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용공(조작) 사건

전 보안수사대장 "원정화 간첩사건은 조작"

道雨 2014. 8. 2. 13:02

 

 

 

  전 보안수사대장 "원정화 간첩사건은 조작"

원정화 여동생도 "언니가 거짓말", 간첩조작 의혹 확산

 

 

 

MB정권이 촛불사태로 궁지로 몰렸던 2008년 8월, 공안당국이 발표한 여간첩 원정화(40) 사건이 '조작'이었다는 증언이 잇따라 또다시 '간첩조작'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원정화 사건은 경찰, 검찰, 국가정보원, 기무사령부가 총동원돼 3년간 추적끝에 적발한 대형 간첩사건으로, 원씨는 보위부 요원으로 중국에 파견된 뒤 탈북자·남한 사업가 등 100여 명을 체포해 북송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 3월 17일 발간된 <신동아> 4월호가 처음으로 원정화 간첩사건 조작 의혹을 제기했고, 당시 유우성 간첩증거 조작 사건을 파헤치던 민변은 즉각 ‘신동아 보도에 대한 입장’이란 보도자료를 통해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그러나 원정화씨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간첩이 맞다고 보도내용을 부인했다.

하지만 <신동아> 최신호(8월호)는 2006년 7월부터 2008년까지 원씨를 내사한 소진만(61) 전 경기지방경찰청(경기청) 보안수사대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다시 한번 원정화 사건이 조작사건이 주장하고 나섰다. 소씨는 이어 가진 <한겨레>와의 인터뷰(8월1일자)에서도 동일한 주장을 했다.

그는 원씨 사건을 최초로 내사했던 인물이다. 2007년 초까지 보안수사대장으로 수사팀을 이끌었고, 보안수사 2대장으로 물러난 후에도 수사에 직·간접으로 간여했다.

소씨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1979년부터 30년 넘게 대공사건만 수사했다. 그런데 이렇게 이상한 간첩은 처음 봤다. 원씨는 자기 손으로 e메일도 못 만드는 간첩이었다. 원정화는 특수훈련을 받지도 않았고 남파간첩도 아니다"라면서도 "원씨 사건은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부풀려졌다. 간첩을 잡은 게 아니고 만들었다. 다시는 이런 식의 간첩 사건이 만들어져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간첩수사 때 기본은 ‘육체 검열’이다. (경찰내 나의 정보원인) Y를 통해 (원정화의) 육체 검열을 실시했다. 그러나 훈련을 받은 여자라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 예를 들어 (KAL기 폭파범) 김현희의 경우 얼굴은 예쁘지만 송곳 하나 들어가지 않는 몸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원정화가 중국내 북한사람인 김 선생(북한 단동 무역대표부 김교학)과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공안당국의 간첩증거 제시에 대해서도 "문어 장사와 관련된 것이 많았다. 원씨가 한번은 ‘국정원 요원들이 북한 관련 정보를 달라고 해서 귀찮아 죽겠다. 북한 쪽 루트를 만들어달라고 한다’고 짜증을 내는 메일을 ‘김 선생’에게 보냈다”고 일축했다.

그는 또한 “한번은 원씨가 말을 못하는(농아)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보내달라는 요청을 했다”며 “농아 관련 단체를 통해 뭔가 돈벌이를 하려고 했던 것 같다. ‘김 선생’은 요청을 받고 ‘그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답을 했었다”고 전했다.

그는 원정화와 ‘김 선생’과 메일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은 어떻게 확인했냐는 질문에 대해선 “내가 Y를 수사에 투입한 게 2006년 11월경이다. 그런데 Y는 이미 9~10월경 원정화의 부탁을 받고 e메일을 만들어줬다고 했다. 원씨가 그 e메일을 통해 ‘김 선생’과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김 선생’의 존재가 확인된 것이다. 원씨는 인터넷도 모르고 e메일도 만들 줄 모르는 희한한 간첩이었다”고 답했다.

그는 원정화가 김 선생에게서 지령과 공작금을 받아 간첩행위를 했다는 공안당국 발표에 대해서도 “김교학과 돈 거래가 있었다면 그건 사실 김교학과 문어 장사를 하면서 주고받은 돈이다. 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원씨가 문어값으로 돈을 보냈다. 내사와 체포가 이뤄질 당시 원씨는 김교학과 문어 장사를 하다가 거의 망한 상태였다"며, "원씨가 김교학과 크든 작든 정보를 주고받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원정화는 절대 북한에서 지령을 받고 내려온 간첩이 아니다. 지령을 받고 왔다면 그동안 원씨가 사귄 경찰·군인이 우선 포섭 대상이 됐어야 했다"고 반박했다.

그는 원정화가 한국인 사업가와 탈북자 등 100여 명을 체포해 북송시켰다고 공안당국이 발표한 데 대해서도 “그게 사실이라면 피해자가 나와야 한다. 그런데 피해 사실을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다"고 힐난했다.

그는 원정화 간첩 조작 의혹을 제기한 <신동아> 기사(4월호, 5월호)를 봤냐는 질문에 대해선 “봤다. 내가 그 기사 때문에 협박을 많이 받았다. ‘언론과 인터뷰하지 말라’는 압력이었다. ‘인터뷰하지 마라, 죽을 수 있다’고 했다”고 밝혔다.

이밖에 원정화 여동생 김희영(가명, 35) 씨도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에 머물 당시 언니와 나는 한때 노래방·다방에서 일했다. 탈북자를 색출해 북송시켰다는 주장은 거짓말이다. 언니는 탈북한 이후 한 번도 북한에 들어가지 않았다. 우리 집안은 출신성분이 좋지 않아 보위부 요원이 나올 수 없다”고 부인하는 등, 원정화 간첩 증거 조작 의혹을 뒷받침하는 증언들이 잇따르고 있다.

보수언론에서조차 간첩 조작 논란이 제기될 정도로 공안당국의 권위는 땅에 실추한 상황이어서, 향후 공안당국의 대응이 주목된다.

 

박태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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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화는 경찰이 개설해준 이메일로 북과 교신”

 

 

 

소진만 전 경기경찰청 보안수사대장은 <한겨레>의 연락을 받은 뒤 한달가량 만남을 주저했다. 그는 원정화 수사 과정과 자신이 겪어온 일에 대해 빼곡하게 날짜별로 적은 기록들을 갖고 다녔다. 그동안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사진은 지난달 경기도 한 카페에서 만난 소 전 대장의 모습. 그의 요구로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하였다.


‘원정화 사건’ 전 수사책임자 인터뷰

▶ ‘간첩 원정화 사건’을 처음 내사한 소진만 전 경기경찰청 보안수사대장을 만났습니다. 소 전 대장은 원정화가 발표된 것과 같은 유형의 간첩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수사책임을 맡았던 경찰까지 사건의 조작 의혹을 제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소 전 대장의 주장은 진실의 퍼즐 한 조각이 될까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원정화 수사의 이면을 소개합니다.

 

 

<한겨레>는 올해 두차례에 걸쳐 ‘탈북자 위장 간첩 1호’ 원정화 사건의 조작 논란을 추적 보도했다.

첫번째 보도는 계부 김동순(69)씨를 간첩이라고 한 원정화(40)씨의 진술이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를 밝힌 것이었다.

원씨는 지난 3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검찰 조사를 받을 때 ‘아버지도 간첩이라고 말하라’고 허위 진술을 강요당했다. 변호인의 도움을 받지 못했고 조사 때 술을 먹었다. 조서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고 주장했다.(<한겨레> 3월22일치 1·3·4면)

 

원씨는 계부 김씨에 대한 진술은 허위였지만, 자신은 간첩이 맞다는 주장은 굽히지 않고 있다. <한겨레>는 같은 날 보도에서 그가 주장하는 간첩 행적 내용의 사실관계가 어떤 부분에서 모순인지를 살폈다.

지난해 12월 탈북한 원씨의 친동생 김지혜(가명·35)씨는 <한겨레>와 만나 원씨 주장이 거짓이라고 역시 폭로했다.(<한겨레> 7월26일치 14면) 김동순씨가 아닌 다른 가족도 나서 원씨의 주장을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한겨레>는 2006년 7월부터 2007년 초까지 ‘원정화 사건’ 수사 책임을 맡았던 소진만(61) 전 경기경찰청 보안수사대장을 지난달 만났다. 소 전 대장 역시 원정화 사건이 조작됐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소 전 대장은 원정화 사건 초기 수사 책임자여서, 이러한 주장은 원정화 사건 조작 논란에 적잖은 파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소 전 대장은 2007년 초 원정화 사건 수사 책임자 자리에서 물러난 뒤, 경기경찰청 보안수사대 내부에서 ‘원정화 사건을 조작하지 말라’는 경고를 해왔고, 2008년 9월3일 석연찮은 이유로 안양경찰서 경무과장으로 발령을 받아 보안수사 일선에서 물러났다.(원정화 사건 수사 결과 발표는 2008년 8월27일.)

 

이어 당시 국군기무사령부 이봉엽 3처장이 “소진만 경감이 ‘원정화는 내 협조자인데 왜 방해하고 있습니까. 수사 잘못하고 있으니 중단하십시오’라고 언동한다”고 쓴 진정서를 경찰에 제출해, 소 전 대장은 감찰조사를 받기도 했다. 진정서 내용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소 전 대장은 2012년 6월 화성 동부경찰서 경무과장을 끝으로 은퇴했다.

 

소 전 대장은 1980년대 중반부터 경기청 보안수사대에서 일해온 공안수사 전문가다. 다음은 소 전 대장과 나눈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내용이다.

 

 

2006년 7월부터 2007년 초까지 원정화 사건 수사책임 맡았던 전 경기경찰청 보안수사대장 소진만씨가 <한겨레>와 만나 사건이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원정화는 수사할 때부터 간첩으로 보기엔 너무 허술, 수사 일선에서 밀려난 뒤엔 후배에게 심문과정 들었는데, 경찰조사 때 술 먹였다 한다”

 

 

검거 포상금 1억원을 둘러싼 소문

 

-‘간첩 원정화’를 어떻게 생각하나?

 

상당히 부풀려진 사건이다. 원정화는 최소한 ‘키워진 간첩’이라고 보고 있다. 북한 보위부가 훈련시켜 조직적으로 내려보낸 간첩이라고 보기 어렵다.

원정화가 탈북자와 남한 사업가 100명을 북송시켰다는데, 지금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나? 원정화가 미군기지 위치 사진 찍고 다녔다고 하는데, 이미 공개된 정보를 수집하러 다니는 간첩이 어디 있나.

내가 수사할 때부터 원정화는 훈련된 간첩으로 보기 어려웠다.”

 

-원정화 사건도 유우성 사건처럼 조작이라는 건가?

 

원정화는 분명 김교학 북한 단둥무역대표부 부대표와 교신을 하는 등 수상한 점이 있다. 그뿐이다. 국민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부풀린 게 아닌가 한다. 지금도 당시 원정화 수사 담당자들이 원정화를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당시 원정화 검거 포상금으로 1억원 가까이 수사팀에 지급됐는데, 일부를 원정화를 위해 사용했다는 얘기도 경찰 내부에서 파다했다.”

원정화는 1999~2001년 중국 연변 등에 머물며 탈북자를 색출해 북송시키는 일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겨레>는 원씨가 북송시켰다고 주장한 사람을 최근 만났다. 그는 “원정화와 연변에서 알고 지낸 건 맞지만 나는 북송된 적이 없다. 한국에서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2008년 가을 경찰에 출석해 진술도 했다”고 설명했다.

 

-원정화 수사는 언제,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

 

“나는 2006년 7월28일 경기경찰청 보안수사대장이 되었다. 보안1대와 2대의 통합 대장직을 맡았다. 서류함에 보관중이던 내사자료를 살펴보았다. 원정화 건이 유일하게 추가 수사 가치가 있었다. 기록에는 ‘원정화는 정서가 불안해 보인다. 군과 보안요원들과의 접촉이 잦아 집중관찰이 필요하다’는 등의 내용이 쓰여 있었다. 2006년 10월 작전 회의를 열었다. 당시 모 파출소에 근무하며 원정화와 가깝게 지내고 있던 양아무개 경장을 원정화 내사에 활용하기로 했다. 양 경장을 은밀히 만나 원정화에 대해 모든 것을 파악하라고 지시했고 양 경장은 국가를 위해 임무를 수행하겠다고 다짐했다.”

 

-양 경장을 통해 파악된 것은 무엇이었나?

 

“원정화의 몸을 검증했다. 양 경장은 원정화가 전혀 훈련받은 간첩이 아닌 것 같다고 보고했다. 김현희(칼기 폭파범)처럼 훈련받아 남파된 간첩은 몸이 바늘로 쑤셔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다. 원정화는 아니었다. 그러다 ‘원정화 이메일 개설’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이 무엇인가?

 

“이메일을 양 경장이 만들어준 적 있다는 거다. 원정화가 이메일 계정을 어떻게 만드는지 몰라 양 경장에게 부탁했다. 아이디랑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양 경장이 원정화 이메일을 살펴봤다. 양 경장은 수상한 내용이 있다고 했다. ‘단둥 김 선생’에게 원정화가 보낸 메일이 있는데 ‘국정원이 북한 쪽 루트를 터달라고 부탁하는데 머리 아픕니다. 어떡해야 하죠?’라고 묻는 내용이었다.”

원정화 사건 합동수사본부 수사자료를 보면, 원정화는 국정원의 정보 요원으로 오랫동안 활동해왔다. 원씨가 남파간첩이 맞다면 ‘이중간첩’ 행위를 한 셈이다. 국정원이 당시 북한 쪽 정보를 원씨에게 확보하도록 요구했고 원씨가 이 내용을 김교학 북한 단둥무역대표부 부대표와 상의한 것으로 보인다. 김교학 부대표는 원씨에게 간첩활동을 시킨 보위부 관계자로 알려져 있다. 다만 당시 수사팀은 ‘단둥 김 선생’이 누구인지는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메일에 또다른 수상한 내용은 없었나?

 

“김 선생에게 ‘농아(언어장애 아동)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보내달라고 했는데 왜 안 보내냐. 약속을 지키라’고 하는 내용이 있었다. 아이들을 이용해서 원정화가 돈벌이가 되는 어떤 사업을 하려고 했던 것 아닌가 추측한다.”

 

폭탄주 파티 벌이다 느닷없이 원정화 검거

 

-경찰이 언제든 들여다볼 수 있는 자신의 이메일로 북한 쪽과 접촉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데.

어떻게 남파간첩이 인터넷에 이렇게 무지할 수 있을까 그것이 의문스럽다. 또 원정화는 양 경장에게 2300만원을 꾸어 갚지 않은 상태였다. 공작금을 받는 간첩이 자신의 포섭 대상인 경찰한테 돈을 꾼다는 게 이상하지 않나.”

 

-2008년 8월 수사 결과 발표 때는 왜 이런 내용들이 빠졌을까?

“이런 허술한 간첩이 어디 있냐는 의문을 사전에 차단하려 한 것 아닐까.”

 

-김 선생과 주고받은 이메일을 확인한 뒤 무엇을 했나?

“2007년 초 김 선생이 누구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어, 수사팀을 중국에 보내기 직전 내가 보안수사2대장으로 발령 났고 원정화 수사팀에서 제외됐다.”

 

-그 뒤 원정화 수사는 어떻게 됐나?

“2008년 2월 김종원 보안과장이 (새로 부임한) 김도식 경기경찰청장에게 ‘곧 간첩 잡는다’고 보고했다. 그해 3월 권학주(현 경기청 보안3대장)가 원정화 수사팀장이 된다. 권학주가 수사팀장이 되자 나는 그에게 (원정화 감시 요원으로 일해온) 양아무개 경장을 수사팀에서 계속 활용하라고 말했다. 권학주가 안 받겠다고 하더라. 간첩 수사 때 수사협조원은 반드시 인수인계되어야 한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원정화 수사팀에 조작하지 말라고 경고를 시작한 이유가 거기서 비롯됐나?

“권학주가 걱정스러웠다. 그는 이전에 자신이 맡은 간첩 수사에서도 불미스러운 수사기법으로 질책을 많이 받았던 사람이었다.(소 전 대장은 권학주 경감이 이전에 어떤 방식으로 보안 관련 수사를 했는지 비보도를 전제로 설명했다.) 2008년 6월 말 오후 2시께 권학주를 내 방으로 불렀다.(당시 권학주는 직급이 경위이고 소진만은 경감. 권학주가 후배.) ‘원정화 사건을 확대 포장해 조작할 생각 하지 말라. 가만 넘어가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권학주는 ‘저는 애국자입니다’ 하고 말하고 나가버렸다. 그때 양 경장을 간첩단으로 엮어 사건을 확대하려 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권 경감이 맡은 사건으로는 ‘아주대 자주대오 사건’(2003년)과 ‘인터넷 서점 미르북 사건’(2007년) 등이 있다. 두 사건 모두 조작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자주대오 사건 피의자들은 2004년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대법원은 2005년 유죄(집행유예) 취지로 고등법원으로 파기 환송했다. 이후 피의자들은 고법 재판을 포기했다.

미르북 사건의 피해자 김명수(59)씨는 지난해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원정화 수사팀이 무리하게 수사하고 있다는 징후는 또 무엇이 있었나?

“당시 수사 인력이 무척 부족했는데 (내가 지휘하는) 보안수사2대 요원들은 철저하게 수사에서 배제했다. 뭔가 이상했다. 2008년 7월14일 원정화가 일본에서 간첩 활동하고 귀국한 하루 만에 검거한 것도 너무 서두르는 것 같았다. 일본에서 무엇을 하고 돌아왔는지 접촉 인물들을 파악하고 증거를 수집해야 하는데 그런 것을 하지 않았다. 7월15일 원정화 수사팀은 수원에서 폭탄주 파티를 벌이다 느닷없이 원정화 집으로 달려가 검거했다.”

 

원씨는 2008년 5월8일부터 7월14일까지 일본 센다이시 등에서 간첩활동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원씨가 머물렀던 숙소의 주인 등은 ‘원정화가 집에만 머무르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한국의 수사기관이 원정화 관련 조사를 나온 적도 없다’고, 한국에서 찾아온 취재진에게 밝힌 바 있다.

 

-원정화 심문 때는 무슨 일이 있었나?

“나는 수사 일선에서 밀려나 있어도 후배들 통해 심문 과정을 전해들었다. 경찰 조사 때 술을 먹인 것으로 안다. 규정 위반이지만 당시엔 수사관들이 자기 목적한 바를 달성하려고 피의자에게 술을 먹이곤 했다. 또 ‘김현희처럼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이야기하니까 원정화가 많이 고무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권학주가 작품을 만들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 이야기들에 혹해 원정화가 김현희보다 더한 마타하리(첩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

 

-원정화 사건이 조작되고 있다고 판단한 뒤 무엇을 했나?

 

“2008년 7월15일 김아무개 기무사령관에게 전화가 왔다. 내게 ‘뭐 어려운 일 있느냐’고 묻더라. 나는 ‘원정화는 국정원 정보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니 수사에 참조하라. (권학주가) 양 경장도 엮으려 하는데 걱정이다’고 전했다. 원정화가 검찰 송치될 때 담당 검찰 수사관에게도 전화해 ‘권학주를 신뢰하지 말라. 사건을 조작할 수 있는 사람이다’고 조언했다.”

소 전 대장은 2008년 9월3일 안양경찰서 경무과장 전보 발령을 받고 보안 수사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후 보복성 인사 조처에 계속 시달리게 됐다고 그는 주장했다.

“나에 대한 기무사의 허위 진정서 등에 대한 진상규명을 계속 요구하니까 2009년 7월 수원 중부경찰서 생활안전과 지도관으로 나를 발령 낸 뒤 아무런 역할도 안 주고 놀게 하기도 했다.”

 

이후 소 전 대장은 죽음으로써 진실을 밝히겠다며 몇차례 자살을 기도했으나 실패했다. ‘원정화와 김교학 단둥무역대표부 부대표(김 선생)와의 이메일 통신’을 보고한 양 경장은 엉뚱하게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감찰을 받고 파면됐다가, 소청심사위원회에서 감봉 2개월로 징계가 낮아졌다.

 

권학주 경감 “조작 의혹에 노코멘트”

 

-당신이 주장하는 내용이 거짓이라면 명예훼손 소송을 당할 수 있다.

“한 점 거짓이 없다. 나는 모든 민형사상 소송에 당당히 맞설 것이다.”

 

-지금 와서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간첩은 수사해서 잡아야지 만들어선 안 된다. 거짓은 언젠가는 드러난다. 대공 요원들은 일단 간첩 혐의자 기소만 이뤄지면 특진이 되니까 조작 유혹에 시달린다. 그러면 안 된다. 수사기관의 신뢰를 추락시킨다. 후배들이 절대 상부 지휘자들이 출세하는 데 이용당하지 않고 국가에만 충성하는 애국자가 되기를 바란다. 나는 이미 은퇴한 경찰이다. 내가 무엇을 더 바랄 게 있다고 이런 인터뷰를 하겠나.”

 

<한겨레>는 권학주 경감의 해명을 듣고자 연락을 취했다. 권 경감은 “(경찰 포상금 의혹에 대해서) 답변할 위치에 있지 않다. (원정화 관리 의혹에 대해서) 원정화가 지난해 출소 뒤 경제적으로 어렵다며 먼저 연락을 해왔다. 수차례에 걸쳐 경제적 도움을 주었다. 측은지심에 외면할 수 없었다. (원정화 사건 조작 의혹에 대해) 노코멘트 하겠다”고 답했다.

원정화씨는 “(소 전 대장의 주장은) 증거도 없는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고 말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