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사찰 관련

검찰 이미 국민 앞에 ‘죄인’, 철저 수사로 사죄해야

道雨 2012. 3. 22. 14:04

 

 

 

검찰 이미 국민 앞에 ‘죄인’, 철저 수사로 사죄해야

                                                                  (블로그 ‘사람과 세상사이’ / 오주르디 / 2012-03-21)

 

 

황당한 기자회견이었다. 이영호 전 청와대 비서관(이하 직함 생략)은 격한 목소리로 “불법사찰을 한 일이 결코 없다”며 강력하게 부인하면서 하드디스크 파괴를 지시한 것과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 2000만원을 건넨 사실은 인정했다.


1년 8개월 만에 ‘청와대 개입’ 의혹 확인된 셈

궤변이다. 잘못은 했지만, 잘못이 아니란다. 녹취록 공개 등으로 더 이상 숨기기 어렵게 된 최소한의 사실만 인정하고 나머지는 ‘정치공작’으로 몰아붙였다. 업무적인 행위일 뿐인데 이를 민주통합당이 불법사찰로 몰아갔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러면서 “청와대나 민정수석실이 지시한 사실은 결코 없다”고 했다. 공개된 녹취록과 입막음용 돈의 흐름 등으로 볼 때 청와대의 개입이 확실해 보이는데도 아니라고 우기니 말문이 막힌다. 아무튼 ‘청와대가 증거인멸을 지시했다’는 의혹이 1년 8개월 만에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봐주기 수사’를 한 검찰조차 하드디스크 파괴를 증거인멸로 보고 관련자를 기소했고 법원도 혐의를 인정했는데도 이영호는 “증거인멸이 아니다”라고 몽니를 부렸다. 2000만원을 준 것도 ‘입막음용’이 아니라 “(장 전 주무관의 사정이) 딱해서 선으로 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진수가 이영호의 직속부하도 아니다. 근무처도 청와대와 총리실로 서로 다르다. 그런 장씨에게 단순히 선의로 큰돈을 줬단다. ‘입막음용’이라고 밝힌 부하직원의 녹취록까지 공개됐는데도 오리발이다.


황당한 이영호 기자회견, 사태 더 악화시켰다

보수신문들도 이런 이영호가 황당했나 보다. 진보성향의 신문보다 더 강한 어조의 기사를 쏟아냈다.

<“내가 몸통이다” 깃털의 자백, “청와대가 회견시켰나” 묻자 “아니라고!” 버럭 소리질러>(조선일보)
<“불법사찰” 유죄판결에도 李 너무도 당당히 “그런 사실 없다”>(동아일보)
<장진수 소환 … ‘영포라인’ 향하는 민간인 사찰 수사, 청와대 개입 수사 본격화>(중앙일보)

결정적인 ‘물증’이 나온 거나 진배없는데도 불법사찰 자체를 부인하며 핏대를 세우는 전 청와대 비서관. 이런 진풍경의 원인제공자는 검찰이다.

2010년 당시에도 청와대의 지시에 의한 증거인멸로 볼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가 있었다. 바로 이영호의 대포폰이다. 증거인멸 직전 이영호의 부하인 최종석이 “이 비서관이 쓰던 것”이라며 장진수에게 대포폰을 건넨 게 사실로 드러났지만, 검찰은 대포폰에 대한 수사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검찰도 원인제공자

압수수색도 엉터리였다. 장진수의 증언에 의하면 검찰은 총리실 지원관실을 압수수색하면서 관련 서류 대신 빈 박스에 신문지를 채워 가져갔고, 청와대 개입의 ‘물증’일 수 있는 이영호가 포함된 업무분장표를 보고도 가져가지 않았다. 또 장씨는 “이영호의 부하직원이 하드디스크 파괴를 지시하면서 ‘검찰이 먼저 증거인멸을 요구했다’고 말했다”고 밝힌 바 있다.

공개된 녹취록과 장진수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당시 검찰이 부실 축소수사 수준을 넘어 청와대와 공모해 범행을 은폐한 게 된다. ‘정치검찰’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검찰과 권력과의 야합이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2010년 검찰은 이영호와 그의 부하 최종석에 대해 소환 조사를 하고도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대신 장진수 등 지원관실 실무자들만 구속기소했다. ‘꼬리자르기’ 수사가 어떤 건지 명확하게 보여준 셈이다.

 

‘입막음용 돈의 흐름’이 만만치 않다. 이영호가 2000만원, 이영호의 부하직원인 최종석이 4000만원, 민정수석실 장석명 비서관이 5000만원을 장진수에게 건넨 것으로 밝혀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장진수가 공개한 녹취록에는 청와대 쪽에서 현금 5~10억원을 주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돼 있다. 임태희 당시 비서실장은 구속기소된 이인규, 진경락 등에게 적지 않은 액수의 금일봉을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영호 기자회견, 또 ‘꼬리자르기’ 해달라는 요구

이영호는 기자회견에서 “내가 몸통이다”는 말을 반복했다. ‘재수사를 내 선에서 멈춰달라’는 의도로 풀이된다. 검찰에게 ‘두 번째 꼬리자르기’를 해 달라고 요구한 거나 마찬가지다. 2010년에 봤던 ‘꼬리자르기’가 또 재현될까.

국민이 바보이고 천치가 아닌 이상 이번 만큼은 ‘꼬리자르기’가 결코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청와대가 불법사찰을 주도했고 증거인멸을 지시했다는 똑 떨어지는 정황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1. 청와대의 소행이라는 증거

▲사회정책수석실(고용노사비서관)이 집요하게 증거를 없애려 했다.
▲민정수석실이 장진수의 입을 막기 위해 적극 나섰다.
▲ 비서실장과 비서관들이 ‘입막음용’으로 큰돈을 건넸다.

2. 입막음용 돈이라는 증거

▲별반 관련도 없는 사람에게 거액을 그냥 줄 리 없다.
▲계좌 송금이 아니라 쇼핑백과 비닐봉지에 담아 줬다. 떳떳한 돈이 아니라는 얘기다.
▲돈을 제공한 측 모두 장진수가 입을 여는 것을 극히 꺼려했다.

3. 불법사찰이 광범위하게 진행됐다는 증거

▲민정수석실, 사회정책수석실, 총리실 등이 총동원돼서 입막음에 나섰다. 김종익씨 단 한명 뿐이라면 이렇게 요란을 떨 필요가 있었을까?
▲한 두 건뿐이라면 무리수를 둬가며 하드디스크를 파괴할 필요가 없었다.
▲당당하다면 청와대가 검찰의 수사에 개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검찰 이미 국민 앞에 ‘죄인’ 사죄하는 마음으로 수사해야

먼저 권재진 법무부장관이 사퇴해야 한다. 재수사를 위해서는 2009년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그의 소환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일개 검사가 사정라인 수장을 조사한다는 건 아들이 아버지를 조사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또 다시 ‘꼬리자르기’로 국민을 기만해서는 안된다. 청와대와 공모해 범행을 은폐하려 했다면 이미 검찰은 국민 앞에 죄인이다. 사죄하는 마음으로 철저히 수사하길 바란다.

 

오주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