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사찰 관련

“피해 있으라, 사실 밝히면 못 돌봐준다”

道雨 2012. 3. 21. 19:23

 

 

 

 “피해 있으라, 사실 밝히면 못 돌봐준다”
 장진수 전 총리실 주무관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이 수사·재판 등 모든 상황 컨트롤하며 증거인멸과 도피를 지시했다” 증언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하 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관련 증거인멸을 최종석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 행정관이 지시했다는 증언(901호 표지이야기 ‘청와대가 민간인 불법사찰 개입 해명할 차례다’ 참조)에 이어, 이번엔 최 전 행정관이 증거인멸에 연루된 지원관실 직원에게 검찰 수사를 피하라고 지시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청와대 지시란 팩트는 말하지 말라”

 

“최 행정관이 ‘검찰 수사가 시작됐으니, 며칠 동안 어디 휴가 좀 가서 피해 있으라’고 했다. 당시 진경락 (전 지원관실 총괄지원)과장은 이미 검찰 조사를 받기 시작했을 때였다.

나를 포함해 지원관실 주무관 3명이 다 그 말을 듣고 며칠씩 휴가를 다녀왔다.” 장진수 전 지원관실 주무관이 3월6일 <한겨레21>과 한 전화 통화에서 이렇게 밝혔다.

 

검찰이 진 전 과장을 소환한 것은 2010년 7월29일이며, 장 전 주무관은 8월 중순에 이르러서야 검찰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장 전 주무관은 “나는 닷새 정도 휴가를 낸 걸로 기억하는데, 그때 검찰이 출석을 요구했다. (피해 있으라는 최 전 행정관 말대로) 전화도 안 받다가 휴가를 다녀온 뒤 출석했다”고 했다.

 

장 전 주무관 말대로라면, 최 전 행정관은 진실이 드러날 수 없도록 검찰 수사에 앞서 대비책을 마련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 증거인멸을 지시한 것으로도 모자라, 실행 당사자인 장 전 주무관 등을 ‘도피’시켜 수사를 지연·방해하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최 전 행정관은 장 전 주무관이 검찰에서 사실을 털어놓지 못하도록 수사 초기부터 2심 재판이 끝난 뒤까지 여러 방법으로 그를 회유했다.

장 전 주무관은 “수사와 재판을 받으면서는 모든 상황을 최 행정관이 컨트롤했다”고 말했다. 변호인을 선임해준 것도 최 전 행정관이었다.

 

장 전 주무관의 얘기는 이렇다.

장 전 주무관이 수사를 받기 시작하자 최 전 행정관은 변호사들과 함께 장 전 주무관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최 전 행정관은 “어차피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지운 건 네가 한 일이니 어쩔 수 없지만, 증거인멸을 청와대가 지시했다는 팩트는 말하지 마라. 그걸 말하면 형량만 늘고, 너만 나쁜 × 된다”고 말했다. 그는 “‘위’에 다 얘기해놨으니, 법원에서 형량을 낮춰주겠다. 우리도 인맥들이 있으니 노력하겠다. 하지만 사실을 전부 말할 경우엔 우리도 너를 돌봐주지 못한다”는 말도 했다.

 

재판 진행 과정에서도 장 전 주무관이 입을 열지 않게 하려는 최 전 행정관의 회유는 계속됐다. “내가 너를 평생 먹여살리겠다. 직장을 알선해줄 수도 있고, 내가 공무원 그만둔 뒤 공인노무사를 하게 되면 데리고 일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잘 아는 대기업 부사장에게 말해 그 회사에 넣어주겠다”거나 “윗분들한테 부탁해서 연봉이 많은 정부 산하 협회에 일자리를 알아봐주겠다”는 제안도 했다고 한다.

 

» 민주통합당 ‘MB정권비리 및 불법비자금진상조사특위’의 이재화 변호사(왼쪽)와 박영선 의원이 3월5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민간인 사찰 관련 증거인멸을 청와대가 지시했다는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의 증언 녹취록을 설명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또다른 증거인멸 지시 의혹도

진경락 전 과장은 검찰 조사를 대비한 세세한 ‘코치’로 최 전 행정관을 거들었다.

먼저 검찰에 다녀온 진 전 과장은 장 전 주무관 등 지원관실 직원 3명을 차에 태운 뒤 서울 통의동 파출소 뒤 골목길로 이동했다. 차를 세운 진 전 과장이 보여준 것은 자신의 검찰 조서 복사본 1부였다. 신문조서 몇 대목을 읽어주며 그는 검사의 추궁을 피하는 요령을 알려줬다.

“구체적인 물증이 나오기 전까진 무조건 부인해라. 물증이 나오면 그땐 잘 모르겠다고 해라.” 피할 방법이 없을 땐 “누군가의 지시를 받았다고 하면 조직적인 범행이 된다. 법원은 ‘조직적’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더 중형을 내리니, 형량을 낮추려면 단독 범행이 낫다”는 말도 했다.

이와 관련해 진 전 과장은 “시간이 흐르면 다 알려질 일”이라며 “아직도 재판 중인데, 확인되지 않은 말이 많아지는 건 원치 않는다”고 전화를 끊었다.

 

장 전 주무관은 또 다른 메가톤급 증언도 내놨다.

최 전 행정관이 김아무개 행정안전부 주무관에게도 증거인멸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김 주무관은 경북 안동 출신으로 지원관실 설치 때부터 2009년 7월까지 파견된, 장 전 주무관의 전임자다. 장 전 주무관의 주장에 따르면, 진경락 전 과장은 2010년 7월3일 저녁 총괄지원과 직원들에게 “전문가가 와서 일을 할 게 있으니 방을 비우라”고 지시했다.

 

사무실에서 나가려던 장 전 주무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김 주무관이었다. 두 사람은 업무 인수인계 때문에 알고 있던 사이였다.

김 주무관은 “사무실로 갈 테니 기다려라”고 했다. 진 전 과장의 지시 때문에 나가야 한다는 장 전 주무관에게 그는 “내가 가는 거다. 다른 직원들은 다 보내고, 넌 그냥 있으라”고 했다.

 

밤 11시가 넘어 김 주무관이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는 가져온 휴대용 USB 저장장치를 진 전 과장의 컴퓨터 두 대에 차례로 꽂아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뭘 하는 건지 묻자 김 주무관은 “최종석 행정관 부탁으로 왔다. 예전에 지운 파일을 복원이 어렵도록 확실히 보안 조치를 하는 거다. 이건 문제되지 않는다”고 했다.

장 전 주무관은 “정확한 명칭은 모르지만, 이레이저(Eraser)와 같은 파일 삭제 프로그램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조치’ 때문에 장 전 주무관은 이틀 뒤인 7월5일 아침 지원관실 컴퓨터 파일을 삭제할 때 진 전 과장의 컴퓨터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김 주무관이 진 과장의 컴퓨터 파일을 삭제한 건, 그가 지원관실을 떠난 지 1년이나 지났을 때다. 최 전 행정관에게 업무 ‘지시’를 받을 관계가 아니었다. 장 전 주무관은 “김 주무관이 행안부로 복귀한 뒤 그날 말고는 지원관실 일을 도와주거나, 사무실에 온 적이 없었다”고 했다. 김 주무관이 최 전 행정관에게서 개인적으로 ‘부탁’을 받아 이런 일을 했다면, 그는 최 전 행정관의 깊은 신임을 받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진 전 과장은 최 전 행정관 등 청와대와 긴밀히 접촉하며 지원관실 운영을 실질적으로 도맡은 인물이다. 검찰 수사가 코앞에 닥친 상황에서 가장 먼저 없애버려야 할 것이 진 전 과장의 컴퓨터였던 셈이다.

이와 관련해 김 주무관은 <한겨레21>과 한 전화 통화에서 “거기에 대해선 할 말이 없고, 말할 위치에 있지도 않다”며 “(나도) 그 건에 대해서는 잊고 싶은 사람인데, 더 얘기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답변을 거부했다.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파견 근무 중인 최 전 행정관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박영준 당시 총리실 국무차장의 그림자

장 전 주무관의 주장엔 민간인 불법사찰과 증거인멸의 ‘윗선’을 짐작하게 하는 구체적인 내용도 나온다.

총리실 소속인 지원관실의 공식 보고 라인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다. 그러나 지원관실 설치·운영을 주도한 것은 박영준 당시 총리실 국무차장의 핵심 측근인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라는 의혹이 여전하다.

 

검찰은 이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장 전 주무관은 “고용노사(비서관)가 이 조직(지원관실)을 움직인 건 공무원이라면 다 안다”며 “내가 지원관실에 발령받아 처음 인사하러 간 사람도 이영호 비서관이었다”고 했다.

“지원관실에 첫날 출근했더니, 진경락 과장이 나를 청와대로 데리고 갔다. 건물 이름이 여민관이었던 것 같은데, 그 건물 3층에 가니 복도를 가운데 두고 한쪽에 고용노사비서관실, 다른 한쪽에 민정1실이 있었다.

진 과장은 ‘우리 라인은 민정이 아니라 고용노사다. 앞으로 민정 쪽에는 비밀을 지키라’고 했다. 그러더니 고용노사비서관실에 들어가 이영호 비서관에게 인사를 시킨 뒤 최종석 행정관을 소개해줬다.” 장 전 주무관의 증언이다.

 

그가 전임자인 김 주무관에게서 처음으로 인수인계를 받은 일도 이 전 비서관을 위한 운전이었다.

장 전 주무관은 “전임자는 ‘이비’(EB)는 성격이 급해서 네가 운전을 잘해야 된다. 차가 막혀 빨리빨리 못 가면 한 소리 듣는다’고 전했다”며 “이 전 비서관을 가리키는 ‘이비’라는 말도 그때 처음 들었다”고 말했다.

진 전 과장을 통해 ‘청와대에 몇 시까지 차를 대라’는 지시를 받으면, 그는 총리실 관용차를 운전해 이 전 비서관을 ‘모시러’ 갔다. 일주일에 두세 번꼴로 시내 호텔 등 이 전 비서관의 약속 장소나 그의 집 앞에 내려주고 돌아왔다.

 

이렇게 이 전 비서관의 운전기사 노릇을 하며 장 전 주무관은 이 전 비서관이 박영준 전 차장을 ‘형님’이라고 부른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통화도 잦았다. 이 전 비서관과 박 전 차장이 만난 장소인 서울시내의 한 호텔을 예약하고, 정부구매카드로 결제를 한 적도 있었다.

 

민주통합당 ‘MB정권비리 및 불법비자금진상조사특위’가 장 전 주무관을 만난 뒤 공개한 녹취록엔 “2010년 4~5월쯤 ㅍ호텔 5층 회의실을 잡아드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박영준 차장이 이영호 비서관과 회동을 하는 자리였다. 내가 다음날 (호텔에) 가서 정부구매카드로 결제를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장 전 주무관의 주장대로라면, 이 전 비서관은 공식 업무와 관련이 전혀 없는 일에 국가 재산과 인력을 사적으로 유용한 셈이다. 그러나 전임자와 상관, 지원관실 직원 모두 상급부서를 고용노사비서관실이라고 생각했기에, 장 전 주무관 역시 의문을 품지 않았다.

 

 

민주당 “검찰 축소수사 일관하면 특검”

장 전 주무관은 “고용노사비서관실에 보고해야 할 업무가 적힌 업무분장표도 있었다”고 말했다. 어떤 업무는 고용노사비서관실에 동그라미, 어떤 업무는 민정수석실에 동그라미, 또 다른 업무는 두 곳 모두에 동그라미가 된 표라고 한다.

 

장 전 주무관은 “‘이비는 (지원관실에서) 손 떼라, 그만. 민정에서 하겠다’고 위에서 지시가 있었다. 그래서 진경락 과장이 업무분장표를 만들었다”고 했다.

지원관실의 운영 실태가 명백히 드러난 이 업무분장표를 검찰은 압수수색 때 가져가지 않았다.

장 전 주무관은 “압수수색에 성의가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검찰이 처음부터 ‘윗선’을 밝힐 생각이 없었다는 의심인 셈이다.

 

민주당은 “(‘윗선’을 밝힐) 결정적 증거가 나온 만큼 검찰은 즉각 재수사해야 한다. 축소수사로 일관된다면 특검에 의해 해결될 문제”라고 밝혔다.

검찰은 즉각 재수사에 나서기보단, 민주당 등이 고발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여전히 검찰은 진실을 적극적으로 밝힐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