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이재명은 하는데, 문재인은 못할까

道雨 2020. 8. 12. 10:50

이재명은 하는데, 문재인은 못할까

 

세제 개혁을 통한 불로소득 환수, 대출규제 등 과열 방지, 실수요자 공급 확대, 임차인 권리 강화.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청와대 회의에서 밝힌 부동산정책의 4대 방향이다. 주택시장이 안정되고 있다는 말은 성급했지만, 정책 방향은 틀리지 않다.

정책의 성패에는 방향뿐만 아니라 타이밍도 중요하다. 정부가 집값이 폭등한 뒤 세금을 크게 올리다보니, 모두 ‘패배자’가 되는 낭패스런 상황이다. 지지율이 급락한 대통령, 내집 마련 꿈이 더 멀어진 무주택 서민, 빚까지 내어 ‘패닉 바잉’에 합류한 20·30 세대들, “실수요자에게 세금폭탄이 웬 말이냐”고 불만인 1주택자까지.

 

문재인 정부가 출범과 동시에 부동산 세제 강화와 공급 확대 대책을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주택시장 정상화 로드맵’을 내놨다면 어땠을까. 집값 상승도 막고, 세금 인상의 충격도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시지탄이다.

정부는 보유세 인상과 대출규제 강화를 약속했지만, 소극적 자세로 시간만 허비하다가 위기를 자초했다. 2018년 초 정부 고위 인사에게 이유를 물어봤다. 그는 “집값 안정을 위해 세금을 동원하는 것은 위험하다. 집값이 불안해지면 즉각 잡을 수 있는 정책을 다 준비해 놓았다”고 자신했다. 그 직후 집값이 급등했다.

혹자는 문재인 정부의 소극적 태도를 참여정부 때의 ‘종부세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그럴수록 치밀한 사전 준비로 성공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정부가 8·4 공급확대 대책을 내놓았지만, 근본적으로 주택 공급 방식의 획기적 전환이 필요하다. 그래야 투기판으로 전락한 부동산시장 판도를 뒤집을 수 있다. 목표는 무주택 실수요자의 주거 보장과 시장 안정이다.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집을 제공해야 한다.

또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공포 때문에 불나방처럼 집 사재기에 뛰어드는 비극도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결국 공공주택이 핵심 역할을 해야 한다.

 

싱가포르는 좋은 예다. 공공주택이 전체 주택의 80%를 넘는다. 정부가 국유지에 집을 지어 민간주택의 절반 가격에 제공한다. 중산층용이 87%에 달할 정도로 품질도 우수하다. 5년의 의무거주기간에는 미리 정해진 가격으로 정부에만 집을 팔 수 있어, 투기가 불가능하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기본주택’ 정책을 내놓았다. 무주택자라면 누구나 입주해 30년 이상 거주할 수 있고 중산층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장기 공공임대주택이다. 기존 공공임대주택이 저소득층을 위한 10평 이하의 소형인 것에 비춰보면, 발상의 대전환이다. 문 대통령도 “공공임대주택을 중산층을 포함해 질좋은 ‘평생주택’으로 확장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재명 지사는 “훌륭한 정책”이라며 응원에 나섰다.

 

장기공공임대주택이 전체 주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1%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2025년 10%”를 목표로 제시했다. 싱가포르는 차치하더라도 선진국의 20~30%에 비하면, 너무 소극적이다. 기본주택과 평생주택이 성공하려면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꿔야 한다. 규모와 품질을 다양화해, ‘공공임대주택=질 낮은 주택‘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깨야 한다. 공급 대상도 무주택 중산층까지 넓혀야 한다.

집값 상승에 대한 맹신은 결정적 장애다. 지난 3년간 서울 아파트의 평균 상승률은 50%를 넘는다. 주택 보유자가 가만히 앉아서 수억원의 이득을 얻는 현실이 바뀌지 않으면, “국회의원은 강남에 사는데, 난 내집에서 살 기회조차 없다”는 반발이 사라질 수 없다.

서울에는 공공주택 공급을 위한 땅이 부족하다는 주장도 타성이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강남의 그린벨트를 풀라”는 파격적 제안을 한다.

3기 새도시 5곳의 평균 공급 규모는 3만6천가구다. 서울의 연간 아파트 공급 규모와 비슷하다. 새도시를 100% 양질의 공공임대주택으로만 구성해서, 매년 1곳씩 5년 연속 공급하면 어떤가?

대통령은 부동산시장을 잡기 위한 감독기구 설치를 제시했다. 필요하다면 부동산정책 책임자를 부총리급으로 격상할 수 있다. 국민의 분노를 산 청와대 참모진만 문책할 게 아니라, 3년간 23번이나 대책을 내놓은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도 물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대통령이 정권의 명운을 걸고 전쟁에 나서야 한다. 부동산정책이 실패한다면 2년 뒤 대선도 장담할 수 없다.

이재명 지사는 과천시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과천청사 부지에 장기공공임대주택을 짓겠다고 공언했다. 경기도가 하는데, 정부가 못할까?

 

곽정수ㅣ논설위원

jskwak@hani.co.kr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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