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세번째로 낮은 2.87%↑ 8590원
노사공익 전원 표결 참가는 의미있어
‘을과 을’ 갈등 몰아가는 구조 바꿔야



2020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2.87%(240원) 오른 시간당 8590원으로 결정됐다. ‘속도조절론’을 정부가 공식화하며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낮은 수치다.
지난해 개편된 산입범위와 물가인상률 등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론 마이너스인 이들도 적잖을 것으로 보인다. 경제구조를 바꿀 다른 정책들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으며, 경제난 원인이 최저임금에 오롯이 쏠린 탓이 크다.


12일 새벽 최저임금위원회에서 15 대 11(기권 1)로 결정된 내년도 증가율은, 구제금융과 금융위기 시기에 이어 1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지금이 당시 위기 못지않고, 지난 두해 동안 각각 16.4%·10.9%가 올랐다는 이유를 들어 이조차 과하다는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저임금이 500만 저임금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이 목표인 제도임을 생각하면, ‘가혹하다’는 표현이 결코 과하지 않다.


내년도 월급(209시간)은 179만5310원으로 고작 한달 5만원 남짓 오른 수준이다. 한국은 저임금 노동자의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이자 최저임금에 직접 영향을 받는 노동자 10명 중 8명이 가구의 핵심 소득원일 정도로 가구소득에 미치는 영향이 높다. 특히 올해부터 산입된 정기상여금, 복리후생비의 비율이 내년엔 더 확대된다. 여전히 수당 위주의 기형적 임금체계가 많고, 회사 쪽과 교섭할 노조도 없는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에게 타격은 더 직접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중소업체나 영세상공인들 또한 한계상황이란 현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실제 회의 과정을 보면, 사용자와 노동자의 마지막 안이 300원 정도 차에 불과할 정도로 ‘속도조절’의 불가피성엔 공감대가 있었다. 특히 노동계를 대표하는 근로자위원 9명이 한국노총, 비정규직, 민주노총 등으로 갈리지 않고 막판에 8880원이란 단일안을 내놓은 건 쉽잖은 결정이었다.

1988년 최저임금 제도가 도입된 이래, 노사 어느 한쪽이 불참한 채 표결이 강행된 게 17번이나 됐던 데 비하면, 노·사·공익위원 모두가 표결에 참여한 것 또한 의미가 있다.

사실 근로자위원들의 ‘6%대 인상안’은 문재인 정부의 임기, 그리고 대선 당시 자유한국당의 공약이었던 2022년 1만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데도 자유한국당이 “충격파, 폭탄” 같은 말을 동원하며 동결을 위한 재심의를 주장하는 뻔뻔함엔 말문이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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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과 을의 대립’을 완화할 구조 변화가 없는 한, 최저임금이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질 수밖에 없다. 현실에 분명 존재하는 대립을 일부 영세상공인이나 노동자들의 자발적 노력으로만 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원하청 불공정 거래, 골목상권 파괴, 프랜차이즈 본점 갑질, 과도한 임대료 등, 구조적 개혁에 정부가 나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저임금 준수율을 높이는 한편, 노동자들이 교섭력을 갖출 노조 설립을 자유롭게 하는 등, 당장의 노력도 필요하다.
이번 결정을 두고 일부에선 정부가 대기업 위주 정책으로 유턴하는 확실한 신호로 바라보지만, ‘노동 존중과 양극화 해소’는 촛불정부의 사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2019. 7. 13  한겨레 사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