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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교육과학기술부가 중학교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발표했다.
학계의 전면적인 반발과 간절한 요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 정권은 자신과 이해를 같이하는 소수의 친일·수구 언론과 재계, 관변학자의 주장을 그대로 반영했다.헌법적 가치인 학문의 자유와 교육의 중립성은 안중에도 없었다. 교육을 권력 이데올로기의 홍보수단으로 만들려는 그 의지가 놀랍다.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겠다는 교과부 안은 사실상 원안 그대로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로 바뀐 부분이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자유민주주의를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불행하게도 역사학계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실 자유민주주의는 학문적 근거가 부족하고, 우리 민주주의를 규정하는 데 혼란만 야기한다. 이 말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민주주의 두 날개 가운데 하나를 없애버리는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다. 현실적으로도 ‘반공’을 앞세워 자행돼온 독재체제를 합리화하는 데 이용돼왔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반공을 앞세워 자유와 평등, 국민주권을 부정했던 정권에 대한 객관적 규정, 즉 ‘독재’도 삭제했다. 그저 ‘장기집권에 따른 독재화’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독재의 실체적 내용인 자유와 민주주의의 유린을 덮어버림으로써 학생들이 독재체제를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없애버렸다.
게다가 친일파 청산의 의지와 과정, 결과에 대한 기술을 집필기준에서 없앴다. 역대 독재정권과 그 부역자들은 대부분 그 뿌리를 친일파에 내리고 있었다. 이승만, 박정희 정권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아마 가장 큰 수혜자는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인 박근혜 의원일 것이다.
내용 왜곡 문제보다 더 걱정스러운 건 교육의 중립성 훼손이다. 역대 독재정권이 가장 먼저 농단하려 한 것은 학교교육을 정권의 이데올로기 주입 수단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파시즘, 공산주의 등 모든 전체주의 정권에서 그러했다. 이명박 정권도 지금 그 대열에 발을 디밀고 있다.
그렇다고 두려워할 일은 아니다. 학문의 자유를 억압하고, 교육의 중립성을 왜곡한 정권의 말로는 자명했다. 이 땅의 이승만, 박정희 독재정권은 물론 다른 전체주의 정권의 종말은 예외없이 비참했다. 학계뿐 아니라 우리 국민이 불행을 막는 데 함께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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