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북핵에 대한 잘못된 전제, 위험한 발상

道雨 2021. 5. 17. 10:53

북핵에 대한 잘못된 전제, 위험한 발상

 

4월30일 바이든 행정부는 취임 100일에 즈음해 검토를 마친 대북정책의 기본 윤곽을 밝힌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타협도,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도 아닌 조율된, 실용적인, 단계적 접근법이 그 골자다. 동맹과 억제, 제재와 압박, 외교적 협상이라는 세가지 선택지에서 외교에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이야기다. 한국 정부로서는 반가운 일이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미국 랜드연구소와 아산정책연구원이 최근 공동으로 발표한 ‘북핵 위협,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보고서는 외교를 통한 북한의 비핵화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전제하고, 그 이유를 북한의 핵보유 동기에서 찾는다. 북한의 핵은 정권안보, 남한 적화통일, 지역 내 강국 부상이라는 현상변경을 목표로 하므로 외교적 해법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더불어 보고서는 현재 북한의 핵무기를 67~116개로 추정하고, 2027년께에는 151~242개의 핵무기, 수십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보고서가 파악하고 있는 북한의 핵전략은 이른바 ‘7일 전쟁’ 작전계획에 따른 것이다. 우선 남한에 선제적 전술핵 타격을 가하고 전면전쟁과 후방지역 특수전 병력 투입으로, 남한 전체를 7일 만에 점령하려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미연합 쪽의 재래식 전력만으로는 이를 억제하기 어렵고, 한·미 양국 역시 핵전쟁에 대비한 핵기획그룹을 가동하고, 8~10개의 B61-12 전술핵(벙커버스터)과 4대의 핵 투하용 전투기를 한국에 배치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핵에는 핵’이라는 논리다.

 

유감스럽게도 보고서의 곳곳에는 문제점이 숨어 있다. 보고서는 앞서 본 북쪽의 핵보유 동기를 분석하면서 김정일 위원장의 44개 유훈을 인용하고 있지만, 이 유서는 2013년 공개 당시부터 위작으로 간주되어, 이를 다뤘던 일부 언론매체마저 관련 기사를 철회했다.

그러면서도 보고서는 그와는 결이 다른 북한 지도자의 직접 발언이나 한국 정부의 분석에는 전혀 주목하지 않는다. 2018년 9월 김정은 위원장의 “우리는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땅을 만들어나가기로 확약했다”는 발언이나, 판문점, 싱가포르, 평양 선언의 비핵화 합의에 대해선 전혀 언급이 없다. 북은 ‘조건만 맞으면 비핵화할 수 있다’는 입장을 줄곧 밝혀왔다. 외교의 여지가 있다는 이야기다.

 

북이 한반도에서의 현상변경을 위해 핵보유를 추진하고 있다는 보고서의 주장 또한 이해되지 않는다. 북은 미 본토에 대한 최소억제(ICBM, SLBM 이용)와 전술적 거부 억제(전술핵을 통한 미 증원군 거부) 역량을 동시에 추구해오고 있다. 따라서 이를 현상변경을 위한 강압전략으로 보기 힘들다.

더구나 북은 한·미 재래식 전력에 대한 열세를 극복하고 군의 제도적 이익을 만족시키는 동시에, 핵 강국이라는 국제정치적 이미지 고양을 통해 김정은의 대내 정통성을 키우기 위한 국내정치적 고려도 작용했을 것으로 본다.

대미협상용 카드로 핵무장을 이용하고자 했을 수도 있다. 선전선동용 문구를 핵무장의 진짜 동기로 환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보고서가 내놓은 북한의 현재와 미래의 핵능력 평가 또한 문제시된다. 영변 핵시설을 4차례 방문하고 고농축 우라늄 시설을 최초로 접했던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랜드·아산 보고서의 추정치가 지나치게 과장되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북한의 현재 핵무기 보유량은 45개 정도가 가장 현실적이고, 2027년에는 70개 정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랜드·아산 쪽의 과도한 북한 핵능력 평가는 북의 오판과 군사모험주의를 부추기고, 북한과의 협상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과연 시대착오적 ‘7일 전쟁 작계’가 현실성이 있을까. 북쪽이 핵 선제타격을 가하고, 전면전과 특수전 부대 후방투입을 통해 남한을 점령하는 동안, 한미연합 전력은 장식품처럼 무기력하게 서 있지는 않을 것이다.

B61-12 전술핵 한반도 배치가 북한의 핵 사용을 억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선제사용을 유인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도 간과하고 있다. 특히 현재의 한-미 동맹이나 미국의 압도적 핵전력을 기반으로 하는 확장억제전략에 대한 신뢰성 문제 제기가 한반도의 전략적 안정을 크게 해칠 수 있다는 점도 놓치고 있다.

 

랜드·아산 보고서는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한 경각심을 상기시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한국에 전술핵 재배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북의 핵무장 동기를 왜곡하고, 핵능력을 과대포장하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준다.

잘못된 전제에 기초한 위험한 발상은 우리의 안보를 지켜주기보다는 더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문정인세종연구소 이사장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995443.html#csidx7065c20224217b4bf3ad99f5821096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