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관련

세월호 피로감의 실체

道雨 2016. 9. 6. 11:30

 

 

 

세월호 피로감의 실체

 

 

 

아직도 이어지는 세월호 망언을 접할 때마다 화들짝 놀란다. 어리석은데 지독하기까지 한 느낌이다.

지난주 새누리당 정유섭 의원의 발언을 들으면서 또 그랬다.

“언제까지 세월호 수렁에 있어야 하느냐. 세월호 농성장을 철거하고 이제는 정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것이 국민이 원하는 것이다.”

30년 경력의 해수부 마피아 출신답다.

 

꼭 일주일 전 <조선일보>는 지령을 내리듯 정유섭의 망언과 꼭 닮은 사설을 게재했다.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의 안타까움과 분노는 시간이 2년, 3년 지난다 해도 가라앉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 해도 광화문 세월호 천막들은 이제 걷을 때가 됐다. 우선 유족들부터 세월호가 가라앉던 그 끔찍한 기억의 고통에서 풀어주어야 한다. (…) 국민도 침울한 기억에 오래 매달려 있을 수가 없다. (…) 애도도 너무 오래 끌면 의미가 퇴색할 수 있다.”

유족들의 안타까움이나 분노가 뭔지 알기는 하는지 모르겠다. 자식이 있었다는 기억 자체를 지워버리라고 하지 그러나.

 

어떤 기자는 ‘세월호 참사는 국민 전체를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었지만, 이제 세월호 추모 천막은 국민들에게 진상규명보다 피로를 느끼게 하고 있다’고 내지른다.

아는 척하지만 모르는 사람이 하는 얘기다.

 

세월호 같은 재난 국면에서는 누구나 피로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일반 시민들뿐 아니라 세월호 유가족들도 그렇다. 누구에게도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피로감은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될 때 나타나는 전방위적 에너지 소모의 다른 이름이다.

 

현대사회에서 집단적 재난을 통제하고 해결할 수 있는 주체는 국가뿐이다. 재난에 대처하려면 상황 수습도 해야 하고 진상규명과 치유뿐 아니라 재발방지 대책도 필수적이다. 여기에는 천문학적 규모의 인력과 조직, 정보와 돈이 필요하다. 이 과정은 개인의 통제영역 바깥의 일이다.

 

세월호 피로감을 해결할 수 있는 주체는 유가족도 시민도 아니다. 국가뿐이다. 국가만이 전체적으로 통제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피로감이 여전하다면 그건 국가가 할 일을 안 하고 있다는 증거다.

다른 나라에선 이런 정도의 재난 사고가 발생해도 피로감 운운하며 그만하자는 말 안 나온다. 국가가 그런 역할을 응당 맡기 때문이다. 그러니 단순히 세월호 천막을 철거한다고 세월호 피로감이 사라질 리 없다.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 이 나라는 유체이탈 국가다. 생존자 구조도 어선이 하고 시신 수습도 민간잠수사들이 했다. 치유도 진상규명조차도 자원봉사자와 유가족들이 나서야 한다.

재난 같은 총체적 난국에서 개인들의 참여는 장엄하고 감동적이지만 부분적일 수밖에 없다. 국가가 나서야 온전한 해결이 가능하다. 당연히 세월호 피로감의 해결 주체도, 더 악화시킬 수 있는 주체도 국가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남의 일 보듯 하니, 아이 잃은 부모의 가슴에 소금을 뿌리며 상처만 악화시키는 망언족들이, 피해자들에게 자기들의 피로감까지도 해결해내라고 닦달하는 부조리한 현상이 생겨난다.

 

<터널>은 극한의 재난 상황에 처한 국민을 대하는 국가의 무책임과 무능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영화다. 터널에 갇혀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여론조사 결과 60% 이상이 피로감을 호소한다며 구조를 중단하자고 한다.

그럴 때 국가는 단 한 사람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구해야 하는 거다. 피로감 운운하지 않고 끝까지. 그런 게 국가의 위엄이다.

 

‘터널’의 연관검색어가 ‘세월호’라는 건, 세월호 참사가 얼마나 우리 무의식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세월호 피로감은 유체이탈 국가에 사는 국민들만이 경험하는 희귀하고 불행한 감정이다.


 

[ 이명수, ‘치유공간 이웃’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