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사찰 관련

민간인 사찰, 무엇이 그들을 두렵게 하는가

道雨 2012. 3. 14. 12:55

 

 

 

  민간인 사찰, 무엇이 그들을 두렵게 하는가

                                                                                         (서프라이즈 / 안호용 / 2012-03-14)


 권력이 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한다면 그 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그러한 행위는 권력이 국민의 인권을 유린하는 행위이며 그것은 전제주의 국가에서 나 볼 수 있는 절대권력의 한 단면이다.

 

우리는 이런 국가를 많이 보아 왔다. 일찍이 조지 오웰은 1984년이란 소설에서 거대한 절대 권력의 실상을 우려했고, 역사적으로도 과거의 전제주의 국가와 공산주의 국가에서 그리고 현재의 중국과 북한 등에서도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물며 국민에 의해 만들어진 권력이 여론 수집이라는 명목하에 온·오프상에서 국민의 동향을 일거수일투족 모니터링하고, 그리하여 불순한 세력이나 개인이 다분히 주관적인 그물망에 걸려들고, 그것을 통제하고 나서는 현상들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민주주의의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너무나 당연한 교과서적인 법칙이다.

그런 권력이 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한다면 민주주의는 해체되고 국가는 혼란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의 근본이 변질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범죄이다.

그것은 국기 문란이며 더 나아가면 친위 쿠데타적 발상이며 그 정권은 존재할 가치가 없어진다.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이 그것을 설명해주고 있다. 과도한 권력이 만들어내는 비극이다.

 

권력은 국민을 불의로부터 보호를 해 주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과 검찰과 법원의 존재 이유가 국민을 불의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다.

 

국민은 뭉치면 권력이 되지만 하나의 개인이 되면 너무도 나약한 존재가 된다. 그 개인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으로 권력이 해야 할 행위이다. 그것이 민주주의 근본이며 시작이다. 그래서 개인은 소중하며 그 인권도 중요하다.

 

 

 

2012년 대한민국에서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이다. 그 사건의 전말은 언론에 많이 나와 있기 때문에 재구성하는 번거로움은 피하겠다.

(참조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31522.html )

 

중요한 것은 청와대가 그 사건에 개입했느냐, 했으면 어느 선까지냐 하는 윗선 개입 의혹이다. 이런 의혹은 2010년 검찰에서 수사를 하면서 여론의 질타에도 꿈쩍 하지 않은 채 국무총리실까지만 손을 보고 다루지 않았었는데, 근자에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의 ‘청와대 증거인멸 지시’ 폭로 녹취록 등이 여기저기서 계속 나오고, 야당에서도 쉽게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검찰이 약간은 동요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참조http://media.daum.net/politics/dipdefen/newsview?newsid=20120313030906530&cateid=1068)

 

‘김준규 전 검찰총장마저 실패한 수사’라고 인정할 정도로 어느 누가 보아도 깃털만 사법처리한 결과를 만들어 낸 검찰이 재수사를 할지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설령 재수사를 한다면 청와대를 건드려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고, 건드린다면 어디까지 손을 봐야 하는지 정말 난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정치 검찰의 한계를 유리창으로 생생하게 보는 것 같아 흥미롭다.

 

과연 검찰이 권력으로부터 해방되어 불의를 처단할지 한번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는 포인트다. 죽은 권력한텐 냉혹하고 무자비하지만 살아있는 권력한텐 인심 후한 옆집 아저씨가 되는 검찰의 속성을 너무도 잘 알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서 더 흥미가 있는지도 모른다. 반전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더구나 정권 말기이지 않는가.

 

청와대는 권력의 핵심이다. 권력의 꼭지점이 청와대이다.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못할 일이 없다. 그만큼 유혹도 많다. 그 유혹이란 것은 정의롭지 못한 욕망을 말한다. 위의 사건이 대표적인 예이다.

정의가 불의를 꼭 이기지는 못하지만 언젠가는 밝혀지기 마련이다. 권력은 못된 짓의 유혹에 취약하며 그것이 아킬레스건이고 약점이며 속성이다.

 

청와대의 개입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왜 그러한 일을 저질렀는지, 무엇이 두려워 독재시대에 쓰던 방법을 동원하여 장난을 쳐야만 했는지, 그런 일이 얼마나 위험한 짓이며, 세상에 노출되었을 경우 감당하지 못 할 어떠한 후폭풍을 예상은 했는지, 가만히 생각해보면 너무나 무모한 짓이 아닐 수 없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살아있는 권력을 비판하고 때론 조롱하는 일개 블로거를 가차없이 응징해버리는 그들의 행위는 대단히 조폭적이며 야만의 시대에서나 나올 해결 방법이 아닐 수 없다.

21세기 하이테크 정보화시대에서 백주대낮에 권력 비판을 한 일개 시민을 색출하고 처단하는 대한민국의 권력은 무언가 열등감이나 콤플렉스가 있는 건 아닐까?

혹시 도덕적 자격지심이나, 허물을 감추려는 반사적 대응이나, 아니면 태생적 전제주의적 사고방식이나, 나를 비판하는 놈은 죄다 빨갱이다라는 초 극우적인 신념 등이 버무려져 있는지, 하여튼 그들의 행동은 정신과 치료를 요할 만큼 정서적으로 문제가 많다.

 

비판도 소통이고, 조롱도 소통이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주는 것도 소통이다.

권력자는 자신의 귀를 즐겁게 하는 말만 귀여워(?)할 것이 아니라 듣기 거북한 말도 들어주어야 하는 열린 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 소통이 권력자의 미덕이다.

그것을 거부한다면 국가는 혼란에 빠지며, 그런 현상들을 우리는 역사에서 학습해 왔다.

 

신하는 생리적으로 원래 눈치 백 단인 법, 그런 불통의 군주의 뜻을 헤아려 알아서 처리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조금 적극적으로 표현하자면 결과적으로 군주가 그렇게 하게 만드는 것이다.

신하는 군주의 그릇에 맞추는 물과도 같다. 그릇이 타원형이면 타원형으로 물이 채워지는 법이다.

 

안호영 


출처 :
http://blog.daum.net/jingi8816/?t__nil_login=myb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