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용공(조작) 사건

울릉도 간첩단을 기억하시나요

道雨 2014. 5. 1. 11:35

 

 

 

         울릉도 간첩단을 기억하시나요

 

 

 

“죄 없는 예수를 유대 기득권 세력에 넘겨주면서 본디오 빌라도는 손을 씻었다. 그것으로 자신의 무관함을 강변했다. 그러나 2천년 넘게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기독교인의 고백에 자신의 이름이 담길 것이라고는 아마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2천년이 지난 이 땅에는 죄 없는 아이들을 죽음의 바다에 몰아넣고서, 대신 선장을 살인마로 몰고, 케케묵은 구원파를 끄집어내고, 심지어 해피아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면서, 자신의 손을 씻으려는 사악한 세력이 있다. 그들은 상상치 못할 것이다. 그들의 이름이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윤석규)

 

며칠 전 페이스북에서 인상적인 글을 읽었다. 괴로웠다. 나도 ‘그들’의 일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서사치유연극 <상처꽃-울릉도 1974>를 본 것은 그즈음이었다.

 

박정희 정권의 신직수 중앙정보부장이 1974년 3월15일 대규모 간첩단 사건을 발표했다. 당시 신문은 ‘울릉도 거점 간첩단 47명 검거’라고 제목을 달았다. ‘정부전복 획책…10여년간 암약’, ‘위장업체·서클 등 구성’, ‘지식층·군부 침투 기도’가 부제였다. 47명의 인적 사항과 얼굴 사진을 1면에 실었다.

 

유신 정권의 대법원은 전영관·김용득·전영봉 세 사람에게 사형, 4명에게 무기징역, 나머지 피고인들에게 15년에서 1년까지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사형은 1977년 12월5일 집행되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오랫동안 감옥생활과 보안관찰로 고통을 받았다.

 

울릉도 간첩단 사건은 조작이었다. 울릉도 주민과 1960년대 중반 일본 농업연수를 다녀온 전북 사람들을 억지로 엮어, 중앙정보부가 고문으로 간첩단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1974년은 유신 정권이 저항에 부닥치기 시작한 시기였다. 정권은 국민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울릉도 간첩단 사건, 민청학련 사건(2차 인혁당 사건)을 잇따라 발표했다.

이른바 사법살인이 자행됐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국민을 살해한 것이다.

 

울릉도 간첩단에는 유명 인사가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건에 비해 오랫동안 관심을 끌지 못했다.

정의가 바로잡히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피해자 한 사람이 2006년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위원회는 2010년 ‘진실규명’을 결정했다. 자신감을 회복한 피해자들은 법원에 재심을 신청했다. 사형이 집행된 사람들을 포함해 19명이 지금까지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심과 상고심 재판이 한창 진행중이다.

 

그렇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올 수는 없다. 산 사람들의 상처도 문제였다. 피해자 일부가 2010년 인권의학연구소 국가폭력 트라우마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한 일이 있었다.

마당극 연출가 임진택 감독이 이들의 얘기를 들었다. 고문 상처 치유 과정을 연극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임진택 감독은 “연극의 미적 본질이 치유일 수 있겠다는 예술적 상상력이 깨달음처럼 뇌리에 와 닿았다”고 했다. 김근태기념치유센터 ‘숨’도 후원에 나섰다.

 

‘서사치유연극 상처꽃’은 그렇게 탄생했다. 대학로 눈빛극장에서 5월31일까지 계속된다. 연극은 몰입도가 꽤 높은 편이다. 관객은 배우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카타르시스를 체험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연극을 보며 고통스러웠다.

첫째, 등장인물 때문이었다. 1974년 당시 대통령은 박정희, 중앙정보부장은 신직수였다. 지금 대통령은 ‘그 박정희’의 딸이고 지금 대통령 비서실장은 ‘그 신직수’의 심복이었던 사람이다. 40년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둘째, 세월호 때문이었다. 연극은 나치에 반대한 마르틴 니묄러 목사의 시 ‘그들이 왔다’로 우리의 침묵과 외면을 강하게 질타했다.

 

1993년 서해훼리호가 침몰했을 때 사고의 후진성에 기가 막혔던 기억이 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에서 겪었던 참담함이 지금도 생생하다.

20년이 흘렀다. 그런데 여전히 나는 ‘기본이 안 되어 있는 나라’의 구성원이다. 기본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보고도 20년 동안 침묵하고 외면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참사의 가해자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