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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 치다 ‘유신 계엄’ 위반 처벌…대법 “무효” 첫 판단

道雨 2018. 12. 22. 10:37




화투 치다 ‘유신 계엄’ 위반 처벌…대법 “무효” 첫 판단

 




‘집회금지 계엄 위반 징역형’ 재심사건
“국민기본권 침해한 위헌·위법으로 애초 무효”
“당시 계엄포고 유신 저항 봉쇄용
계엄법상 ‘군사상 필요한 때’ 아냐”


대법원 전경. 한겨레 자료사진
대법원 전경. 한겨레 자료사진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체제 선포 당시 전국에 내려진 비상계엄령에 따른 계엄 포고는 위헌·위법한 것이어서 무효라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계엄 포고를 위반해 불법집회를 한 혐의와 피해자를 협박한 혐의로 군법회의에 넘겨져 징역 8개월이 확정된 허아무개(76)씨의 재심 상고심에서, 계엄법 위반에는 무죄를, 협박 혐의에 대해선 선고유예를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1일 밝혔다.

대법원은 “1972년 10월 17일 비상계엄령 선포와 함께 공포된 계엄 포고는, 헌법과 법률에서 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발령됐다. 그 내용도 영장주의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며, 표현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 대학의 자율성 등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이 계엄 포고는 옛 헌법과 현행 헌법, 옛 계엄법에 위배되어 위헌이고 위법한 것이어서 무효”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허씨 재판의 전제가 된 계엄 포고가 무효이므로, 계엄법 위반 공소사실은 ‘범죄로 되지 아니한 때’에 해당해 무죄”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박정희 유신체제를 만들려던 비상계엄령의 성격도 분명히 규정했다. 재판부는 “당시 계엄 포고는 기존의 헌정 질서를 중단시키고 유신체제로 이행하기 위해, 그에 대한 저항을 사전에 봉쇄하기 위한 것이 분명하다. 또 당시 국내외 정치 상황 및 사회상황이 계엄법에서 계엄의 요건으로 정한 ‘군사상 필요한 때’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1972년 10월17일 전국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면서, 같은 날 계엄사령관 명의로 정치적 목적의 집회·시위를 일절 금지하고, 정치활동 목적이 아닌 실내외 집회도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계엄 포고 1호가 발령됐다.
허씨는 그해 11월5일 오후 지인들과 화투를 치다가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기소됐다. ‘불법 집회’를 했다는 이유에서다. 허씨는 1970년 3월 같이 춤을 추던 상대에게 ‘불륜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한 혐의로도 기소됐다.

허씨는 군법회의를 거쳐 1973년 7월 대법원에서 징역 8개월을 확정받았다. 허씨는 2013년 재심을 청구해 2015년 계엄법 위반 혐의에 대해 재심개시 결정을 받았다.

재심을 맡은 창원지법은 허씨의 공소사실 가운데 계엄법 위반에 대해선 ‘헌법에 위반돼 무효인 법령을 적용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협박 혐의는 재심사유로 인정되지 않는다”며 선고유예(범행이 경미해 일정 기간이 지나면 선고를 면해주는 제도) 판결했다. 대법원은 원심의 이런 판단에 잘못이 없다며 그대로 받아들였다.

앞서 지난 달 29일 대법원은 1979년 10월 부산·마산(부마) 민주항쟁 당시 선포된 계엄포고령은 위헌·위법해 무효라는 첫 판단을 내린 바 있다.



여현호 선임기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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