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서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국정교과서를 지지하는 시민과 반대하는 시민이 경찰병력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다. 이날 오전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역사 교과서 국정 전환을 확정 발표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3일 서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국정교과서를 지지하는 시민과 반대하는 시민이 경찰병력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다. 이날 오전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역사 교과서 국정 전환을 확정 발표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김지석 칼럼]

첫째가 다수 국민과 맞선 관료요
둘째가 색깔몰이하는 새누리당이요
셋째가 왜곡된 주장펴는 관변·어용학자요
넷째가 행동대원 나선 극우세력이요
다섯째가 우두머리인 박 대통령이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한 박근혜 정부의 모습은, 1970년대 유신정권 시절의 박정희 정부와 똑같다. 좋은 말로 표현하더라도 ‘하면 된다’는 식의 독단이고, 실제로는 ‘나만 옳다’는 독재다. 그 결과는 유신정권의 말로에서 보듯이 교과서에 영원히 기록될 교육의 참사, 민주주의의 참사, 역사의 참사가 될 것이다.

 

이번 ‘역사쿠데타’는 한국인은 물론이고 지구촌 전체가 지켜보는 가운데 시도됐다는 점에서 더 뻔뻔하다. 쿠데타를 밀어붙인 오적(五敵)은 반드시 기억되고 심판받아야 한다.

 

첫째는 다수 국민에 맞서 앞장선 관료들이다.

황교안 국무총리와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교육부 공무원이 그들이다.

0.1%의 교과서가 옳고 99.9%가 잘못됐다는 황 총리의 발언은 국정화의 본질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99.9%가 0.1%에 맞춰 가야 한다는 논리는 그 자체로 폭력이자 전체주의다. ‘공안 총리’인 그가 전면에 나선 것은 ‘공안통치 강화’라는 이번 사태의 또다른 성격을 드러낸다.

앞선 정권에서 불법 민간인 사찰의 실체가 생생히 드러났을 때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라는 말이 유행한 바 있다. 그렇더라도 민심을 왜곡하면서 하수인 구실을 톡톡히 한 공무원들의 죄는 가볍지 않다.

 

둘째는 갖은 거짓말과 색깔론으로 여론몰이에 나선 새누리당 정치인들이다.

최근 아버지의 친일 경력이 불거진 김무성 대표는 근거 없는 말을 쏟아내며, 이른바 ‘역사전쟁’의 선봉장 노릇을 했다.

“국정화 반대는 적화통일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정현 최고위원), “북한의 ‘국정화 반대 지령’을 받은 단체와 개인을 적극 수사해야 한다”(서청원 최고위원) 등의 발언은, 극단적인 색깔론에 기댈 수밖에 없는 논리의 파탄을 보여준다. 이런 말을 공개적으로 할 정도의 수준이라면 집권당 간판부터 떼야 한다.

 

셋째는 권력과 교감하며 왜곡된 주장을 늘어놓은 관변·어용 학자들이다.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이 과거의 국정화 반대 소신을 바꾼 것이 자리를 유지하려는 단순한 노욕만은 아닐 것이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현행 교과서는) 학생들 뇌에 독극물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했고,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검인정제가 계속된다면 청년·학생들은 민중 혁명의 땔감밖에 안 된다”고 강변했다.

국정화 지지자 가운데 정통 역사학자가 별로 없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역사를 균형 있게 탐구하고 기록하는 게 아니라, 정치적 필요에 따라 취사선택하겠다는 ‘역사 도구주의’가 배경에 깔려 있다.

 

넷째는 행동대원으로 나선 일부 극우세력이다.

이른바 애국단체총연합회는 국정화 철회를 요구하는 28개 역사학회의 전국역사학대회 행사장에 난입했다. ‘아스팔트 보수’의 타락한 행태다. 극우단체 회원들은 국정화 강행을 밝힌 박근혜 대통령의 10월27일 국회 시정연설 때 특별히 ‘초청’받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번 쿠데타의 ‘우두머리’인 박 대통령이 있다.

그는 시정연설에서 “확고한 국가관을 갖고 주도적 역할을 하기 위해서도 역사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의 교과서는 국가관에 문제가 있는 비정상적인 것이라는 단정이다. 퇴행적 국가주의의 탈을 쓴 독선과 오만이다.

이후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여권 내 국정화 반대 목소리는 완전히 사라졌다. 국정화 논의 자체가 2013년 6월 “6·25가 남침인지 북침인지 모르는 학생들이 많다”는 그의 발언에서 시작한다. 남침·북침 용어의 혼동을 ‘교육현장의 역사왜곡’으로 탈바꿈시킨 일종의 ‘정치 공작’이다.

 

애초 박 대통령의 아집에서 출발한 국정화 시도는 이후 극우적 역사관을 확산시키려는 소수 과격파와 기회주의적인 권력추종세력 등이 결합하면서 국가정책이 돼버렸다.

박 대통령이 정치를 익힌 유신정권 말기처럼 최소한의 합리성도 실종되고, 힘의 논리와 여론조작, 꼼수와 눈치보기만 판친다.

 

 

역사쿠데타는 시민사회의 거센 저항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소수가 역사를 독점하려는 시도가 좌절될 때까지 오적들의 이름은 계속 불릴 것이다.

이들이 역사의 심판대에 선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어떤 생각을 할지 자못 궁금하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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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만큼의 결기가 필요하다

 

 

 

“역사학자의 90%가 좌파다.” “전체 책을 다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 “잘못된 역사교육으로 청년들 입에서 헬조선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박정희는 비밀독립군이었다 한다.” “(국정화에) 반대하는 국민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 “고등학교의 99.9%가 편향된 교과서를 선택했다.”

 

 

대한민국 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대통령, 총리, 여당 대표, 국회의원들이 한 소리들인데, 극도로 예의를 지켜 관찰자 시점에서 평가하면, 전부 “개 풀 뜯는 소리”다.

 

그렇다. 관찰자 시점에서 보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강행은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 수렁에 빠져 들어간 형국이다.

불통이란 이미지가 더 강화되었고, 비밀 티에프(TF) 운영과 예비비 불법 집행으로 반칙을 일삼는 이미지도 덧씌워졌다. 이메일 의견제출 거부, 의견제출용 팩스 꺼놓기, 전자관보 게재를 보면 직전 대통령의 장기였던 ‘꼼수’도 떠오른다.

그렇게 해서 지지도가 떨어진 대통령이 겨우 진압한 여당에 자기 사람을 잔뜩 심고 총선 승리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더구나 선거구 조정으로 도시 지역 선거구가 늘어날 텐데 말이다.

 

하지만 국정화를 반대하는 참여자 시점에 서면, 대통령이 정치적 실수를 저질렀다고 쉽게 생각할 상황은 아닌 듯하다. 국정화를 강행하는 대통령이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었고, 어느 정도 결기로 임하는지 냉정하게 가늠해봐야 한다.

 

 

10월 마지막주 갤럽 조사에 따르면, 국정화 찬성은 36%, 반대는 49%라고 한다. 걱정스러운 점은 국정화 반대론자들 사이에 이런 여론조사 결과에 자족하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명백히 1987년 민주화 이전으로 후퇴하려는 이런 시도에 대해 36%라는 찬성은 지나치게 높다. 더구나 반대하는 49%의 스펙트럼이 넓은 사회문화적 결속인 데 비해 찬성하는 36%는 응집력이 높은 정치적 결속이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여러 갈래의 상층 엘리트 집단을 결집하는 면도 있다. 생각해보라. 박 대통령이 굳이 이승만 대통령을 추숭할 이유는 없다. 4·19 혁명이 있어서 그랬지, 그렇지 않았다면 5·16 쿠데타가 거꾸러뜨린 것은 이승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아버지의 무덤에 회칠을 하기 위해서 이승만 추종 집단과 제휴했다.

화제가 된 자유경제원 전희경 사무총장의 발언에서 보듯이, 차제에 사회교과서 국정화를 원하는 재벌도 힘을 합치고 있다. 아마 그 사회교과서는 앵거스 디턴의 저서 번역본처럼 만들어질 것이다.

 

국정 한국사 교과서는 2017년부터 사용될 텐데, 그 점을 두고 어떤 국정화 반대론자는 “1년밖에 못 쓸 교과서를 시도하는 대통령의 정신 나간 행태”라고 꼬집는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엔 정신 나간 면은 국사를 국정화한다는 데 있지, 1년밖에 못 쓸 교과서에 집착하는 데 있진 않다. 1년밖에 못 쓸 교과서인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기 때문이다.

국정화 강행으로부터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대통령의 의지는, 다음 총선을 자신의 주도로 승리하고, 자신의 노선을 충실히 따르는 후계자를 내세워 대선에 승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 교육감 선거를 폐지하는 것이다.

 

관찰자 시점에서라면 대통령의 이런 의지와 계획이 좌초할 가능성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관찰자 시점에 설 때조차도, 많은 사람이 우리 사회가 ‘헬교과서’로 역진해 가리라 생각하지 않았고, 심지어 ‘보수’ 언론과 교육부 장관조차 검정 강화로 족하다는 의견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불교에 따르면 ‘헬’에도 여러 단계가 있고, 역진은 그만큼 더 일어날 수 있다. 그러니 참여자 시점에서라면 더더욱 대통령의 결기를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적어도 그만큼의 결기를 가져야 하고 국정교과서를 1년밖에 못 쓰게 만들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