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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이 남아돌아도 품절되는 이유

道雨 2021. 4. 27. 09:30

백신이 남아돌아도 품절되는 이유

 

 

 

 

얼마 전 전직 국가 정상과 노벨상 수상자 175명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앞으로 공개편지를 보냈다. 모든 대륙을 망라하는 이 인사들은, 코로나19 백신 특허권을 한시적으로 중단하라고 바이든 대통령에게 요구했다.

‘백신 양극화’가 코로나19 못지않은 대재앙이 될 거라는 경고는 보편적인 인류애 위에 서 있다. 다시 그 위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의 날카로운 경제학 이론이 얹혔다.

 

스티글리츠는 특허권을 비롯한 지적재산권의 경제적 효과를 비판적으로 고찰해왔다. 지적재산권은 정부가 혁신자에게 독점적 이득을 취할 권리를 일정 기간 보장하는 제도다. ‘반독점’의 일반원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누구든 적절한 동기가 있어야 혁신에 뛰어들고, 이에 따른 혜택을 다 함께 누릴 수 있다는 논리 덕분이다. 그러나 이 논리는 경험적으로 입증된 바 없다. 반증 사례는 차고 넘친다.(<경제 규칙 다시 쓰기>)

 

“강력한 지적재산권은 추가적인 혁신에 아주 중요한 ‘지식의 확산’을 제한하기 때문에, 예상과는 딴판으로 경제에서 일어나는 혁신을 실제로 방해할 수 있다.”

스티글리츠는 지적재산권이 외려 혁신을 위한 후속 연구를 방해해왔음을 체계적으로 논증한다. 의약품은 ‘특허의 실패’를 대표한다. 특허권에 막혀 동일한 효능의 약품을 개발하느라 중복 연구에 천문학적 비용이 투입되고, 비윤리적 임상실험도 양산되고 있다.

 

의약품 특허권의 독점에 대항하는 유일한 제도가 ‘강제 실시권’이다. 전시나 팬데믹 같은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특허권을 중단하고 복제약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다. 놀랍게도 특허 제도 바깥이 아닌 내부의 제도다. 세계무역기구(WTO)의 ‘무역 관련 지적재산권 제도’(TRIPs)에 들어 있고,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특허법에도 들어 있다. 마치 코로나19를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그러나 강제실시권은 패권주의와 이윤 앞에서 종이호랑이다. 미국은 6월이면 3억5천만명분의 백신이 남게 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도 모자란다”고 엄살을 부리며 ‘백신 줄세우기 외교’에 여념이 없다.

백신 유통기한이 임박해도 ‘떨이’는 없을 것이다. 미국계 초국적 식량기업들이 가격 유지를 위해 남는 식량을 기아 구제에 쓰지 않고 버리는 것처럼.

 

 

안영춘 논설위원 jona@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92613.html#csidxd4f498bb2453861bd9fd23c050d7ea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