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관련

의혹 여전한 추돌 시점과 자작시나리오

道雨 2012. 7. 30. 17:00

 

 

 

 

        의혹 여전한 추돌 시점과 자작시나리오

AP, 천안함 추돌 시각은 오후 9시 이전

(서프라이즈 / 내가 꿈꾸는 그곳 / 2012-7-30)


천안함 침몰 사고는 우발적일까.
아니면 고의적일까.
그것도 아니면 미필적고의란 말인가.

연일 푹푹 찌는 복더위에 머리를 굴려보는 것도 만만치 않다. 천안함 침몰 사건의 원인 등을 살펴보기 위해 이 것 저 것 생각해 보며 오래된 기억을 더듬다 보면 무엇 하나 제대로 정리되는 게 없고 늘 제자리를 맴돌게 된다. 이런 일이 하루 이틀도 아니건만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한 회수가 적지않다. 그런 일을 계속 반복하던 중 어느날 글쓴이(또는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던 사고 초기 이웃들의 진술(?)들이 머리속을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그동안 정부와 합조단이 뜬금없이 내놓은 <1번어뢰>를 검증해 보는 등, 그들 스스로도 결코 검증해 낼 수 없거나 묻어둔 알리바이 등에 대해 지나치게 반응했는 지도 모른다. 예컨데 북한의 잠수정이 이동한 경로나 천안함의 항적 등이다. 정부와 합조단이 내놓은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천안함 침몰 사고의 원인은 북한의 어뢰에 의한 폭침이자, 우리 군 당국이나 합참이 속수무책으로 당한 사고였을 뿐이다. 설령 속수무책으로 당한 사고라 할지라도 합참 내지 우리 해군이 경계근무에 실패한 건 사실이지만, 누구 하나 이 사건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특히 군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해 책임을 져야 마땅한 사람이었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티비앞에서 태연하게 우는 시늉을 통해 북한에 책임을 전가시키며, 이 사건을 조기에 묻어 버리는 데 앞장서고 있었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천안함 침몰 사건의 원인은 천안함 자체 결함도 아니며 합참의 경계근무 실패도 아닌 것으로 종결되며, 우리들의 기억으로 부터 점차 멀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최초 사건 당시 원인을 밝혀줄 단서 대부분은 언론이 입을 다물거나 합세한 결과에 따라 희미하게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나 천우신조인 지 이 사건을 은폐해 보려는 세력들 조차 지우지 못한 단서들이 인터넷에 여전히 도배되고 있었으므로, 천안함 46용사의 원혼들이 이 사건의 비밀 내지 진실을 끝까지 밝혀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무슨 사건이든지 '우발적 사고'가 아니라면, 그 사건의 배경에는 이른바 <범행동기>가 있기 마련일 텐데, 정부나 합조단의 조사보고서를 참조하면 북한이 천안함을 폭침 시킬 범행동기가 전무해 보인다. 정부에서는 연평해전에서 패한 북한이 보복을 했을 가능성을 열어두었지만, 서해안에서 한국과 미국이 한미 연합 훈련을 진행중이었던 당시 사정을 감안하면, 정부가 내놓은 범행동기는 일반의 공감을 얻어낼 만한 설득력이 전혀 없어보인다.

마치 유치원 아이들이 어떤 이유를 들어 조직폭력배를 폭행하여 쓰러뜨린 것과 다름없는 게 북한에 의한 <폭침 시나리오>며, 엉성하기 짝이없는 범행동기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건 초기에 천안함의 침몰원인으로 부상한 <좌초설과 잠수함 추돌설> 등 가장 설득력 있는 천안함의 침몰 배경과 원인 등, 이 사건이 우발적인 지 아니면 고의적인 것인 지 그것도 아니면 미필적고의로 일어난 사건인 지, 이 사건의 범행동기 등에 대해 원점에서 재점검 해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본 포스트에서는 맨 먼저 일반에 널리 알려진 천안함의 좌초설이 그저 설(說)에 불과한 지 사실(Fact)을 다루고 있는 지 등에 대해 ,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단 민간위원이 기고한 칼럼을 통해 살펴본 뒤 천안함 침몰 사건이 일어날 당시 배경을 살펴봄으로써, 이 사건이 우발적 사고인지 계획된 사건인 지 등에 대해 유추해 보는 시간을 갖기로 한다. 때마침 이 포스트를 작성할 시점 신 전 위원이 대표로 있는 <정치포털 서프라이즈>에 의미심장한 칼럼 한 편이 올라왔다.

▲ <천안함 최초좌초 지점 경.위도 분석표>

그 칼럼(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3&uid=130428)의 주제는 <해도(海圖) '수심분석'으로 살펴 본 천안함 사고>이며, 부제로 <천안함이 '최초좌초' 지점에서 좌초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고 명시해 두었다. 신 전 위원은 이 칼럼을 통해서 부제와 같이 천안함이 최초좌초 지점에서 좌초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백령도 근해 해도를 통해 입체적으로 분석해 놓고 있었다. 주지하디시피 신 전 위원은 항해사 출신의 해군장교이며 선박 관련 분야의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링크된)그의 칼럼을 접하는 순간 일반인들이 잘 모르고 있었던 관련 지식들이 총망라된 느낌이 단박에 들 것이며, 잘 정리된 칼럼 한 편 만으로도 마치 특정 분야의 논문을 접하는 듯 한 생각이 들 것이다. 글쓴이는 천안함이 '최초좌초' 지점에서 좌초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등이 명기된 칼럼을 통해, 다시금 신 저 위원이 주장하는 좌초설이 단순한 '주장사실'이 아니라 '사실(Fact)'로 판단됨과 동시에, 글쓴이의 머리속을 맴돌고 있던 천안함 사건의 가해자가 지닌 <범행동기>가,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며 가시화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한편 신 위원이 기고한 칼럼의 핵심을 나름대로 정리하여 <천안함 최초좌초 지점 경.위도 분석표>로 만들어 놓고 보니, 막연하게만 머리속에서 맴돌던 사건 현장이 일목요연해 진 것이다. 천안함은 사고 당일 밤 변침(함정의 방향을 서북쪽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붉게 표시해 둔)최초좌초 지점에 이르러 좌초를 하게 되는데, 그곳에는 조개무덤 지역(Critical Area=C)이 존재하고 있었다. 신 전 위원은 그 지역을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해도상 좌초가능 지점은 'C' - 수심 8.6m 해역의 존재>

"위 지도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한 가운데 낙동강 오리알처럼 똑 떨어져 샛빨갛게 색칠한 지점(C)이 되겠습니다. 그 지점의 수심은 8.6m이며 지질은 모래(S)와 조개무덤(Sh)입니다. 이 지점 'C'가 주목받아야 하는 이유는 : 첫째, 백령도 서쪽 연안에서 천안함급 함선이 백령도에 근접 항행을 하였던 구역 중 가장 수심이 낮은 지점이며, 둘째, 평균수심 8.6m이면 고조 때엔 11.1m수심이 되지만 저조 때엔 6.1m가 되어 천안함급 함선의 좌초가 가능하며, 셋째, 그 지점이 바로 희생자 가족인 이용기씨가 별표와 함께 '최초좌초'라는 문귀를 적은 지점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같은 사실을 접한 당시 정부와 합조단의 (양심있는)관계자들이라면, 가슴이 바늘이나 송곳에 찔린 듯한 느낌을 받으며 고통스러워 할 게 틀림없어 보인다. 마치 사건 현장을 단층촬영해 놓은 듯 세심하게 표현돼 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신 전 위원은 기고문을 마무리 하면서 '덧글'을 통해 천안함 사고 당시를 재구성한 글을 통해 "천안함 하부에서는 어뢰든 기뢰든 어떠한 형태의 '폭발'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저의 확고한 분석이며 판단"이라며 글을 맺고 있는 데, 그 과정은 이랬다.

"천안함은 C 지점('최초좌초' 명기지점)에서 후진으로 땅을 파며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프로펠러가 휘어지는 손상을 입고, 수심이 비교적 깊은 수역으로 나와 침수로 곤란을 겪던 중 인근에서 작전 중이던 수중함선이 정면으로 돌진하여 천안함 좌현하부를 들이받히는 제2의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운전 중 담벼락을 받고 뒤로 빠져나오다 뒤에서 오는 차와 충돌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로 여기면서, 선박이 그러한 사고를 당했다고 하면 기이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날 천안함은 사고를 두 번 겪는 불운을 겪게 됩니다. 더욱 더 운명이 기구한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어뢰'가 느닷없이 등장하게 되는 일이지요. 2010년 3월 26일, 그날 밤 제1사고(좌초)와 제2사고(충돌)를 겪어야 했던 천안함 하부에서는 어뢰든 기뢰든 어떠한 형태의 '폭발'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저의 확고한 분석이며 판단입니다."
<출처: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3&uid=130428 >

링크된 신 전 위원의 전문 칼럼이나 본 포스트에 표시해 둔  <천안함 최초좌초 지점 경.위도 분석표>를 참조하면, 천안함이 좌초할 수 밖에 없는 지점에서 모종의 작전을 펼치고 있었던 게 분명해 보인다. 또 어떤 이유에서 그랬던 지 천안함은 추돌(충돌이 아니라 '추돌'이라는 표현이 옳은 듯)을 겪게 되는 데, 이 때 신 전 위원의 칼럼을 통해서 또는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단서가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건 전적으로 신 전 위원의 칼럼이 문제를 노출시킨 게 아니라 글쓴이가(또는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던 단서들이었는 데, 가해자의 범행동기 등을 밝혀줄 그 단서들은 글쓴이게 이렇게 되묻고 있었다.

"그렇다면...천안함이 최초좌초된 시점이 언제쯤 될까요?...
또 천안함은 왜 하필이면 그곳에서 좌초되었을까요?..."

글쓴이는 스스로의 물음에 대해 뒤통수를 얻어 맞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평범한 단서가 널려있었는데 침몰원인 내지 범행의 단서를 엉뚱한 곳에서 뒤적거리고 있지않았나 싶은 생각이 굴뚝같이 든 것이다. 이같은 생각을 만들어 준 건 앞서 끄적인 포스트<천안함, 추돌 용의자 '美 핵잠수함' 모습 추가 공개>가 일조했다. 천안함의 함미 (실종자)수색작전 당시 미국의 살보함이 백령도 앞 바다에서 벌인 임무는 실종자 수색과 전혀 무관해 보이는 작업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천안함이 침몰한 해역에서 수중 탐색 등을 통해 괴물체를 건져올리는 등 사고 흔적을 지우기 바쁜 모습이었다. 이를 테면 범행의 흔적을 지우거나 은폐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따라서 당시 언론에 보도된 의미심장한 뉴스 한토막의 진실과 거짓을 분석해 보며, 이 사건의 범행동기 등을 유추해 보는 것이다. 먼저 2010년 6월 7일 자 YTN을 통해 보도된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 <대잠훈련 시점>


한미 합동 대잠수함 훈련 3월 25일 오후 10시 부터 그 다음날(26일) 오후 9시 까지 실시 보도 내용

"[앵커멘트]  천안함 침몰 당일 밤 한국과 미국이 합동 대잠수함 훈련을 하고 있었다고 AP 통신이 보도했습니다.  AP는 천안함 폭발로 훈련이 밤 9시에 종료됐다고 전해 우리 정부가 밝힌 폭발 시각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워싱턴에서 박성호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리포트]  지난 3월 한미 합동 군사훈련인 키리졸브의 일환으로 대잠수함 훈련이 실시됐다고 AP 통신이 미국 군사 당국자들을 인용해 보도했습니다.  제인 크라이튼 주한미군 대변인은 대잠훈련이 25일 밤 10시에 시작돼 26일밤 9시에 끝났다고 AP에 밝혔습니다.

AP는 이어 "이 훈련은 천안함 폭발 때문에 종료됐다"고 전했습니다.  이 보도에 근거하면 천안함이 공격 받은 시점은 26일 밤 9시 이전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공식으로 밝힌 천안함 피격 시점은 26일 밤 9시 20분을 넘깁니다.  AP는 피격 시점의 선후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으면서 침몰 당일 밤 사건 장소에서 120㎞ 떨어진 곳에서 한미 합동 훈련이 있었다고 보도했습니다. 

미군 당국자들은 한미 훈련이 북한의 잠수정을 탐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특히 수심이 낮은 연안에서는 선박이 잠수정 가까이 있다고 해도 탐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라고 AP는 전했습니다.  우리 해군 관계자는 "침몰 당시 한미 양국이 태안반도 서쪽 격비도 이남 해상에서 훈련 중이었던 것은 맞다"고 연합뉴스에 말했습니다.  그러나 "당일 대잠훈련이 있었는지는 확인이 안된다"면서 "사건이 발생한 해역과는 120㎞ 이상 떨어져 있어 사건을 인지하기는 어려웠다"고 설명했습니다.  워싱턴에서 YTN 박성호 입니다."
<출처: http://www.ytn.co.kr/_ln/0104_201006070707330354>

1분 58초 동안 재생되고 있는  YTN 보도 내용은 그 사실에 무관하게 꽤 중요해 보였다. KBS 등이 보도한 관련 자료는 이미 삭제되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YTN 보도 내용이 전부 사실이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이유가 뭔가. 천안함 침몰 사건은 대통령이 소집한 긴급안보장관회의 직후 사건이 변질되기 시작한 때문인데, 최초 범행(?)을 알려줄 단서가 하나 둘씩 은폐되거나 왜곡되는 등의 조치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 보도 내용은 그런 과정에서 천안함이 침몰된 이후 두 달도 더 지난 다음에 외신을 통해 (각색되어)들어온 것으로 판단되었다.

이미 관련 포스트에서 언급한 바 천안함 사건은 '한미간 규칙적인 훈련 중에 일어난 불행한 사건'이었으며, 미 해군 7함대는 물론 주한미대사관을 통해 이미 사과조치가 이루어진 다음이었다. 따라서 위 보도 내용중 일부만 빼고 다수는 한국정부 내지 합조단의 (준비된)결론에 부합(응원)하는 연막술에 불과해 보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언론에 보도된)이러한 연막술 때문에 사실에 접근하기 매우 힘들어 하거나 진실을 가려보려는 노력을 금방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뉴스 보도 속에 천안함의 폭발을 언급하는 것과 사건 발생 해역과 120km 떨어진 곳에서 대잠훈련을 했다는 건 사실 무근인 것이다.

그러나 외신을 빙자(?)한 보도내용 속에는 제인 크라이튼 주한미군 대변인의 입을 통해 " 대잠훈련이 25일 밤 10시에 시작돼 26일밤 9시에 끝났다 "고 말하는 중요한 단서가 들어있었다. 위 보도의 주요 메세지가 이 내용인데 방송은 쓸데없는 군더더기를 짜집기 하여 대잠훈련이 태안반도 주변에서 이루어진 것 처럼 왜곡.호도하며 사실을 은폐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천안함은 사고 직전 까지 한미간 (규칙적인) 대잠훈련을 하다가 어떤 이유로 문제가 생겨 3월 26일 밤 9시에 훈련을 종료하게 된 것이다. 정부와 합조단이 시간을 마음대로 늘렸다 줄인 폭침(?) 시간과 전혀 다른 시점에 천안함에 문제가 생겼다는 게 이 뉴스의 메세지였던 것이다.

아울러 이 보도내용 속에 숨겨진 복선은 장차 발표될 합조단의 조사보고서를 합리화 해 줄 작전구역을 미리 학습하도록 해 놓았다고나 할까. 천안함이 북한의 잠수함 내지 잠수정의 공격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이유가 위 <대잠훈련 시점>에 표시된 훈련장소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120km 떨어진 지점에서 훈련중이었는 데 어떻게 북한의 잠수함을 발견할 수 있는가" 하는 대국민 교란술 정도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내지 미군의 입장에서는 향후 일어날 수 있는 국제적 파문 등에 대해 발뺌을 한 장치가 또한 이 보도의 핵심이었다. (천안함 사고로 인해 훈련을 9시에 끝냈다고 말했지만) 한국 정부가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데 대해서는 우리(미국)가 알 필요가 없다'는 식의 발뺌 보도로 사료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AP를 통해 왜 이런 보도자료를 뿌렸을까.

주지하다시피 46위의 승조원 목숨을 앗아간 천안함 침몰 사고는 이명박 대통령의 상습적 주장 처럼 단순히 <북한의 폭침>으로 끝날 게 아니었다. 이 사건은 우리 국민들만 주시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엄청난 사건이었다. 대략 아이들이 밤중에 술래잡기 놀이를 하다가 잘못 부딪쳐 이마에 혹이 난 정도가 아니라, 이 사건은 서방 세계에서는 조직폭력배가 동원된 집단적 살인행위 쯤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천안함 사건 당시 외신들은 이들의 범행동기를 적나라 하게 묘사하며, 이 사건은 한국과 미국 즉, <이명박.오바마의 자작극> 내지 시나리오로 비쳐지고 있었다. 이유가 있었다.

▲ 쿠바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에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평의회 의장이 기고한 글(출처: 미디어오늘)

천안함 침몰 사건은 미군 해병대에 의한 것(짓)이며, 한반도에 긴장감을 높여 일본 오키나와 미군기지를 유지하기 위함이었다는 주장이 피델 카스트로(83) 쿠바 국가평의회 전 의장으로 부터 나온 것이다. 외신에 나타난 천안함의 침몰 배경은 이렇듯 무시무시하다. 이 내용을 소상하게 보도한 미디어오늘의 기사 (위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평의회 의장이 기고한 글)을 참조해 보면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범행동기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피델 카스트로는 당시 쿠바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 온라인 영문판( www.granma.cu )에 기고한 '제국과 거짓'이라는 글에서 "천안함 사건이 양심의 가책조차 결핍된 미 제국주의 정책을 보여준 증거"라고 비판했다.

그는 기고문을 통해서 "북한이 소나 시스템과 음향기능 등 최첨단 과학기술을 갖춘 천안함을 적의 앞바다에서 침몰시켰다는 거짓말은 40여 명의 승조원과 수많은 부상자를 낳은 끔찍한 행동을 북한에 돌리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누가 공격을 했든 과연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면서 "한편으로는 김정일이 그런 공격을 했으리라고 믿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카스트로는 "나 역시 결론을 내릴만한 정보가 부족하지만 중국이 국제연합(UN) 안전보상이사회에서 북한을 제재하는 안건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건 확신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었다.

당시 언론인 월터마르티네드를 만나 그의 예리한 분석을 들으며 "미국이 한국 사람들을 서로 설득시키게 만든 그 증거들로 오키나와에 미군 주둔의 명분을 삼으려고 한다"고 전한 바 있다. 또 탐사 전문 언론인 웨인 메드슨도 자신의 정보원 말을 근거하여 "대함 초계함인 천안함의 피격은 북한의 소행인것처럼 위장된 공격이었다고 의심된다고 단언했다"고 말했다고 카스트로는 전하고 있었다.

아울러 메드슨은 "한반도에서 긴장고조의 주요 목적은 일본 총리 하토야마가 오키나와 기지를 옮기려는 계획을 되돌리도록 압박하기 위함이었다"며 천안함 침몰로 인한 긴장감이 미군기지가 오키나와에 남아있도록 결정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하토야마의 결정이 중도좌파 연립정부의 분열을 초래했고, 워싱턴과 사민당은 환영했다"고 했다. 또한 메드슨은 "천안함이 최첨단 기술의 소나를 갖추고 있었고 여기에 광범위한 수중탐지가 가능한 소나돔과 음향 센서가 작동됐지만, 어뢰나 잠수함 또는 소형 잠수정의 음파탐지를 들은 한국군(인)은 아무도 없었으며, 침몰 순간 바다는 고요했다"고 주장했다고 카스트로는 전하고 있었다.
<인용글 출처: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88796>

탐사 전문 언론인 웨인 메드슨의 마지막 언급을 들어보면, 마치 그가 백령도 앞 바다에서 천안함의 침몰을 지켜본 듯 상세한 모습을 전하고 있었다. 복더위에 꽤 긴 글을 끄적이게 된 이유를 모르시는 분은 없을 거 같다. 언급한 바 이 포스트는 천안함 침몰 사건이 우발적 사고인 지 계획된 범행인 지 그것도 아니면 미필적고의(未必的故意, 행위자가 범죄 사실의 발생을 적극적으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자기의 행위가 어떤 범죄 결과의 발생 가능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 행위를 하는 의식)로 이루어진 사건인 지 등에 대해 알아보기 위함이다. 외신에 나타난 천안함 사건의 모습은 그야말로 <불편한 진실>이 될 수 있었으며 일방의 주장사실에 불과할 수도 있었다.

▲ 포스트에 사용된 이미지는 'Frikr 이웃'의 자료사진으로 본문의 내용과 관계없음.

그러나 신 전 위원의 전문 칼럼을 통해 드러난 좌초 사실 내지 우리가 알고있는 천안함 사건의 추억 속에는 반드시 좌초 된 시점이 누락되어 있으며, 천안함이 왜 연화리 앞 바다 까나리 어장 한 복판 까지 진출했는 지 등에 대해 자세한 언급이 없다. 상식 밖의 일이었다. 다만, AP통신이 전하는 외신 등에 따르면 천안함의 사고(좌초) 시각이 대략 사고당일 오후 9시 이전이라는 점과, 천안함이 좌초 지점을 자초하여 항진한 점 등은 외신이 전하고 있는 <이명박.오바마 자작 시나리오>를 증폭 시켜줄 뿐이다. 아울러 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단 민간위원의 전문적 판단을 수용하지 못한 정부나 국방부장관 등은, 장차 외신이 주장하고 있는 자작극 등 범행동기(?)에 대한 해명을 해야 하는 실로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일까. 신 전 위원의 전문 칼럼과 외신을 통해 들여다 본 <천안함의 불편한 진실>은, 천안함 사건의 원인 등을 은폐.조작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가해 세력들 한테는 여전히 숨 졸이게 만드는 일이자, 카스트로가 언급한 사실 "누가 공격을 했든 과연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말은 가슴 속 깊게 와 닿는다. 천안함 사건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라고 이어지는 6하원칙 대부분을 부정하며 저만치 멀어져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천안함은 일반에 알려진 것 처럼 최초좌초 지점 근처에서 좌초되어 배 밑바닥에 뚫린 구멍을 막아보려고 애쓰고 있었던게 아니라, 대잠훈련을 빙자한 미필적고의에 의해 추돌될 수 밖에없는 숙명을 지녔던 것인 지.

AP통신이 전한 오후 9시 이전 한미 합동훈련 중단 보도 내용은 천안함 사건의 원인 내지 배경을 가늠해 줄 매우 중요한 단서가 아닌가 싶다. 이 보도 내용이 사실에 부합한다면 천안함은 사고 당일 오후 9시 이전에 이미 (상부로 부터 하달된 좌표로 이동하여) 좌초 상황을 겪고 있었으며, 미 핵잠이 추돌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 셈일까. 언론 등에 나타난 자료에 따르면 살보함이 백령도 사고 해역에서 수행한 임무는, 당시 함미에 갇혀있어 구조가 가능했다던 우리 승조원 46명의 수색 작업이 아니었다.

살보함의 임무는 천안함과 추돌한 것으로 전해진 미상의 핵잠수함이 남긴 흔적 등을 치운 것 뿐이었다. 그 시간은 대략 10일 전후이며 사고해역에 머물던 핵잠수함이 충분히 먼 거리를 이동 도주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 셈이다. 생각해 보시라. 핵탄두를 발사할 수 있는 미국의 핵잠수함이 백령도 앞 바다 까지 진출해 있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질 경우, 동북아시아에서 핵 문제를 둘러싼 미국의 외교적 입장 등 파문은 결코 만만치 않다는 점 간과해서는 안 된다. 카스트로가 괜히 방방 뜨며 메드슨의 자작시나리오를 읊은 게 아니란 거 언제쯤 알 수 있을까. 기억을 되돌려 보면 천안함의 진실이 빤히 들여다 보인다. <계속>

내가 꿈꾸는 그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