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호 차장이 강물에 손을 담갔다가 빼자 손에 녹조가 거머리처럼 덕지덕지 달라붙었다. | |
ⓒ 김종술 |
이 손을 보아주기 바란다. 진한 녹색 페인트통에 한 번 담갔다가 뺀 손처럼 엉망이다. 페인트보다 더 진한 금강의 녹조에 담갔던 손이다.
4대강 사업 이후 금강에 최악의 녹조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백제보 상·하류는 질척한 곤죽 상태로 빠졌다. 재난 상태의 녹조가 발생하고 있지만, 백제보의 수문개방을 놓고 농민들과의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3일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이 공주보를 찾았다. 최근 녹조가 발생하여 최악으로 치달은 금강을 돌아보기 위해서다. 수문이 개방 중인 공주보 상류는 수심이 낮아지면서 물 밖으로 드러난 진흙밭에 잡풀들이 자라고 있었다.
낮은 가장자리는 백제보의 수위 영향을 받아 시커먼 펄들이 흘러가지 못하고 쌓여 있다. 흙탕물로 변한 강물에서는 가끔 물고기들이 튀어 올랐다. 수문을 개방하지 못한 지난해에 심각할 정도의 녹조가 발생했던 곳이다. 수풀을 헤치고 상류 3km 지점까지 돌아본 강물은 탁하지만, 녹조는 보이지 않았다. 강 중간에 쌓인 자갈밭에는 왜가리, 백로, 오리들이 노니는 모습만 관찰됐다.
재난 상태에 빠진 녹조강
큰사진보기 | |
▲ 충남 부여군과 청양군을 연결하는 왕진교 다리 밑에 왜가리 한 마리가 물고기를 잡기 위해 말라죽은 나뭇가지에 앉아있다. | |
ⓒ 김종술 |
차를 타고 달리는 도중에 하류 공주시 탄천면부터 녹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후미진 곳이나 물가 가장자리에는 녹색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어제와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다. 바람을 타고 흘러가는 녹조는 어제보다 더 짙어졌다.
녹조가 뒤덮인 강물 위로 물고기 몇 마리가 보였다. 머리를 물 밖으로 내밀고 느린 속도로 다니면서 뻐끔거린다. 깻잎만 한 자라 한 마리가 코를 물 밖으로 내밀다가 인기척에 놀라 사라졌다. 바짝 말라죽은 버드나무 가지에 앉은 왜가리는 움직임이 없다.
큰사진보기 | |
▲ 백제보 상류 한국수자원공사 선착장이 녹조가 발생하면서 녹색으로 물들었다. | |
ⓒ 김종술 |
백제보 상류 500m 지점 한국수자원공사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물고기 양식장에서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차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4대강 사업 이후 녹조가 발생하자 수자원공사가 강물에 띄워 사용하던 것이다. 확인 결과 지난해 11월 백제보 1차 개방이 이루어지면서 철거됐던 것인데, 녹조가 심해지면서 추가 설치할 목적으로 10여 대를 가져다 놓았다고 했다.
주변을 돌아봤다. 강물은 온통 녹색으로 물들었다. 바람을 타는 곳에서는 녹조가 밀려다니면서 물속 수초가 흐느적거리는 모습처럼 보였다. 동행한 이경호 처장이 강물에 손을 담갔다가 빼자 찰진 녹조가 거머리처럼 손등에 달라붙어 올라왔다. 뚝뚝 떨어지는 녹조에서 풍기는 냄새는 숨쉬기도 거북했다.
백제보에서는 녹색 강물이 쏟아져 내렸다. 물이 떨어지는 지점부터 선명한 녹조 띠가 물살에 춤을 췄다. 제방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한 석축에서 나란히 앉아 몸을 말리던 새까만 가마우지가 푸드덕 뛰어오르면서 녹조 강으로 뛰어들었다.
이런 강에서 카누 대회라니
큰사진보기 | |
▲ 지난달 31일부터 나흘간 남녀 중·고·대학·일반부로 나뉘어 전국카누경기대회 경기가 치러진 장소다. | |
ⓒ 김종술 |
전국카누경기대회가 열리던 백마강교 아래에는 작은 고무보트 한 대가 강물에 설치한 부표를 철거하고 있었다. 강물은 어제보다 더 짙어 보였다. 경기가 열리던 장소로 내려가면서 코부터 막아야 했다. 곤죽 상태의 녹조가 강변 자갈과 모래, 바위를 녹색 페인트로 물들였다. 물에 띄워놓은 부표와 보트에도 녹색 페인트를 칠한 것처럼 선명한 녹색이다.
이곳에서는 지난달 31일부터 3일까지 나흘간의 일정으로 제14회 백마강배 전국카누경기대회가 열렸다. 남녀 중·고·대학·일반부로 나뉘어 치러진 경기에는 1000여 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이번 경기는 부여군이 1억 1450만 원 보조금을 후원했다고 알려졌다. 대한카누연맹이 주최, 충남카누협회가 주관한 행사다(관련 기사: 악취 풀풀 녹조강에서 1000명 참가하는 카누대회).
"세상에 녹조가 이 지경인데, 접촉 등으로 피부병이 생길 가능성이 있는 강물에서 경기를 치렀다는 게 믿어지지 않네요. 자식 키우는 사람이라면 이런 강물에 자식 같은 어린 학생들을 집어넣을 수 있을까요."
화가 잔뜩 난 이경호 처장이 목소리를 키웠다.
큰사진보기 | |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충남 부여군 부소산성으로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유람선이 지나가자 녹조 파도가 밀려들고 있다. | |
ⓒ 김종술 |
투덜거림도 잠시 기가 막힐 일이 벌어졌다. 풍악을 울리며 유람선이 지나간 자리에 녹조 파도가 밀려왔다. 20~30cm 높이로 밀려드는 파도는 녹색으로 물들어있었다. 파도에 부딪힌 강변은 순식간에 녹색 페인트를 뿌린 듯 덧칠해졌다(관련 기사: 녹조 파도 밀려오는 백마강.. "녹조가 심각하다").
큰사진보기 | |
▲ 충남 부여군 백제대교 인근이 녹조로 물들었다. 이곳은 충남 서북부 7개 시·군 도민들의 식수를 보령댐으로 공급하는 곳이다. | |
ⓒ 김종술 |
충남 서북부 도민들의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강물을 끌어가는 도수로 현장을 찾았다. 이 도수로는 재작년에 만들어졌다. 도수로 현장으로 통하는 자전거도로의 경계 펜스가 빗물에 유실되어 철제 기둥만 공중에 둥둥 떠 있었다. 철제를 떠받들고 있던 바윗덩어리와 흙들은 유실되어 깊은 구덩이가 파였다. 통행을 막는 안전펜스나 보호 장구도 없이 위험에 노출된 상태로 방치 되어있다.
강물은 상류보다 더 짙은 녹색으로 물들고 있다. 강물을 가져가는 취수구부터 상·하류까지 녹조가 가득 찼다. 드론을 띄워 내려다본 강물과 둔치는 경계가 사라지고 차량이 통행하는 백제대교가 없었다면 구분도 어려웠다. 바람을 타고 흐느적거리는 녹조는 미역 줄기처럼 기다랗게 보였다.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금강. 탁월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던 백마강이 죽음의 늪으로 변해가는 것처럼 보였다. 녹조로 뒤덮은 다리 밑에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강물에서 풍겨온 악취에 익숙해 보였다.
큰사진보기 | |
▲ 4대강 사업으로 건설된 충남 부여군 부여대교 인근 선착장이 녹조가 발생하여 곤죽 상태다. | |
ⓒ 김종술 |
4대강 사업과 함께 물고기 떼죽음이 발생하고 매일 같이 죽은 물고기를 옮겼던 부여대교로 이동했다. 최악이라는 말 이외에 달리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녹조로 곤죽처럼 질척였다. 옥상에 칠해놓은 방수 페인트도 이보다 진하지 못할 것이다.
물속 상황을 보기 위해 수중 카메라를 물속에 담갔다. 또한 이 장면을 핸드폰 동영상으로 담았다. 수중카메라를 3cm 정도 내리자 영상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시커멓게 보였다. 카메라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녹조는 떨어지지도 않았다.
정부의 현실적인 녹조 저감은 없다
큰사진보기 | |
▲ 백제보 하류에 녹조가 발생하여 자갈과 바위 등이 녹색 페인트를 칠한 듯 물들어 있다. | |
ⓒ 김종술 |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지난해 4대강 수질 개선을 위한 수문개방 지시가 내려졌다. 그러나 환경부는 농민들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개방하지 않고 있다. 수문이 열린 곳과 닫힌 곳의 차이가 확연한데도 개방을 늦추고 있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치달을 동안 정부는 수질 개선을 위해 어떤 저감 대책을 세우고 있는지 3일 오후 환경부에 물어봤다.
"오염원 단속하고, 모니터링 강화하고 있고, 대청호 녹조도 저감을 위해 차질 없이 (처치)하고 있다. 지금 기상 폭염이 지속되고 있어서 수온이 높아지고 녹조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가축분뇨 시설이나 오폐수처리장 단속, 비점오염원 저감 등 녹조 저감을 위한 대책을 세우고 있다. 드론으로 항공 감시와 환경 지킴이들이 현장 순찰 등 하천 수계는 전반적으로 저감 대책을 세우고 있다. 저감 효과가 바로 나오는 것은 아니고 시간이 걸리지만, 계속하고 있다."
그러면서 담당자는 "4대강 자연성 조사평가단이 출범하고 보 관련 부분을 올해 말까지 검토하니까, 그런 부분은 그쪽에서 해야 한다. 지금 상태에서 보 개방 등 특단에 조치는 안 맞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수문개방 여부에 따라 수질이 극과 극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수문 개방은 늦어지는 상태에서, 수질 개선에 대한 뚜렷한 해답은 없었다. 단속과 감시, 모니터링으로 4대강 사업 이후 창궐하고 있는 녹조를 줄이지는 못한다.
큰사진보기 | |
▲ 하류보다 비교적 녹조가 옅은 충남 공주시 탄천면 강물에 손을 담갔다. | |
ⓒ 김종술 |
이경호 처장은 "공주보와 세종보는 수문을 개방하는 것만으로도 녹조가 사라졌다. 육안으로도 확연한 차이를 입증하고 있다. 그렇다면 백제보의 수질 개선 및 녹조를 없애기 위해서는 수문개방만이 답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무더위도 긴급 재난에 들어가는데, 녹조도 재난이다. 재난에 대비해서 긴급하게 수문을 열어야 할 상황으로 입증되었는데, 현장은 녹조가 곤죽이다. 폭염이 계속된다고 하는데, 백제보 수문을 열어 보지도 않고 연말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농민들 핑계는 이제 그만 끝내고 백제보와 금강하굿둑의 수문은 지금 당장 열어야만 사람이 살아가는 생명의 강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녹조 속 남조류에는 시안박테리아로도 불리는 미세한 단세포생물이 들어있다. 이는 마이크로시스틴(Microcystis aeruginosa)과 맹독을 분비한다. 간에 치명적인 독성물질이 포함돼 있다. 일본 등에서는 남조류 강물로 농사를 지은 후 벼와 채소 등 농작물에서 독극물이 검출되었다는 사례가 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란 말이 있다. 결국 일이 터지고 나서야 상황을 수습하기엔 사회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정부는 빠른 판단을 내리고, 수문개방을 해야 하지 않을까.
큰사진보기 | |
▲ 백제 의자왕이 당나라 소정방에게 끌려가면서 잠시 쉬었다는 충남 부여군 왕진나루터. | |
ⓒ 김종술 |
큰사진보기 | |
▲ 충남 부여군 백제대교 인근이 녹조로 물들었다. 이곳은 충남 서북부 7개 시·군 도민들의 식수를 보령댐으로 공급하는 곳이다. | |
ⓒ 김종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