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꾼이 바보냐. 세제 특혜 주는데 보유주택 내놓게"
[기고] "다주택자 매물 안나오면 거품 쉽게 안꺼져"
서울집값을 폭등시킨 것이 투기수요였음은 경제전문가가 아니라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대출을 과다하게 받거나 전세를 끼고 주택에 투자하는 것이 흔한 이야기가 되었다. 보통사람들마저 망설임 없이 남의 돈에 의존하여 주택투자에 가세하는 것을 보면서 ‘주택투기가 열병처럼 번지는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을 것이다.
지난 수년간 서울집값이 폭등한 현상이 투기에 의한 것인지 아닌지를 규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투기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므로, 정부가 투기를 잡기 위해 부작용이 따르더라도 과감한 정책을 실행할 명분이 생긴다.
투기가 횡행하는 경제가 잘 돌아갈 수 있을까?
자산가격이 급등하여 큰 수익이 발생하는 것은 정상적인 투자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돈이 자산시장으로만 몰림으로써 실물경제가 활력을 잃게 되며, 더 중요하게는 기업가의 사업 의욕이 감퇴하고, 노동자는 일할 의욕이 줄어든다.
하물며 투기에 의해 자산가격이 급등하는 경우라면 문제는 아주 심각해진다. 문재인정부 들어서만 서울 아파트가격이 한국감정원의 ‘주택매매가격 동향’ 기준으로 평균 1억5천만원이 올랐다. 최경환이 “빚내서 집사라”정책을 실행한 2014년 8월 이후로는 2억3천만원이나 올랐다.
서울에서 아파트 한 채만 투자했어도 봉급생활자가 평생 벌어도 모으기 힘든 돈을 벌었다. 주택을 여러 채 투자한 사람이라면 웬만한 사업에서 버는 돈보다 더 큰 투기이익을 챙겼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든 기업인이든 일할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투기가 횡행하는데 경제가 잘 돌아간다면 그것이 더 이상할 것이다.
그뿐 아니다. 투기거품은 언젠가는 붕괴하기 마련인데, 그럴 경우 경제에 심대한 타격을 입힌다. 2008년 가을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세계를 덮친 ‘서브프라임 사태’가 살아있는 교훈 아닌가.
백해무익할뿐더러 위험천만한 투기를 뿌리 뽑는 것은 국가의 막중한 책임이다. 투기의 가능성이 보이는 순간 선제적으로 그 불씨를 꺼야 하고, 만약 투기가 발생하면 즉각 과감한 정책으로 투기의 불길을 꺼야 한다.
과연 지난 3년여 서울집값의 폭등은 투기에 의한 것이었을까?
이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것은 결코 시간낭비가 아닐 것이다.
서울집값을 폭등시킨 것은 ‘투기수요’다
지난 16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주택소유통계’는 서울집값 폭등이 투자 혹은 투기수요 때문이라는 사실을 한번 더 확인시켜줬다. 서울에서 자기집을 소유한 가구의 비율이 2015년 49.6%에서 2017년에는 49.2%로 낮아졌다. 그 2년간 서울에서 주택이 신규로 공급되었는데도 자가소유 비율이 줄어든 것은, 다주택자들의 주택투자 혹은 투기가 성행했기 때문이다.
실수요와 가수요(혹은 투자수요)가 공존하는 매매시장과 달리, 전세시장은 실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시장이다. 그러므로 가수요를 뺀 실수요만 존재할 경우 주택가격이 어떻게 움직일까, 궁금하다면 전세시장을 보아야 한다.
그 전세시장이 최근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방은 물론 수도권의 전세가격도 하락세로 돌아선 지 오래인데, 최근에는 서울의 전세가격도 하락세가 완연하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해서 전세가격 하락금액만큼을 임차인에게 월세로 지급하는 “역월세”라는 웃지 못할 현상마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실수요가 공급을 따라잡지 못하는데도 그 동안 집값이 폭등한 것은, 투자 혹은 투기수요가 극성을 부렸기 때문이다.
투자와 투기를 가르는 가장 큰 잣대는 위험이다. 투기란 고수익을 노리고 손실위험을 감수하는 무모한 투자행위다. 대출을 과다하게 받아서 주택에 투자하는 것이나 전세를 끼고 주택을 매입하는 소위 “갭 투자”가 주택투기의 전형적인 형태다.
그러므로 지난 3년여 서울집값 폭등이 투기수요에 의한 것이었는지를 판별하는 가장 유용한 잣대는, 대출이 얼마나 증가했는지를 보는 것이다.
지난 글에서 밝혔듯이 최경환 이후 가계대출은 이전보다 두배 이상, 때로는 세배가 급증했다. 금리를 사상최저로 낮추고 은행이 적극적으로 대출을 공급하자 수많은 사람이 주택투기로 몰려들었고, 투기수요에 힘입어 서울집값이 폭등한 것이다.
‘투기의 종말’을 바라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다
문재인정부는 주택투기를 즉각 잠재울 것이라고 대다수 국민이 예상했었다. 그럼으로써 집없는 서민과 청년들의 고통도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런 정책을 실행하지 않았다.
일부 전문가와 언론은 서울집값 폭등이 시장의 힘에 의한 것이므로 정부 정책으로 그것을 억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식으로 여론을 호도한다. 투기를 조장하거나 방치한 책임이 있는 정책 책임자와 집권세력도 은근슬쩍 그런 주장에 동조하는 기미도 보인다.
그러나 박근혜 말기 주택투기에 불을 당긴 것이 최경환의 “빚내서 집사라” 정책이었음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이명박과 박근혜정부가 오랜 기간 추진해온 인위적인 부양책들이 그 정책을 계기로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그러므로 투기를 부추긴 정책들을 문재인정부가 바로잡았다면 주택투기의 불길은 사그라들었을 것이다.
투기를 멈추기 위해서는 투기수요를 잠재워야 한다. 투기수요는 고수익을 얻을 거라는 예상이 있기에 생겨난다. 투기수익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투기비용이다. 그러므로 투기에 따르는 비용이 높아지면 투기수요는 줄어든다. 투기비용이 크게 증가하면 이미 투기에 뛰어든 투기꾼들도 보유한 주택을 매물로 내놓는다.
투기꾼들이 금리인상에 매우 민감한 것은, 그것이 투기비용을 높이기 때문이다. 문재인정부가 출범 초기에 금리를 인상하고, 상당기간 금리인상을 지속하겠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냈다면 투기수요는 크게 줄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이 투기의 불길을 키웠다
또 다른 투기비용이 있다. 주택보유에 대해 과세하는 종합부동산세와 보유기간 동안 발생하는 임대소득에 과세하는 임대소득세, 그리고 투기의 목적인 시세차익에 대한 세금인 양도소득세가 그 비용들이다.
노골적으로 주택투기를 권장했던 이명박과 박근혜정부는 다주택자들에게 종부세와 임대소득세 그리고 양도소득세를 피하는 길을 마련해주었다. ‘주택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혜택’이 그것이다.
문재인정부가 투기를 잠재우려 했다면 가장 먼저 주택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혜택을 폐지하거나 최소한 대폭 축소했어야 한다. 주택보유에 따른 비용이 커지고 투기에서 생기는 세후수익이 줄어들면, 투기수요는 크게 감소했을 것이다. 더 중요하게는 투기꾼들이 보유한 주택을 매물로 내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작년 12월13일 발표한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은 외려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혜택을 더 늘렸다. ‘주택투기의 종말’을 바라는 국민의 기대를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다.
집없는 서민들과 청년들이 절망에 빠진 것과 대조적으로 투기꾼들이 환호성을 질렀음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미 불붙은 투기의 불길에 휘발유를 부었다는 표현이 이 상황에 딱 들어맞는 표현일 것이다.
혹시 ‘9.13 부동산대책’에서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혜택을 축소하지 않았느냐며 반박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내용을 알고 있다면 결코 그런 주장을 하지 못할 것이다.
몇 가지 세제혜택을 줄이긴 했으나, 그것마저도 9.13 이후 새로 주택을 매입하여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는 사람에게만 적용한다. 9월말 현재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37만1천명이 소유한 127만3천채의 주택은 모든 세제혜택을 오롯이 누리게 했다. 추가로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더라도 기존에 매입한 주택들에는 그 많은 세제혜택이 적용된다.
남보다 한발 앞서 투기에 뛰어든 투기꾼들에게 기득권을 인정해주었으니,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어느 투기꾼이 주택을 매물로 내놓을까? 다주택자의 매물이 나오지 않으면 투기의 거품은 쉽게 꺼지지 않는다. 집없는 서민과 청년들의 고통도 오래 지속될 것이다.
국정을 좌지우지할 권력을 손에 쥔 인사들이 서민들에게 극심한 고통을 안기고 국가경제를 파탄에 빠뜨린 주택투기를 조장한 책임을 어찌 감당하려나!
송기균 송기균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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