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종업원에게도 인권이 있다
집단탈북 뒤 지난 7일 입국한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13명’은 남한에서의 처음 며칠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탈북이라는 운명을 건 모험을 감행한 뒤, 남쪽 공항에 첫발을 딛게 된다면 안도의 표정을 짓는 게 일반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첫 남녘살이는 그런 편안한 마음으로 출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 남쪽에 도착한 바로 다음날 통일부가 긴급 기자회견을 한 탓이다. 더욱이 기자회견 내용은 집단탈북 종업원들의 신분 정보가 자세히 담긴 것이었다.
북한의 해외 식당은 모두 130여개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데 그중 한 곳에서 13명이 함께 탈북했다는 것을 통일부가 공개했다. 북한 당국이 그들이 누구인지 파악하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운 일일 것이다.
만일 집단탈북 종업원들이 통일부의 기자회견 사실을 알았다면, 북에 남은 가족 걱정에 편히 잠을 자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아직까지 통일부의 기자회견 사실을 모를 수 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어떤 은밀한 장소로 이송됐다. 이후 국정원 등이 주도하는 ‘합동신문조사’를 받고 있을 것이다. 합동신문조사팀은 조사의 효율성을 위해 통일부의 기자회견 사실을 그들에게 일체 알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합동신문조사를 받고 나온 뒤 기자회견이 그렇게 전격적으로 진행됐다는 것을 알면 그들은 또 얼마나 큰 배신감을 느낄 것인가. 아마도 ‘새로운 고향’이라고 믿고 찾아온 남쪽의 정부가 자신들 등에 비수를 꽂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새 삶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찾아왔지만, 남한 정부에 의해 배신당하고 버림받았다’는 한탄으로 세월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모든 일은 정권의 ‘정치적 이익’을 탈북자 ‘개인의 인권’보다 중요시한 탓에 일어났다. 물론 이렇게 정치이익을 위해 탈북자 인권을 침해한 일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6월15일 중동부 전선을 통해 북한군 병사가 귀순했을 때에는 국방부가 그 병사의 정보를 언론에 ‘줄줄’ 흘렸다. 당시 언론은 이 사건에 대해 ‘1박 귀순’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국방부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국방부의 정보를 그대로 받아쓰면서 비판은 간데없고 흥미만 남았다.
당시 그가 전방이 아닌 함흥에서 200여㎞를 걸어왔다는 사실과 함께, 심지어 ‘군대 내 보직은 누구누구의 운전병이었다’는 점까지 자세히 소개됐다. 이에 따라 그냥 전방에서 귀순했다고만 했으면 드러나지 않았을 신분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됐고, 이 병사 역시 북에 남은 가족 걱정으로 많은 번민의 날들을 지내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집단탈북 종업원에 대한 ‘통일부의 기자회견’은 당시와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통일부가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탈북자 보호 및 정착지원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부서이기 때문이다. 특히 법은 제4조 기본원칙에서 “대한민국은 보호 대상자를 인도주의에 입각하여 특별히 보호”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통일부의 이번 긴급 기자회견은 이런 법의 취지를 명백히 어긴 것이다.
어떤 정부이건 자신들이 이루고자 하는 정치적 목적이 있다. 또 여러 수단을 동원해 이를 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법의 테두리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 기자회견처럼 탈북자 인권이라는 법의 기본원칙마저 무시할 때, 사람들은 이를 ‘또 하나의 북풍’이라고 부를 것이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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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탈북 긴급발표’ 청와대가 지시했다
8일 오후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통일부 정준희 대변인이 북한 집단 탈북 이슈와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16.4.8. 연합뉴스
복수의 정부관계자 밝혀
‘대북제재 효과’ 홍보 통해
총선 직전 보수표 결집 노림수
통일부 반대·비공개 관례 무시
정부가 4·13 총선을 닷새 앞둔 8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 사실을 발표한 것은 청와대의 지시에 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통일부는 탈북민과 북쪽에 남은 가족 등의 신변안전을 위해 탈북 사실을 공개하지 않아온 관례 등을 들어 반대 의견을 냈으나 묵살됐다.
총선을 앞두고 정부 주도의 대북제재로 인한 북한 내부 동요 분위기를 강조해, 보수 표를 결집하려는 목적이 앞섰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한겨레> 취재 결과,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13명의 집단 탈북 관련 긴급 기자회견은 청와대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나타났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는 “통일부의 집단 탈북 공개 브리핑은 청와대의 지시로 갑작스럽게 하게 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들은 “통일부가 집단 탈북 사실을 공개하면, 북쪽에 남은 가족의 신변이 위험해지며, 탈북 사실을 비공개로 해온 전례에도 어긋나는 일이라며 반대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 이번 통일부 대변인의 집단 탈북 관련 기자회견은, 예정에도 없었고, 30분 전 기자단에 공지됐다.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들의 한국 입국이 7일 이뤄진 데 이어, 바로 다음날 긴급 브리핑을 통해 관련 사실을 공개한 것도 극히 이례적이다. 통상 탈북자가 한국 정부에 보호를 요청하면, 해외공관 등에 임시 수용한 뒤 입국시키고, 입국 뒤에는 국가정보원 등의 합동신문을 거쳐 탈북민으로 보호할지 여부를 결정하는데, 이번엔 이런 과정이 대부분 생략된 채 집단 탈북 사실만 먼저 공개됐다.
집단 탈북 사건 공개를 신호탄으로, 정부 부처들은 휴일에도 일제히 ‘강력한 대북제재가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며, 보수 표심을 자극하는 홍보에 적극 나섰다. 통일부와 외교부는 10일 한국 정부의 독자 대북제재와 관련한 비공개 기자간담회를 이례적으로 동시에 열었다.
통일부 고위당국자는 이 브리핑에서 “집단 탈북은 우리 정부의 단독 대북제재(3월8일 발표)의 파급효과”라고 밝혔다.
그는 또 “북한 주민들과 내부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집단 탈북) 사례가 추가로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동시에 북한이 대북 압박에 반발하면서, 추가 핵실험 등 무모한 도발을 선택할 가능성도 있는 엄중한 시기”라고 말했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도 같은 시각 “대북제재로 북한 선박들이 항구에 발이 묶여 있다”며, 대북제재의 효과를 거듭 강조했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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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전 탈북도 우려먹는 청와대의 ‘창조 북풍’
선거앞 ‘북 대좌 망명’ 알리라
청 “언론에 사실확인 해줘라”
통일부·국방부 등에 지시
탈북 확인 꺼리던 관례 깨고
총선 직전까지 북풍몰이
청와대가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 사실을 긴급 발표하도록 통일부에 지시한 데 이어, 이번에는 ‘북한군 정찰총국 출신 대좌의 망명’ 사실을 언론에 알리라고, 국방부 등 정부 부처에 지시했다. 청와대가 4·13 총선을 앞두고 전례없는 탈북 사실 공개를 주도하며 신종 ‘북풍몰이’를 진두지휘하는 모습이다.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은 11일 오전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군 정찰총국 출신 대좌가 지난해 남한에 망명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그런 사실이 있다”고 확인했다. 비슷한 시각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도 별도의 정례 브리핑에서 “그런 사람이 입국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앞서 <연합뉴스>는 브리핑 1시간 전 “북한 정찰총국에서 대남공작을 담당하던 대좌가 지난해 국내 입국했다. 지금까지 인민군 출신 중 최고위급 탈북자”라고 보도했다.
국방부 등이 이처럼 이례적으로 사실 확인을 해준 것은 청와대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정부 관계자들이 밝혔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는 “국방부 대변인의 정례 브리핑 ‘수분 전에’ 청와대 국방비서관실에서 ‘북한군 정찰총국 출신 대좌의 망명은 사실이니, 기자들의 질의에 사실을 확인해주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지난 8일 ‘북한 해외식당 직원 13명의 집단 탈북’ 사실을 이들이 입국한 지 하루 만에 공개하도록 통일부에 지시한 바 있다. 10일에는 일요일임에도 통일부와 외교부가 동시에 기자간담회를 열어 대북제재의 효과를 홍보하고 나서 역시 ‘청와대의 총선용 기획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청와대가 연일 탈북자 보호 원칙은 팽개치고 ‘탈북자들의 국내 입국’ 사실 공개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총선을 의식한 청와대의 무분별한 행보에 통일·외교·안보 부처들이 동원되고 탈북자 정보 공개의 기준과 원칙이 희생되고 있다는 비판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문상균 대변인은 이날 “앞으로도 이런 일은 다 확인해주는 것이냐”는 질문에 “거기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답변할 수 없지만, 알려줄 수 있는 부분은 알려주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답변을 흐렸다.
‘정찰총국 출신 대좌의 탈북’은 이미 알려진 내용을 새로운 사실인 양 포장한 것이라는 의혹도 있다. <동아일보>는 지난해 7월8일치 기사에서 ‘정찰총국 주요간부를 포함한 북한의 핵심간부 5명이 입국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당시 통일부는 “확인된 것이 없다”고 밝혔으며, 국방부도 “소관 업무가 아니다”라며 사실 확인을 거부했다. 정부는 이 보도의 ‘정찰총국 주요간부’가 이번에 발표된 ‘정찰총국 출신 대좌’와 동일인물인지는 확인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시기적 유사성 등을 볼 때 정부가 이미 보도된 내용을 선거를 앞두고 확인해주는 방식으로 사실상 ‘재탕’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박병수 선임기자, 김진철 기자 su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