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군 의혹(정치, 선거 개입)

기무사는 왜 37년 전 '성공한 쿠데타'를 소환했나?

道雨 2018. 8. 3. 10:38



기무사는 왜 37년 전 '성공한 쿠데타'를 소환했나?




정치BAR_2017년 기무사 계엄 문건과 1980년 계엄 상황 비교

계엄실무편람에 없는 '국회의원 체포' 계획
신군부의 김대중 체포·김영삼 가택연금과 비슷
언론 사전검열 방안도 80년과 똑같아

과거 권력 장악한 육군 사조직 '하나회'처럼
육군 내 '알자회'가 기무사 문건 작성 연관 의심
알자회 소속 조현천 당시 기무사령관 역할 주목

계엄 직후 '국정원 접수 계획'도 세워
전두환도 중앙정보부장 서리 겸직
국정원 정보 및 특활비 노렸다는 의혹도


그래픽_김지야



국군기무사령부가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앞두고 작성한 ‘전시계엄 및 합수 업무 수행방안’을 놓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기각될 경우, 촛불시민을 군이 무력진압하는 내용에 국민은 경악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창군 이래 첫 독립적인 특수수사단을 꾸려 문건의 전모를 밝히라고 요구했다.

뒤이어 공개된 67쪽의 ‘대비계획 세부자료’에는 야당 국회의원 체포를 통한 국회 무력화 등 더욱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런데… 67쪽을 모두 읽고 난 뒤에는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기무사의 계엄 검토 문건은 1980년 5월17일 신군부의 비상계엄 전국 확대계획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실제로 ‘세부자료’ 안에 과거 계엄 포고령 등이 ‘참고자료’로 첨부돼있는 걸로 보아, 기무사는 1980년 비상계엄 사례를 ‘벤치마킹’했을 가능성이 높다.


2017년 민주주의 국가에서 기무사는 37년 전 쿠데타 성공의 추억을 되새겼던 걸까.

2017년의 계엄 모의와 1980년 계엄의 놀랍도록 비슷한 디테일을 들여다보자.


국군기무사령부 정문. 한겨레 자료사진



1. 국회 무력화·언론통제 데자뷔


1980년 5월17일,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이끄는 신군부는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를 결정한다. 신군부의 계엄해제와 평화적 정권교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던 때다.

앞서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김대중, 김영삼은 비상계엄 즉각 해제 의결을 위한 임시국회를 1980년 5월20일에 열기로 했다. 헌법 제77조는 국회가 재적 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이 계엄령을 해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자 신군부는 사흘 앞선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 것이다. 김대중, 김종필 등 주요 정치인 26명을 체포하고 김영삼을 가택 연금하며 국회를 무력화했다. 또 보도통제 지침을 내려 기사를 검열했고 이를 거부하는 언론인이 대규모 해직됐다.


국군기무사령부의 비상계엄 대비계획 세부자료 가운데 국회의원 체포계획 부분



37년 뒤인 2017년 3월에 작성된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문건에도 이와 유사한 국회 무력화-언론통제 계획이 들어있다.

‘국회 무력화’는 국방부가 공개한 ‘2016 계엄 실무편람’에도 없는 내용이다. 현재의 규정을 따르지 않고 굳이 80년대 계엄을 적용한 셈이다.


기무사 문건에서 ‘국회에 의한 계엄해제 시도 시 조치사항’을 보면, 1980년 경험이 담겨있는 듯 “국회의원 대상 현행범 사법처리로 의결 정족수 미달 유도”한다.

구체적으로는 “집회·시위 금지 및 반정부 정치활동 금지 포고령을 선포하고, 위반 시 구속수사” “불법시위 참석 및 반정부 정치활동 의원 집중검거 후 사법처리”하는 방안을 고려했다.


언론통제를 위해 보도검열 조직을 편성하고 “신문 가판, 방송·통신 원고, 간행물 견본, 영상 제작품 원본을 제출받아 검열”하는 계획을 “비상계엄 선포 시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작성 날짜를 가리면 언제 쓰였는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80년대 계엄 지시사항과 닮았다.


국군기무사령부의 비상계엄 대비계획 세부자료에는 1979년 계엄 선포 당시 정승화 계엄사령관의 담화문(왼쪽)과 2017년 계엄사령관이 발표할 담화문(오른쪽)을 차례로 배치했다.



2. ‘미국에 지지요청’까지 닮은꼴


전두환 정권은 쿠데타 이후 끊임없이 미국의 인정을 받기 위해 외교 노력을 벌였다. 전두환 대통령은 1985년 4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릴 한미 정상회담 언론 발표에서 레이건 대통령에게 ‘호헌’ 지지 입장을 밝혀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외교부가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작성한 ‘레이건 대통령의 신문발표문 교섭내용’을 보면, 우리 정부는 “대통령 각하의 헌정수호 결의 지지 및 영도력 찬양”이 들어갈 것을 요구했다.

또 외교부가 주미대사에 “레이건 대통령이 '헌법 수호를 통해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려는 한국 정부의 노력을 확고하게 지지한다'는 성명을 해주기 바란다”는 문서를 보냈다.


2017년 계엄 문건 역시 ‘주한무관단·외신기자 대상 외교활동 강화 계획’을 세우고, 국방부장관에게 “주한 미 대사를 초청하여 미 본국에 계엄 시행 인정토록 협조”하라고 했다.

또 계엄사령관에게는 “주한 무관단을 소집하여 계엄의 불가피성과 신속한 사회질서 확립 등 계엄 시행의 지지 당부”를, 외교부장관에게는 “주요 국가 주한사절단(기자·기업인 포함)을 초청하여 계엄 시행을 지지하도록 요청”하라고 했다.


12·12로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이 9개월 만인 1980년 9월1일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있다. 대한민국정부기록사진집



3. 하나회와 알자회


1980년 군사계엄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하나회가 주도했다. 하나회는 전두환, 노태우 등 육군사관학교 11기생이 주축이 된 군 사조직이다. 이들이 이끈 신군부는 1979년 12·12 군사반란과 1980년 5·17 비상계엄 확대, 5·18 민주화운동 무력진압을 자행했다.

이 과정에서 자신들과 대립하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끌어내렸고, 육사 출신 이희성 육군 대장을 육군총장 겸 계엄사령관에 앉혔다.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 한겨레 자료사진



2017년 문건에서 가장 뚜렷이 나타나는 대목은 계엄사령관에 군 서열 1위인 합참의장이 아니라 육군참모총장을 추천했다는 것이다.

문건 가운데 대통령을 수신자로 한 ‘계엄사령관 추천 건의’ 제목의 문서를 보면, “현재와 같은 치안 질서가 마비된 상황에서도 대북 억제력 발휘가 절실”하다며 “합참의장, 군사령관은 군사 대비태세 확립에 대비하고, 현행 작전 임무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건의”했다.


당시 이순진 합참의장은 육군 내 비주류로 분류되는 3사관학교 출신이었다. 조현천 기무사령관과 장준규 육군참모총장, 한민구 국방부장관 등이 모두 육사 출신이었다.

이순진 합참의장을 배제하고 육사 출신 군인들이 전면에 나서기 위해, 계엄사령관을 육군총장으로 하려 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당시 문건 작성 지시자였던 조현천 기무사령관은 육군 내 사조직 ‘알자회’ 소속으로 알려져 있다. 알자회는 육사 34~43기 중심으로 구성된 육군 내 사조직이다. 알자회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주요 요직을 맡으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지난 2016년 세계일보 보도로 추명호 전 국정원 국장이 최순실씨와 친분을 계기로 ‘알자회’ 선배 조현천 전 당시 소장을 기무사령관으로 천거했다는 내용의 문서가 알려지기도 했다. 또 지난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고 누락 논란 때도 알자회가 배후에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일 한 여권 관계자는 “박근혜 정권 당시 김관진 안보실장을 중심으로 한 독사파(독일 육사)가 힘을 얻고 있어, 조현천 기무사령관을 핵심으로 알자회가 부활을 꾀하려 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면서 “기무사 문건 작성에 군 내 사조직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어 수사로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지난달 20일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군으로부터 입수한 기무사의 계엄문건을 공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4. 국정원 ‘접수’는 왜?


1980년 5월 비상계엄 확대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정보기관을 장악하기 위해 중앙정보부장(현 국가정보원장) 서리를 겸임했다.

이는 2017년 기무사 문건에서도 재현됐다.


기무사의 계엄 문건은 유관기관 통제방안에서 국가정보원 ‘접수’ 계획을 세웠다.

문건은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하다고 분석하고 “이럴 경우 비상계엄은 헌법에 근거해 국정원법보다 우선 적용되며, 계엄사령관이 계엄지역 내 행정·사법 업무를 관장함을 (국정원에) 통보”하도록 했다. 문건은 또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에 따르도록 지시하고, 국정원 2차장을 계엄사로 파견시켜 계엄사령관을 보좌토록 조처”라고 계획을 세웠다. 국정원 2차장은 국내 정보를 담당한다.


일각에선 기무사의 ‘국정원 접수’ 시도가 국정원의 특수활동비와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수천억원대로 알려진 국정원 특활비를 활용해 계엄 통치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