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황야의 무법자

道雨 2011. 11. 8. 17:05

 

 

 

               황야의 무법자
 

 

» 정연주 언론인
10·26은 여러 면에서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다.

 

1909년 이날에는 안중근 의사가 조선의 식민지화를 진두지휘하던 초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여 조선의 혼과 의기를 보여주었다.

그로부터 70년 뒤인 1979년 이날,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유신의 심장’인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하여 박정희 시대의 막을 내리게 했다.

 

올 10·26에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야권연대 시민후보 박원순 변호사가 큰 표차로 당선되어 토목·개발·전시 행정을 주도해온 이명박·오세훈 시대에 마침표를 찍게 했다.

 

이번 ‘10·26 사건’은 단순한 서울시장의 교체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가치와 생각의 틀, 그것을 전파하는 미디어 세상에 큰 변화가 있음을 보여준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이명박 정권, 한나라당, 그리고 이 수구세력을 떠받치면서 일방적 홍보를 해온 방송과 수구언론의 패배인데, 그것을 관통하는 것은 낡은 생각과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날로그 세력의 패배다.

 

이 가운데서도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수구언론의 한계와 패배가 특히 눈에 띈다.

숫자로만 보면, 우리의 언론 조건은 거의 90 대 10으로 수구세력에 일방적으로 유리하다. 한나라당적 가치를 공유할 뿐 아니라 그 체제의 연장을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해온 조·중·동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방송, 경제지, 다수의 신문들은 한나라당 정권, 자본, 강자, 수구세력에 매우 친화적이다.

 

그런데도 졌다.

심지어 사나운 사냥개처럼 박원순 후보를 물어뜯었는데도 졌다. ‘장내 언론’에서 차지하는 90의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두 개의 요인이 핵심적으로 작용했다.

 

첫째는, 투표를 통해 정치에 참여하면서 세상을 바꿔놓기 시작한 젊은 세대는 조·중·동을 거의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구언론의 영향력은 그들의 충성스러운 독자들 세계에 머물러 있음을, 그래서 ‘그들만의 리그’임을 이번 10·26은 다시 확인해 준다.

 

지난 8월 무상급식과 관련된 서울시 주민투표가 있기 전,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인 정두언 의원의 발언인 “우리 (한나라당) 의원들이 너무 조·중·동에 편향돼 여론과 민심을 정확히 읽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 확인된 셈이다.

 

둘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인터넷, ‘나꼼수’로 대변되는 디지털 ‘장외 언론’의 힘이 이제는 아날로그 방식의 수구언론과 너끈히 맞짱을 뜰 수 있는 광활한 무대를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만리장성을 쌓아 난공불락처럼 보였던 아날로그 수구언론의 거대한 성벽 위로 날렵한 신예 에스엔에스 미사일들이 불꽃놀이 하듯 쏟아졌다.

이를 가능하게 한 디지털 혁명은, 내일은 또 어떤 ‘멋진 신세계’를 열어줄지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혁신의 속도와 폭이 현란하다.

 

그래서 10·26 이후 세상은 갑자기 많이 바뀐 것처럼 보인다. 아주 평민적인 서울시장의 모습이 연일 뉴스에 나오고,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은 안팎에서 터져나오는 비판과 질책에 카오스 상태에 빠진 듯하다.

수구세력이 이런 카오스적 혼란에 빠진 것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일란성 쌍둥이처럼 이 정권을 떠받쳐온 수구신문들이 돌연 날을 세우며 정권과 한나라당을 연일 질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대로 가면 우리 모두 공멸’이라는 패닉 상태에서 나오는 절망의 몸부림처럼 비친다.


이런 몸부림에는 절박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바로 독약이 들어 있는 종합편성채널 때문이다.

상당 규모의 초기 ‘침몰비용’(성크 코스트)이 들어가는 방송이 안정적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온갖 불공정 특혜를 듬뿍 안겨주는 수구정권이 장기집권을 해야 하는데, 10·26 결과는 아주 불길한 적신호였다.

 

그래서 황야의 무법자들이 사방으로 총을 마구 쏘아댄다. 수구세력의 장기집권을 위해 여당에는 정신 차리라고 총질을 하고, 야권에는 통합이 아닌 분열을 위해 총알을 쏘아댄다.

방송에서는 의무 재전송, 광고 직접영업, 황금채널 배정, 지상파와는 다른 여러 비대칭 특혜의 총질을 마구 해댄다.

방송계는 이 황야의 무법자 출현으로 모래바람이 자욱하다. 방송시장도, 언론토양도, 민주주의도 황폐해지고 있다. 이 무법자의 끝은 어디일까.

 

[ 정연주,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