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재산·소득 비례 벌금제’ 도입 늦출 이유 없다

道雨 2021. 4. 27. 09:38

‘재산·소득 비례 벌금제’ 도입 늦출 이유 없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법의 날인 25일 ‘벌금을 재산·소득에 비례해 부과하자’고 제안했다. 이 지사는 “벌금형은 개인의 형편과 상관없이 획일적으로 부과하는데, 같은 죄를 지어 벌금형에 처해도 부자는 부담이 크지 않아 형벌의 효과가 떨어지고 빈자에게는 더 가혹할 수밖에 없다”며 “핀란드는 100년 전인 1921년, 비교적 늦었다는 독일도 1975년에 이 제도를 도입했다”고 소개했다. 어제오늘 제기된 문제는 아니지만 이참에 적극적인 공론화가 이뤄져야 할 문제다.

 

같은 죄를 범한 대가로 같은 처벌을 받아도 누구에게는 ‘솜방망이’, 또 다른 누구에게는 ‘가혹한 채찍’이 되는 건 분명 모순이다. 빈곤·저소득층의 경우 벌금을 감당할 여력이 없어 벌금 납부 대신 노역장에서 일하는 ‘환형유치’를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하는 일까지 빈번하다. 반면 같은 액수의 벌금이 자산가나 고소득자에게는 ‘푼돈’일 수 있다. 죄에 대한 처벌의 형평성과 범죄 억지력이 경제적 조건에 따라 전혀 다르게 작동하는 셈이다.

 

이런 폐단에 대한 해결책으로 시민단체들이 오래전부터 주장해온 게 ‘일수 벌금제’다. 벌금을 특정 액수가 아니라 ‘날수’로 선고하고, 이 날수에 피고인의 하루치 일당에 해당하는 금액을 곱해 총액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실제 소득과 재산을 고려해 하루치 일당을 산출하면 경제적으로 평등한 형벌이 된다.

 

이 같은 새로운 벌금제도를 이 지사가 ‘재산 비례 벌금제’라고 표현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재산이 아닌 소득을 기준으로 벌금액을 정해야 한다며 “재산이 많은 사람을 벌하고 싶으면 그에 맞는 근거와 논리를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지사의 제안이 재산과 소득을 포함한 경제력에 비례해 벌금을 정하자는 취지인 만큼 지엽적인 문제로 보인다. 윤 의원도 핀란드에서 2015년 과속으로 적발된 기업인에게 우리 돈 약 70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된 사례를 소개하며 소득에 비례한 벌금제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경제력에 연동하는 벌금제 도입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기도 했으나 제도화에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70% 이상의 시민들이 이 같은 벌금제에 찬성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는 만큼 도입을 지체할 이유가 없다. 아울러 벌금을 내지 못하는 이들에게 사실상 징역형인 강제노역 대신 사회봉사 등 다른 형태로 교정의 기회를 주는 방안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 2021. 4. 27  한겨레 사설 ]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992680.html#csidx196cd60e203a87586eba9e04d12bd8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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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이 화두로 꺼낸 ‘재산비례 벌금제’의 장점과 단점

 

일수벌금제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

 

 

 

지난 4월 25일 이재명 경기지사는 페이스북에 재산에 비례해 벌금 액수를 차등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이 지사가 재산과 소득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지사는 윤 의원의 비판에 대해 “제1야당 경제혁신위원장으로서 국민을 대표하는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라면 최소한의 양식은 갖추셔야 하고, 특히 경기도민의 공적 대표자를 거짓말쟁이나 무식쟁이로 비난하려면 어느 정도의 엉터리 논거라도 갖춰야 마땅하다”면서 “결국 재산비례 벌금제의 의미와 글 내용을 제대로 파악 못한 것이 분명하니, 비난에 앞서 국어독해력부터 갖추시길 권한다”고 일침을 가했습니다.

두 정치인의 설전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재산비례 벌금제’라는 말이 화제가 됐습니다. 벌금을 재산과 소득에 따라 다르게 부과한다는 제도 같은데,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연 어떤 제도인지,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일수벌금제의 장점 : 형벌 효과의 불평등 해소

“재산비례 벌금제”를 학계나 법조계 등에서는 ‘일수벌금제'라고 부릅니다. 범죄에 따른 처벌 규정의 하나입니다. 이 제도를 한국과 핀란드의 사례를 통해 비교해보겠습니다.

2017년 정일선 현대BNG스틸 사장은 운전기사들을 주 80시간 넘게 일을 시키고 폭행한 사실이 드러나,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습니다.

핀란드의 판리틸라그룹 야리바르 회장은 규정속도를 1Km 초과해 벌금 112,000유로 한화로 약 2억원의 벌금을 냈습니다.

범죄 혐의로 보면 정일선 사장이 훨씬 더 많은 벌금을 내야 했지만, 오히려 과속을 한 핀란드 회장에게 엄청난 액수의 벌금이 부과됐습니다. 이유는 ‘일수 벌금제’ 때문입니다.

‘일수벌금제’는 가해자의 재산과 소득에 따라 벌금액을 다르게 부과하는 제도입니다. 만약 야리바르 회장이 평범한 직장인이었다면 2억원의 벌금이 부과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한국은 총액벌금형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벌금의 총액이 정해지면 모든 피고인에게 동일하게 부과하는 방식입니다.

‘일수벌금제’는 범죄에 따른 벌금을 금액이 아닌 일수로 정하고, 1일에 해당하는 벌금액은 재산이나 소득에 따라 결정합니다.

똑같은 범죄 혐의에 10일 벌금형이 나왔다면, 실업자는 1일 벌금을 5만원씩 계산해서 50만원을 내야 합니다. 그러나 재산이 100억이 넘고 급여 등 소득이 많다면 1일 벌금을 100만원으로 총 1000만원이 되는 방식입니다.

‘동일 범죄 동일 형량’에 따라 1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될 경우, 많은 재산과 높은 소득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처벌 효과가 없지만, 가난한 사람에게는 엄청난 징벌이 됩니다.

‘일수벌금제’는 형벌 효과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재산과 소득에 따라 벌금을 다르게 적용하는 방식으로, 1921년부터 핀란드를 비롯해 스웨덴(1931년), 덴마크(1939년), 독일(1971년), 오스트리아(1975년), 프랑스(1983년), 스위스(2007년) 등의 국가들이 택하고 있습니다.


일수벌금제의 단점 : 재산 은닉과 허위 신고로 발생하는 조사의 어려움

‘일수벌금제’의 가장 큰 단점은, 벌금 부과의 전제 조건인 재산과 소득의 정확한 조사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입니다.

공직자의 경우 매년 재산신고도 하고, 근로소득세를 납부하는 직장인은 급여 소득이 투명해 그나마 낫습니다. 그러나 소득 자료가 부정확한 자영업자나 재산을 차명으로 돌린 범죄자의 경우는 재산과 소득을 정확히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은 범죄자가 아니더라도 세금을 내기 싫어 위장 이혼을 하거나 재산을 은닉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특히 외형적으로 재산이 없어도 회사의 자금과 재산을 활용해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재벌들도 많습니다.

국세청의 자료가 정확하고, 법원과 데이터 연동이 될 경우 벌금 부과도 빠르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세청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누락된 재산이 있다면, 벌금 부과를 위해 별도로 조사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외에도 ‘동일한 범죄 행위에 서로 다른 형벌을 내리는 자체가 차별’이라는 주장이나 ‘판사가 자의적으로 해석해 개입할 가능성’, ‘범죄가 아닌 자신의 노력을 통해 축적한 부에 대한 희생적 평등을 요구하는 자체가 헌법의 평등주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점도 단점으로 꼽힙니다.

일수벌금제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

2010년 대주그룹 허재호 전 회장은 일당 5억 원의 노역형이 집행됐습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은 1일 1억 1천만원, 시도상선 권혁 회장은 일당 3억원, 손길승 SK 회장은 일당 1억원이었습니다.

원래 벌금을 내지 못할 경우 노역으로 대체합니다. 문제는 일반인은 일당 5만원이지만 재벌이나 권력자들은 일당으로 억이 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부자에게만 과도하게 벌금을 부과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노역의 경우 특혜를 베푸는 불합리한 모습이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법학자와 시민단체, 일부 정치인들은 경제적으로 강자에게 유리한 현재의 ‘총액벌금형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일수벌금형’ 제도를 도입하거나 검토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습니다.

<국회입법 조사처>의 ‘벌금형제도 개선을 위한 입법과제’ 보고서를 보면, 재산과 소득정보 조사가 어렵다고 포기하기보다는, 보호관찰관들을 통해 파악하거나, 현행 조세부과체계처럼 나이나 학력, 직업군, 과세 증명자료 등을 종합해, 일수벌금액 산정 기준표 또는 일수벌금액 구간표 등을 마련해 부과하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지난해 서울신문이 조사한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 10명 중 6명은 재산·소득에 비례해 벌금을 차등 부과하는 ‘일수벌금제’를 찬성했습니다.

‘일수벌금제’에 찬성하는 이유로는 ‘부자에게는 더 많은 벌금을 부과해야 실질적 징벌 효과를 가질 수 있다’는 의견이 58.8%로 가장 많았습니다. 뒤를 이어 ‘유전무죄 무전유죄 사회 분위기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답변이 25.8%로 나타났습니다.

지금 국민들은 ‘공정’을 시대적 화두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공정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소인 사법권력 유착을 해소하고 사법 불신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양형기준이 필요합니다. ‘일수벌금제’는 현재의 불합리한 사회 시스템을 개혁하는 작은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국세청이 적발한 고액의 부동산 양도대금을 비트코인으로 은닉한 경우 ⓒ국세청

 

▲2010년 대주그룹 허재호 전 회장은 벌금 미납을 일당 5억원의 노역형으로 대체됐다. ⓒYTN 유튜브 캡처

 

[ 임병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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