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미, 부자감세 아닌 부자증세가 경제활성화 기여했다

道雨 2011. 10. 12. 16:42

 

 

 

미, 부자감세 아닌 부자증세가 경제활성화 기여했다
 

 

금융 슈퍼리치와 부자증세
버핏세 논란

 

미국 금융의 심장부 뉴욕에서 시작된 이른바 ‘월가 점령’(Occupy Wall Street) 시위가 미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금융자본 주도의 경제시스템에 반기를 든 저항 물결은 유럽으로도 번져 대규모 시위를 예고하고 있다.

 

흥미로운 건 억만장자 워런 버핏 등이 이번 시위를 옹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버핏은 특히 ‘금융 슈퍼리치’에 대한 증세를 스스로 요구했다.

 

한쪽에서는 1%의 금융 슈퍼리치들의 탐욕에 대한 거대한 분노의 물결이, 다른 한쪽에서는 금융소득 백만장자들에 대한 증세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월가 점령과 금융 슈퍼리치에 대한 증세 논쟁에는 1980년대 이후 전세계적으로 진행된 경제의 급속한 금융화와 이것이 초래한 세계금융·경제위기가 그 배경으로 깔려 있다.

 

금융화의 물결이 휩쓸고 있는 한국에서도 금융 슈퍼리치에 대한 증세론이 점차 부상하고 있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소장 이창곤)는 미국에서의 월가 점령 시위 및 ‘버핏 증세론’의 배경과 의미, 그리고 한국에서의 부자 증세 논쟁을 함께 짚어본다.

 

 

 

억만장자 투자자의 세율이 중산층근로자 세율의 절반

 

현재 미국 사회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부자증세 논란이다. 이른바 ‘버핏 방식’이라고 불리는 부자증세(안)의 뼈대는 연 100만달러(약 12억원) 이상을 버는 고소득자에게는 적어도 중산층이 내는 세율만큼 세금을 내게 하자는 것이다.

지난 6일 <월스트리트 저널>의 보도를 보면, 미국 상원의 해리 리드 민주당 원내대표가 연소득 100만달러가 넘는 개인이나 가계에 세금을 5.6% 물려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제출했다.

 

버핏세 논쟁은 전설적인 투자자이자 세계적인 부호인 워런 버핏이 2011년 8월14일치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더 이상 슈퍼 리치들을 감싸지 마라”는 칼럼에서 촉발됐다.

이 칼럼에서 그는 자신이 작년에 낸 소득세의 세율이 17.4%에 불과한 반면, 자신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20명의 직원이 낸 소득세의 평균 세율은, 매우 부당하게도 자신의 두 배가 넘는 36%에 이른다고 밝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부시 행정부는 투자활성화를 이유로 자본소득과 배당금에 대한 최고세율을 15%에 묶어버렸는데, 이는 근로소득의 최고세율(35%)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게다가 투자소득에는 사회보장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역진적 성격을 가진 주정부와 지자체의 세금까지 고려하면 억만장자 투자자의 세율이 중산층 근로자의 세율보다 훨씬 낮아지는 일이 발생한다.

 

낮은 세율이 보여주듯 미국의 백만장자들은 이들에게 매우 우호적인 의회로부터 충분히 보호와 혜택을 받아왔다.

버핏의 주장은, 백만장자들이 이제는 고통 분담을 통해서 미국 국가재정과 경제를 더 튼튼하게 하는 데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버핏은 또, 부자들에게 세금을 올린다고 해서 투자가 위축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버핏의 부자증세 주장을 둘러싼 미국인들의 반응은 뜨겁다. 미국 방송사인 <엠에스엔비시>(MSNBC)가 자사 누리집을 통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95%의 응답자가 버핏의 주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부자세율 높던 1980~2000년, 일자리 창출 효과 더 높아

 

미국의 재정적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오바마로서는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버핏의 발언을 듣고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미국 사회에서 버핏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오바마는 버핏이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다음날 연 타운 홀 미팅에서 버핏의 주장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낸 바 있다.

이어 지난 9월19일 오바마는 향후 10년간 3조6천억달러 규모의 재정적자 감축방안을 발표하면서 100만달러 이상의 소득자들에게 최소한 중산층의 세율을 적용하는 부자증세 방안을 제시했다.

여기서 우리가 고려해야 할 이슈는 두 가지로 모아진다.


첫째, 부자 증세는 정당한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헤지 펀드를 운영해 벌어들인 소득의 세율보다 정당한 근로를 통해서 얻어진 소득의 세율이 높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부자 감세정책경제활성화라는 명목으로 공화당 부시 정부에 의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며, 부시 감세로 인해 현재 천문학적인 재정적자가 누적되고 있다.

부자감세로 투자가 활성화되어 미국 경제가 회복되고 일자리가 늘어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소득 양극화에 따른 사회적 비용만 증가하고,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를 가져왔을 뿐이다.

 

 

 

부자감세로 재정 악화되고, 소득양극화로 경제위기 초래

» 시카고/문진영 서강대 교수(사회복지학)

 

둘째, 그럼 부자증세가 경제활성화, 특히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것인가?

버핏이 지적한 대로, 오히려 지금보다 부자들에 대한 세금이 높았던 1980~2000년까지 4천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된 반면, 그 이후 부자들의 소득 세율을 낮추면서 일자리 창출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부자들을 중심으로 세금을 0.5% 올리면 국내총생산(GDP)이 1~1.5% 상승할 것으로 추산한 바 있다.

국내총생산의 증가는 자연스럽게 고용의 증가로 이어질 것이다. 부자감세가 아니라 오히려 부자증세가 미국 경제활성화에 기여한다는 얘기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부자들과 대기업은 자신의 이익을 지켜줄 수 있는 든든한 사회적 진지를 갖추고 있다.

유능한 로비스트를 고용할 수도 있고,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으며, 경험과 능력을 갖춘 변호사를 통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판결을 유도할 수도 있다.

 

이러한 진지를 구축할 능력도 조직도 없는 서민과 중산층을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

버핏-오바마의 부자증세(안)은 선한 의지를 가진 능력 있는 정부가 왜 필요한지를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다.

 

시카고/문진영 서강대 교수(사회복지학)

jymoon@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