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결정과 헌법 동일시한 언론
헌법재판소가 지난 19일 결정한 통합진보당 해산의 주요 근거는 ‘이석기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석기 사건은 아직 법적으로 완결된 사건이 아니다.
이석기 의원은 형법상 내란음모 및 선동,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이적동조) 혐의로 기소되어, 지난 8월 항소심에서, ‘내란음모’에 대해서는 무죄, 내란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해서만 유죄 선고를 받고, 최종심인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통합진보당이 ‘폭력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집권한다는 계획’을 세웠다는 헌재의 주장을 입증하는 자료는 ‘내란음모’ 혐의로 재판 중인 ‘이석기 사건’밖에 없다.
그런데 이 주장이 입증력을 갖기 위해서는 내란음모 혐의가 최종적으로 유죄판결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내란음모 혐의는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대법원 판결은 아직 나오지 않았으니, 헌재가 제시한 ‘주요 근거’가 성립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밖에도 헌재의 정당해산 결정에는 해명되어야 할 숱한 의문점과 모순들이 널려 있다.
따라서 언론이 헌재의 결정을 보도할 때는, 제기될 수 있는 의문들과 모순점을 함께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의 판단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보도한 보수계열 신문들의 20일치 지면은 헌재 쪽의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전해, 균형잡힌 보도를 위한 최소한의 형식적인 요건도 갖추지 않았다.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마음 놓고, 헌재의 ‘위업’을 찬양하는 기사로 도배했다.
특히 ‘조중동’이라는 복합명사에 의해 한 묶음으로 인식되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1면 편집은 역사에 남을 ‘사실 왜곡’을 자행했다.
세 신문이 모두 1면에 통단 제목을 달아 이 사건을 ‘역사적 사건’으로 다룬 것은 당연한 뉴스 판단이었지만, 그 제목이 문제였다.
조선은 “헌법이 대한민국을 지켰다”, 중앙은 “종북에 대한 헌법의 반격”, 동아는 “자유민주헌법, 종북을 해산하다”가 주 제목이다.
헌재의 결정이 대한민국을 지켰다고 하건, 종북에 대해 반격했다고 하건, 종북을 해산했다고 하건, 그것은 편집자의 역사의식과 현실인식에 관한 것으로 시비를 걸 생각이 없다.
하지만 이들 제목이 한결같이 ‘헌재의 결정’을 ‘헌법’ 자체와 동일시했다는 것은, 편집자의 심각한 인식장애의 결과가 아니면, 헌재 결정을 성역화하기 위한 의도적인 사실왜곡이다.
이는 간혹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에서 드러나는,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도전’과 동일시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헌재의 결정은 헌법재판관 개인의 법률 해석을 다수결로 집약시킨 것일 뿐이다.
헌재의 정당해산 심판권은 헌법 111조 1항의 3(정당의 해산심판)에 근거를 두고 있다.
헌법에는 ‘해산 요건’ 등 정당해산과 관련된 어떤 규정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헌법재판관에게는 고도의 도덕성과 정치, 역사의식이 요구된다.
대통령이 집권당을 통해 국회를 장악하고, 대법원장의 임명권도 가진 대통령중심제에서, 재판관 9명 중 대통령이 3명, 국회가 3명, 대법원장이 3명을 지명하도록 한 헌법 규정에 대한 토론도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
헌재의 결정은 신성불가침의 성역이 아니라, 끊임없이 비판받고, 검증받아야 하는 대상이며, 이 일을 맡는 것이야말로 언론의 권한이자 의무이다.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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