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관련

조중동 사설을 보면서 한일합방을 생각한다

道雨 2011. 11. 16. 18:17

 

 

 

 


  조중동 사설을 보면서 한일합방을 생각한다

                                                                   (서프라이즈 / 화씨911 / 2011-11-16)

 

 

“대통령이 직접 국회를 찾아가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 타협안을 제시한 것은 전례없는 일이다.” 오늘(16일)자 동아일보 사설의 한 대목이다. 이런 내용은 동아일보만이 아니다.

오늘(16일) 조중동은 3개지 모두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를 찾아 여야 대표와 국회의장단을 만난 뒤 “국회가 한미 FTA 협정안을 비준해주면 3개월 내에 미국과 ISD 재협상을 요구하겠다”는 양보(?)안을 제시했다는 소식을 다루며 사설로 민주당에게 이 비준안 투표에 응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사실상 민주당에게 항복문서에 사인하라는 최후통첩성 내용이 곳곳에 숨겨 있는 사설들이었다.

 

▲ 조선일보 16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사설 제목을 “FTA 반격 나선 日 보고도 대통령 타협안 걷어찰 건가”로 잡았다.

이는 일본이 12일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의 협상에 참여하겠다는 발표를 한 것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조선일보의 논조는 일본정부의 TPP 참여선언이 나온 뒤 일본 국민여론이 반대 일변도이고 이에 일본의 노다 총리도 “국민이 반대하면 급하게 할 일은 아니”라고 물러선 것은 쏙 빼먹은 꼼수다. 특히 일본이 이 협상을 타결한 것도 아니고 협상에 참여하겠다 정도인데도 그렇다.

협상에 참여한다는 것은 협상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즉 일본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빠질 수도 있는 말 그대로 협상에 참여하겠다는 선언 정도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금방이라도 이 협상이 타결되어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TPP경제권이 전 세계의 경제권 블록을 형성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러면서 이 사설은 “여야는 일본이 TPP를 서두르는 모습을 건너다보면서 이 나라의 장래를 위해 결단을 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 한다.”고 주문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 중앙일보 16일자 사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아예 사설 제목부터가 공격적이다.

중앙일보는 아예 “민주당은 대통령 제안받아 FTA 표결 나서라”는 제목으로 민주당을 부추긴다. 사설 내용도 매우 공격적이다. 아예 “민주당은 의원총회에서 다수 온건파의 의견을 수렴해 몸싸움 대신 반대표를 던지는 당론을 정해야 한다.”고 주문하는 것으로 민주당 지도부가 소수의 강경파에 끌려다니는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

물론 민주당의 협상파라는 사람들이 국회 합의처리를 주장하면서 서명한 수가 45명이니 원내 87명의 과반이 넘기는 한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는 합의처리는 대통령이 새롭게 제안했다는 “비준 발효 후 3개월 내 재협상요구”와는 매우 동떨어진다.

민주당 합의처리파 측의 요구는 “국회 비준동의 후 즉시 재협상 약속”이다. 중앙일보는 이를 무시하고 김성곤 등 소수의 협상파들이 맨 처음 제시한 “비준 발효 후 3개월 내 재협상요구” 내용에 민주당 과반수 이상 의원들이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아예 상정하고 있다. 철저한 왜곡이다.

 

▲ 동아일보 16일자 사설

 

동아일보는 이미 명박일보가 된지 오래지만 이번엔 제대로 명박일보의 특색을 드러냈다.

특히 “ISD는 4년 전 노무현 정부가 체결한 협정 원안에 들어 있던 것으로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투자자 보호 장치”라는 문구를 삽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끌고 들어간 것은 철저한 꼼수다. 그리고는 “민주당이 야권 통합이라는 정파적 노림수 때문에 한미 FTA를 희생시킨다면 국민의 호된 질책을 각오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노무현 대통령 지지자들까지 모두 한미 FTA를 지지하는 국민으로 둔갑시키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조중동의 논조를 보며 한일합방 앞서 진행된 상황들을 곱씹지 않을 수 없다.

일제는 1875년 9월 20일 조선 해안을 탐측 연구하기 위해 왔다고 핑계를 대고 운요호를 강화도 앞바다에 불법으로 침투시켜 해안 경비를 서던 조선 수군의 방어적 공격을 받게 했다. 이후 이에 대한 보복으로 막강한 해군력을 이용, 조선 수군에 함포공격을 가하고, 영종진에 상륙하여 막대한 인적·물질적 피해를 입히고 퇴각했다. 그리고는 이를 빌미로 일명 강화도조약으로 불리는 조일수호조약을 체결하게 했다.

 

1876년2월 27일(고종 13년 음력 2월 3일) 조선은 일본과 조일수호조약(朝日修好條約)을 체결하는데 이때 체결된 이 조약을 한일수호조약 또는 병자수호조약 등으로 부르기도 하며, 흔히 강화도조약이라 한다. 근대 국제법의 토대 위에서 맺은 최초의 조약인데 이 최초의 조약이 일본의 강압적 위협으로 맺어진 불평등 조약이었다.

 

이후 조선은 일본과 연이어 제물포 조약(1882년, 임오군란 처리조약… 조선이 일본에 배상해야 한다는 내용), 한성조약(1885년, 갑신정변 사후처리를 위한 조약), 한일 의정서(일명 조일 공수동맹… 1904년 2월 23일 이지용과 하야시 곤스케 명의로 공수동맹을 전제로 맺은 6개 항의 조약) 등의 조약들이 차근차근 맺어진다. 일본의 조선침략을 국제법적으로 정당하게 만들어 나간 것이다.

그런데 당시 조선의 일명 지도층은 이런 조약들에 대해 “이 길만이 조선의 살길”이라는 논리로 고종황제뿐만 아니라 반대세력인 민중들을 압박했다.

 

그리고 이런 조약들이 체결된 뒤 조선과 일본은 제1차 한일협약(1904년),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제2차 한일협약(1905년 을사늑약 )을 체결했으며, 이후 제3차 한일협약(1907년, 정미7조약 )에 이어 대한제국의 사법권과 교도행정에 관한 업무를 일본에게 넘겨주는 기유각서(己酉覺書)(1909년)까지 이어진 뒤 급기야 1910년 한일합병이 이뤄지는 것으로 일제의 조선침략은 조선과 일제의 병합이라는 결말을 맞은 것이다.

 

당시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조선의 민중들은 이런 불평등 조약들이 맺어질 때마다 거센 반대를 했다. 할복하고 자살하고 심지어 관공서를 쳐들어가고 민병대가 되어 관군과의 전쟁도 불사했다. 하지만 자신들의 기득권 보장을 확약받은 지도층들은 이런 민중들을 힘으로 논리로 압박하면서 자신들의 친일행각을 더욱 공고히 했다.

이들이 조선이 일본에 합병된 뒤에 모두 후박 남작 등의 작위를 받고 땅과 재산도 받고 총독부 산하 대신들이 되어 일제 통치의 주구 노릇을 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한미 FTA라는 초유의 조약을 국회가 비준하느냐 마느냐로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이 조약을 찬성하는 측은 모두가 기득권 세력들이며 이를 옹호하는 주류 언론들은 이들 기득권 세력을 추동하는 세력이다. 이들의 논조는 현재 이 조약의 체결만이 우리가 살길이라는 논리로 국민들을 압박한다. 또 국회의 날치기 사태가 나면 잘못에 대한 분석은 뒤로한 채 ‘난장판 국회’로 여야 모두를 싸잡아 비난하면서 국민들에게 정치 혐오증을 불러 일으키지만 실제로 이 조약의 국회통과를 힘으로라도 밀어붙이라고 한나라당에 공공연히 요구하고 있다.

 

오늘자 조중동 사설이 이를 증명한다. 말은 합의처리를 종용하는 것 같으나 민주당이 합의처리에 응하지 않으면 한나라당은 강행처리도 불사해야 한다는 요구가 그 핵심이다. 그리고 한나라당의 강행처리로 국회가 볼썽사나운 모양새를 연출하면 이들은 반대하는 민주당 등 야권을 이 사태의 주범으로 몰고 갈 것이다. 이런 사설을 보면서 100년 전 한일합방을 생각하는 사람은 비단 나뿐일까?

 

민주당은 이들의 요구에 굴복하면 안 된다. 난장판도 좋고 전쟁도 좋다. 힘으로 강행처리를 하겠다고 나선다면 국회에서 옥쇄를 각오로 저지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당이 살길이고 역사에 매국노로 남지 않은 길이다. 민주당의 맹성을 촉구한다. 야권연대가 문제가 아니다. 당신들의 생존 문제다. 당신들마저 매국노가 되지 말라. 한미 FTA는 ISD만 문제가 아니다. 조약 자체가 문제다.

 

화씨 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