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서울법대 진품과 짝퉁 시비

道雨 2011. 10. 20. 14:37

 

 

 

          서울법대 진품과 짝퉁 시비
 

 

 

» 김효순 대기자
신문에 글을 쓰는 게 직업이라 이래저래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에 대한 소회를 담아 쓰는 경우가 이따금 있다.

 

10년쯤 됐을까?

한때 ‘빈민운동의 대부’로 불렸던 제정구 전 의원을 칼럼에서 다룬 적이 있다.

 

그를 처음 본 것은 1970년 11월 말의 대학교정에서다. 4·19혁명 기념탑 앞에서 휴대용 확성기를 들고 연설을 하고 있었다.

청계천 평화시장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전태일이 열악한 작업환경에 절망해 스스로 몸을 살라 저항을 한 충격적 사건이 벌어진 직후였다.

‘늙은 복학생’이었던 그가 쉰 목소리로 젊은 노동자의 분신 사태를 외치고 있었지만, 늦가을의 종강 분위기 탓인지 탑 앞에 모여 귀를 기울이는 학생들은 별로 없었다.

 

칼럼이 나간 뒤 미국에 사는 한 독자에게서 힐난성 메일을 받았다. 당신이 모 대학을 나왔다고 과시하려고 제정구씨를 들먹인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요지였다. 대학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받아들인 것이다.

해석이야 읽는 사람의 자유이기는 하지만 상상치 못했던 반응이었다. 학벌 문제의 민감성을 절감할 수 있었다.

 

 

시민운동가에서 현실정치에 뛰어든 박원순씨가 학력 문제 등으로 호된 시련을 겪고 있다.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이 마치 연계 플레이를 하듯 집요하게 공격을 퍼부었다. 제기되는 의혹들을 보면 학력 위조, 경력 사칭에다 이중인격의 파렴치한처럼 비친다.

그중의 하나가 서울법대에 다닌 적이 없는데도 저서 등에 그렇게 표시했다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학제는 몇 차례 바뀌었는데, 그가 1975년 사회계열로 입학했다가 바로 제적된 것이 흔히 언론에서 말하는 팩트이다.

그렇다면 박원순씨의 무신경, 깔끔하지 못한 처신이 빌미를 제공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 자신은 학력 표기에 관심이 없었다고 변명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는 너무나 많다.

 

 

내가 그의 학력 논란에 위화감을 느끼는 것은 서울대에서 쫓겨난 시대적 배경이 함께 논의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는 유신독재의 시대이다. 그때의 억압적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체감한 사람은 이미 50살이 넘었을 테니 젊은 세대는 감조차 없을 것이다.

민주화를 요구하며 독재 행태를 비판하는 사람이 있으면 긴급조치를 발동해 감옥에 마구 처넣던 시절이다.

 

박원순씨는 대학 1학년 생활을 두 달 정도 하고 서울대에서 축출당했다. 그가 유달리 과격했기 때문일까? 아닐 것이다.

시위 주동자들은 재판에 회부돼 장기형을 선고받았다.

대학에 갓 들어온 그가 시위를 주도했을 리도 없고 단순가담자였을 것이다. 추측건대 대학생 새내기에게조차 바로 제적이라는 가혹한 처벌을 할 정도로 탄압이 극심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가 입시지옥에서 해방된 여느 1학년생처럼 시대의 아픔에 눈을 감고 대학생 신분을 즐기며 살았다면 무사히 진급했을 것이다. 그게 법대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졸업도 했을 것이다.

 

그가 민주화운동에 기여했다고 추어올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그가 시험을 치다가 부정행위를 했다거나 연애를 하느라 학점을 펑크냈기 때문에 쫓겨난 것이 아니라는 정도는 지적돼야 한다.

그것이 학력 뻥튀기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그리고 서울법대가 사칭을 할 만큼 그렇게 대단한가?

지금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정당은 5공 시절 ‘육법당’에 비유되곤 했다. 육사와 서울법대 출신이 말아먹는다고 해서 나온 별명이다.

‘불법 시위’ 같은 데 한눈팔지 않고 사법시험 준비에 정진해 나중에 판검사로 임용된 분들이다.

이들 중 일부는 갈고닦은 법 지식을 독재체제 유지에 유감없이 발휘했지만, 수많은 시민들의 엄청난 희생을 대가로 민주화가 이뤄진 뒤에도 반성을 하거나 유감을 표명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인권변호사들’이 이른바 시국사건 구속자들을 도와주었지만, 수많은 법조인 가운데 그런 이들은 극소수였다.

그래서 엄혹했던 시절 별 탈 없이 고시에 붙어 공익에 헌신하지 않고 사다리 올라타기만 한 사람들을 보는 나의 시선은 조금 삐딱하다.

내가 아직도 인간 수양이 덜 된 탓이다.

 

[ 한겨레 대기자 hyoskim@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