 터질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이에 대한 해석은 미묘하게 엇갈린다. 가계 부채 관련 지표도 저마다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우선 가계 부채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를 알리는 가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개인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2007년 136.4%에서 지난해 말 155.4%까지 올랐다.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미국의 같은 통계보다도 안 좋다. 당시 미국의 개인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137.6%였다. ‘빚잔치’를 하던 미국은 정작 금융위기의 긴 암흑기를 거치며 이 비율이 2009년에는 128.2%까지 떨어졌다.

그사이 우리나라에서는 반대로 더욱 거품이 부풀어올랐다. 이 통계는 가계 부채를 두고 암울한 전망을 그리는 근거다.

 

다른 지표는 또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이 중에서도 흔히 금융부채 상환능력이라고 불리는 금융부채 대비 금융자산 비율은 2008년에 견줘 상승했다. 이 비율을 간단히 말하자면, 수중에 가진 돈이 빚보다 얼마나 많은지를 가리키는 지표다. 따라서 이 지수가 높으면 그만큼 빚을 갚을 여유가 있다는 의미다. 이를 보면 2008년에 개인이 가진 금융자산은 금융부채의 1.96배에 불과했는데, 지난 6월에는 2.15배로 늘어났다. 부채 증가보다 금융자산의 증가 속도가 더 빨랐다는 말이다.

 

이른바 ‘부채취약가구’의 비율이 줄어든 것도 긍정적인 신호다. 부채취약가구란, 가구의 소득으로는 빚을 갚으며 생활비까지 댈 여력이 없는 가구를 가리킨다. 사실상 원금 상환 여력이 없는 이들이다. KDI는 지난해 말에 낸 보고서에서 전체 가구 가운데 취약부채가구 비율이 2004년 15.06%에서 2008년 10.7%로 줄었다고 분석했다.

김영일 KDI 연구위원은 “2005~2008년만 보면, 재무건전성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가구를 중심으로 가계 부문 부채를 늘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적신호 켜진 가계부채, 경제 쓰나미 되나

가계 부채가 가진 잠재적 폭발력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앞서 본 지표들도 경제 여건에 따라 순식간에 표정을 바꿀 수 있다.

예를 들어 앞에서 제시한 금융부채 대비 금융자산 비율이 개선된 이유도 알고 보면 2008년에 견줘 주가가 크게 오른 덕이 컸다. 따라서 경제 여건이 악화돼 주가가 떨어지면 이 지표도 순식간에 나빠질 수 있다. 외부 경제 여건에 충격이 오면, 가계 부채 문제가 우리 경제에 ‘쓰나미’로 덮칠 수 있다.

특히 유럽발 금융위기로 지난 9월23일 전세계 증시가 급락하는 등 세계경제가 요동치는 상황이다. 부글거리는 가계 부채를 건드릴 뇌관이 곳곳에 잠재해 있다는 뜻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9월22일(현지시각) “세계경제가 위험한 국면에 진입했다” 며 각국의 협력을 촉구했다.

 

앞으로 금리가 오르면 가계의 이자 부담도 크게 늘게 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대출금리가 2%포인트 상승하면 가계의 이자 부담은 4조5천억원이 늘어나게 된다고 추정했다.

이은미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가계 부채가 빠르게 증가했지만 위험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이유는 금리가 낮고 주가가 상승했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금리 상승폭이 크고 자산 가격이 조정이 크게 나타나면 가계 신용 위험 수준이 늘 가능성도 있다”고 풀이했다.

 

급등하는 가계 부채에 이미 적신호가 켜졌다면, 국가 채무에 켜진 신호는 아직은 노란불이다. 문제는 신호등이 곧 붉은색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재정은 그동안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이로 인해 재정이 빠른 속도로 악화되기는 하였으나 아직 외국에 비해서는 양호한 형편.” 1999년 10월 기획예산처가 출입기자를 대상으로 배포한 자료의 한 대목이다.

 

당시 기획예산처는 적자재정을 2004년 세입과 세출이 균형을 이루는 균형재정으로 회복하겠다고 발표했다. 국가 채무를 2014년에는 경제위기 이전 GDP 대비 10% 이하로 끌어내리겠다고도 밝혔다.

지켜졌을까? 당시 정부의 야심찬 계획이 무색하게도 국가 채무는 이후 쉼없이 뛰어올랐다(표3 참조).

 

 

“12년 균형재정 달성, 국가 채무는 30% 수준에서 안정화.” 정확히 2년 전인 2009년 9월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국가재정운용계획’안이다. 당시 정부는 2010년 GDP 대비 국가 채무를 31.9%, 2012년에는 30.9% 수준으로 관리하겠다고 발표했다.

결과는 역시 기대를 어긋났다. 나랏빚은 지난해 392조8천억원으로 뛰어올랐고,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33.4%로 늘었다.

 

 

MB “위험수위는 아냐”

나랏빚의 규모를 놓고서도 의견은 쉬지 않고 엇갈렸다. 실제로 정부가 책임져야 할 국가 부채는 정부가 발표한 수준 이상이라는 의견이 끊임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른바 ‘사실상의 국가 부채’ 논란이다.

지난 9월19일 이한구 의원(한나라당)이 내놓은 추계치는 논란에 다시 불을 지폈다. 그는 기획재정부가 제출한 자료를 분석한 뒤, 지난해 정부가 떠안아야 할 사실상의 국가 부채가 1848조원을 넘었다고 풀이했다. 내용을 보면 이치에 닿는다.

그는 국가 직접채무(392조8천억원)에 준정부기관 및 공기업 부채(376조3천억원), 4대 공적연금 책임준비금 부족액(861조8천억원), 통화안정증권 잔액(163조5천억원), 보증채무(34조8천억원) 등을 더한 뒤 이런 통계를 산출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2003~2007년 참여정부 집권기에 사실상 국가 부채는 해마다 7.9%씩 증가한 반면, 이명박 정권이 시작된 2008~2010년 연평균 증가율은 11.2%였다. 국가의 부담이 점차 줄어드는 게 아니라 반대로 ‘폭발’하는 양상이다.

 

‘사실상의 국가 부채’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인 공기업 채무도 정부의 어깨를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다. 공기업 부채는 2002년부터 8년 사이에 무려 2.4배나 늘었다. 특히 2008년부터 2년 사이에 무려 100조원이 늘어 경이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해 말 KDI가 낸 ‘주요 공기업 부채의 장단기 위험요인’을 보면, 자산 규모가 큰 핵심 공기업 6곳의 연결재무제표를 확인할 결과 2004~2009년 전체 자산 증가율은 연평균 13.4%였고, 그 가운데 자본 증가율은 5.5%, 부채 증가율은 19.1%라고 분석했다.

2004년 이들 6대 공기업의 부채 비율은 우리나라 전체 기업의 평균(123%)보다 낮은 106.3%였지만, 2009년에는 196.8%까지 올라갔다. ‘우량기업’들이 불과 5년 사이에 ‘빚더미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정부와 공기업, 가계 등 모든 경제주체가 모조리 빚잔치에 열중하다 보니 나라 전체가 짊어진 부채액은 천문학적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이한구 의원은 지난 9월19일에 낸 자료를 통해 공공·가계·기업 부문을 합한 금융부채가 지난 6월 현재 3283조원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 일반정부(52.1%), 공기업(85.7%)과 민간기업(28.1%), 개인(32.0%) 등 모두 골고루 빚을 늘렸다고 덧붙였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더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주요 국가별로 정부와 가계, 일반회사, 금융회사의 부채를 합한 총부채액을 GDP와 견준 비율을 제시했다(표5 참조).

우리나라 언론에는 아직 소개되지 않은 이 자료는 우리나라의 부채 현황에 대한 의미 있는 통계를 제시했다.

우리나라의 총부채 비율은 333%로, 일본(471%)·영국(466%)·스페인(366%)에 이어 네 번째로 빚이 많았다. 금융위기를 겪은 미국(296%)이나 최근 기우뚱거리는 이탈리아(315%)보다 높았다. 총부채 비율로 보면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 ‘4강’인 셈이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9월8일 공중파를 통해 방송된 ‘추석맞이 특별기획,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가계 부채를 언급하며 “위험수위는 아니고 관리에 들어갈 수준”이라고 밝혔다.

 

 

[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