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착한 공산주의자’의 길

道雨 2018. 5. 17. 10:10




‘착한 공산주의자’의 길





리처드 닉슨은 1969년에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루마니아를 방문했다. 냉전이 한창일 때 미국 대통령이 동유럽을 방문한 것은 특이했다.

닉슨은 루마니아를 이끌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에 대해 “그는 공산주의자이겠지만 우리의 공산주의자”라고 평가했다. 1983년 당시 부통령 신분으로 루마니아를 방문한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도 차우셰스쿠는 “착한 공산주의자”라고 했다.


차우셰스쿠를 미국 지도자들이 좋게 말한 이유는 단순하다. 루마니아는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이었지만 소련에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철저한 반공주의자인 닉슨이나 부시의 눈에도 기특할 수밖에 없었다. 루마니아는 미국의 지원 아래 1971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72년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에 가입했고, 75년에는 미국의 무역 최혜국 대우 대상이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치광이라고 불렀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같은 입으로 “훌륭하다”고 평가한 것도 대단한 반전이다. 그러나 차우셰스쿠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 전임자들의 기묘한 평가와 마찬가지로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미국 대외정책의 지상 목표인 ‘전략적 이익’에 부합한다면 훌륭하다 못해 존경해 마지않는다는 찬사를 받지 못할 이유가 뭐겠는가.


날은 잡았지만 곡절이 예상되던 북-미 정상회담은 현재 미국의 ‘골대 옮기기’에 대한 북쪽의 반발로 난기류를 만났다. 당장은 북-미가 이를 극복할지가 관건이다.

일이 잘 풀려 체제 내지 국가의 안전을 보장받고 나면 남는 문제는 경제일 수밖에 없다. 판문점에서 김 위원장이 세계로 중계되는 카메라 앞에서 밝힌 내용보다 청와대가 나중에 전한 발언이 더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미국과의 적대 관계가 해소된다면 “왜 우리가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겠나”라는 대목 말이다.

앞서 미국 언론은 방북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김 위원장이 ‘우리는 가난한 나라’라고 발언했다고 전했다. 3대에 걸친 열패감과 비원이 느껴진다.


일찍이 1950년대에 “이밥에 고깃국”을 거론한 김일성 주석은 결국 공약을 지키지 못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1년 중국 상하이의 동방명주에 올라 “천지가 개벽했구나”라고 감탄인지 탄식일지 모를 말을 뱉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인민들의 가난이 아니라, 국가의 가난이 아니라, ‘우리’의 가난을 말했다고 한다. 가문 정치의 후계자가 떠안은 부담이 엿보인다.


북한이 어떤 경제발전 방식과 경로를 택할지가 머지않아 핵심으로 부상할 것이다. 미국은 민간 투자라는 당근을 제시했고, 한국은 보다 큰 차원의 개발 지원 프로젝트를 띄우고 있다. 중국식이라거나 베트남식이라거나 여러 얘기가 나오지만 구체적 청사진은 공개된 바 없다. 속도와 수위를 조절하며 국가와 노동당의 강한 지도력을 놓지 않을 것이라는 쪽으로 전망이 모아진다.


1992년 당시 북한의 개혁파였던 김달현 부총리는 미국 언론인 셀리그 해리슨에게 “우리는 더 이상 철의 장막을 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모기장 정도는 유지하겠다. 모기장은 산들바람은 통과시키지만 모기는 막는다”고 말했다.


그 정도면 될까?

북한 경제는 상쾌한 산들바람만 만끽하며 순항할 수 있을까?

모기 같은 것은 드나들라고 하고 맹금류의 침투만 막을 정도로 그물을 성기게 할 필요는 없을까?

자본은 둑만 터주면 어디든 흘러넘칠 것 같지만 기회주의적 속성도 강하다.

결국 김 위원장의 꿈은 미국과의 대결보다 심오한 숙제와 만날 것이다.

미국 지도자한테 상찬을 받는지 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착한 공산주의자’든 ‘착한 사회주의자’든 내부에서 그런 말을 들어야 한다.



이본영 국제에디터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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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44937.html?_fr=mt0#csidx32b48df21bda865b8f8387c82ad4c8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