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사찰 관련

‘청와대가 증거인멸 지시’ 확인하고도 검찰은 재수사 머뭇

道雨 2012. 3. 14. 15:35

 

 

 

‘청와대가 증거인멸 지시’ 확인하고도 검찰은 재수사 머뭇

ㆍ초기 부실수사 부담에 청와대 눈치보기

청와대가 ‘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증거인멸을 지시한 사실이 각종 진술과 물증을 통해 확인되고 있지만 검찰은 재수사에 소극적이다.

민간인 사찰 재수사는 결국 청와대가 주된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초기 수사에서 ‘꼬리 자르기’식 수사를 한 검찰이 청와대 눈치를 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크게 3막으로 구성돼 있다.

1막은 민간인에 대한 총리실의 불법사찰 단계다.

핵심은 두 가지다.

2009년 전 KB한마음 대표 김종익씨를 불법사찰토록 지시한 ‘윗선’이 누구냐이다.

다른 하나는 김씨 외에 민간인에 대한 다른 불법사찰이 있었는지 여부다.

 

이영호 당시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불법사찰의 ‘윗선’ 연결고리 역할을 했고, 김종익씨 건 외에도 정치인과 민간인을 상대로 한 광범위한 불법사찰이 있었다는 의혹이 무수히 제기됐다.

그러나 2010년 서울중앙지검 불법사찰 특별수사팀은 ‘불법사찰의 윗선은 없고, 김종익씨 건 외에 다른 불법사찰도 없었다’고 결론냈다. 처벌은 총리실 실무자들만 받았다.

* 민주통합당 ‘이명박 정권비리 및 불법비자금 진상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인 박영선 의원(오른쪽)과 이재화 변호사가 13일 국회에서 장진수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과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의 대화 녹취록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2막은 증거인멸 단계다.

2010년 7월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불법사찰을 벌인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압수수색했다. 그러나 사찰자료가 담겨있던 컴퓨터 하드디스크는 이미 파기된 상태였다.

검찰 수사 결과 장진수 당시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이 압수수색에 대비해 파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장 전 주무관에게 증거인멸을 지시한 ‘윗선’이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검찰은 증거인멸 당일 최종석 당시 청와대 행정관이 장 전 주무관에게 대포폰을 건넨 사실을 파악했다. 최 전 행정관이 증거인멸을 지시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검찰은 최 전 행정관은 한 차례 출장조사한 뒤, 지원관실 진경락 전 과장이 증거인멸을 지시한 것으로 결론냈다.

3막은 검찰 기소 이후 사건무마 단계다.

장 전 주무관은 재판 과정에서 증거인멸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고 했지만, 최 전 행정관은 이를 필사적으로 만류했다.

최근 장 전 주무관의 ‘양심고백’, 장 전 주무관과 최 전 행정관의 대화 녹취록을 통해 불법사찰 사건의 사후 수습단계라고 할 수 있는 2막과 3막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먼저 청와대가 증거인멸의 ‘몸통’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장 전 주무관은 “최종석 전 행정관이 증거인멸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최 전 행정관은 증거인멸의 진실을 폭로하려는 장 전 주무관에게 “민정수석실도, 총리실도 다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청와대) 민정에서 ‘장진수가 무슨 허튼 소리를 하고 다녀 큰일났다’고 뒤집어졌다”며 “민정에서도 다 알고 있다. 내가 얘기했다”고 했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권재진 현 법무장관이다.

최 전 행정관은 또 “이영호 비서관한테는 내가 원망하는 마음이 좀 있지만, 저 사람을 여기서 더 죽이면 안되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는  이영호 전 비서관이 증거인멸을 지시했음을 시사한다.

청와대와 검찰이 증거인멸 사건의 처리 수위를 협의했음을 암시하는 증언도 나왔다.

장 전 주무관은 “최 전 행정관이 증거인멸을 지시하며 ‘청와대 민정수석실, 검찰과 모두 얘기를 끝낸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최 전 행정관은 “검찰이 나에게 절절맨 것은 내가 죽으면(내가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면) 재수사, 특검 갈 수밖에 없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증거인멸의 윗선은 불법사찰의 윗선과 연결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검찰이 재수사에 착수하는 경우 일단 불법사찰의 사후 증거인멸과 사건무마 과정이 수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알려진 정황에다 당사자(장 전 주무관)의 직접 진술과 물증(녹취록)까지 확보됐기 때문이다.

이는 곧 청와대와 검찰 고위층이 재수사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권력 핵심부의 기류에 민감하고 ‘제 식구’를 치는 데 인색한 검찰로서는 매우 부담스러운 상황인 셈이다.

검찰 관계자는 13일 “장 전 주무관의 진술이 재수사의 근거가 되는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 전 주무관의 최초 폭로가 나온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같은 얘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검찰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총선을 앞두고 재수사를 벌이는 것은 적절치 않다. 또 재수사를 통해 어떤 결과를 내놓더라도 ‘꼬리 자르기’라는 얘기를 들을 수밖에 없다. 대선까지 야당에 정치공세의 빌미만 제공할 뿐”이라고 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재수사는 결국 한상대 검찰총장의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했다. 검찰 수뇌부에선 재수사에 대한 부정적 기류가 우세하고, 이는 곧 한상대 검찰총장의 의중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정제혁 기자 jhj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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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수 성폭행’문제까지 사찰했다

수사 비껴갔던 이영호·최종석부터 민정수석실까지 캐내야 할 판

 

■ 靑 '민간인 사찰 은폐' 개입 정황… 재수사 불가피
MB 최측근 인사인 정동기와 권재진 당시 민정수석 맡아
개입사실 확인되면 사태 걷잡을 수 없어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수사 당시 청와대가 증거인멸에 개입한 구체적인 정황과 진술이 속속 나오면서 재수사는 당연한 수순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장진수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이 14일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으로부터 입막음용으로 2,000만원을 받았다는 주장까지 제기, 파문은 갈수록 확대되는 양상이다. 재수사가 진행될 경우 2010년 검찰 수사 때 밝혀내지 못한 각종 의혹들이 수사 대상이 될 전망이다.

검찰은 2010년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를 불법 사찰한 혐의로 이인규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 등 3명을 기소하고, 증거인멸에 가담한 혐의로 장 전 주무관과 직속상관인 진경락 전 기획총괄과장도 함께 재판에 넘겼다. 이들은 총리실 소속으로 당시 검찰 수사결과만 보면 이 전 지원관이 최고 '윗선'에 해당된다. 장 전 주무관에게 대포폰을 주고 증거인멸을 지시한 의혹을 받은 최종석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 행정관은 검찰 수사망을 비껴 나갔으며, 불법사찰 사건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의심받았던 이영호 전 비서관도 법정에 서지 않았다.

하지만 장 전 주무관의 폭로로 최 전 행정관과 이 전 비서관의 개입 정황이 드러난 만큼 재수사가 시작되면 이들 두 사람에 대한 조사가 우선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이 전 비서관이 속했던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에 매달 특수활동비로 280만원을 전달했다는 장 전 주무관의 진술도 청와대 개입 의혹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정권의 심장부인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대한 수사 여부도 초미의 관심사다. 김 전 대표에 대한 불법사찰이 있었던 2008년 당시 민정수석은 정동기 전 대검 차장이고, 청와대 공직기강팀장은 이강덕 서울경찰청장이 맡고 있었다. 검찰 수사에 대비한 증거인멸 행위가 벌어진 2010년에는 권재진 법무장관이 민정수석 자리에 있었다. 모두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들로, 이들이 불법사찰 사건에 개입했거나 보고를 받은 사실이 확인될 경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수 있다.

민정수석실이 개입한 정황은 이미 드러났다. 장 전 주무관이 최근 공개한 녹음파일에는 최 전 행정관이 장 전 주무관에게 "(법정에서 사실대로 말하면) 민정수석실도 자유롭지 못할 테고 총리실도 다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내용이 들어있다. 민정수석실에서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과정에 깊숙이 개입했음을 단적으로 시사하는 부분이다. 야당은 압수수색 직전 파기된 총리실 직원 컴퓨터에서 '민정수석 보고용' 이라는 폴더가 발견됐다며 공세를 취할 태세다. 불법사찰을 지시한 윗선이 증거인멸까지 지시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이다.

김 전 대표 이외에 정치인 등 불법사찰 대상이 더 있었는지도 관심사다. 통합민주당 이석현 의원은 지난해 6월 "정부가 세종시 문제로 파란을 겪은 2009년 박근혜 전 대표를 집중 사찰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또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차장 밑에서 일했던 국정원 직원이 김성호 전 국정원장 등을 사찰했다고 주장했으며, 촛불집회 사진을 전시했던 작가와 여가수 성폭행 내용 등이 적힌 공직윤리지원관실 수첩을 공개하며 추가 민간인 사찰이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새누리당 남경필 정두언 정태근 의원도 정치인 사찰 의혹을 제기하며 당시 검찰 수사가 미흡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 한국일보 강철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