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용공(조작) 사건

'북침설' 수업 누명 강성호 교사, 32년 만에 '빨갱이' 낙인 지워내다

道雨 2021. 9. 2. 16:15

'북침설' 수업 누명 강성호 교사, 32년 만에 '빨갱이' 낙인 지워내다

 

법원 강 교사 관련 보안법 재심서 '전부 무죄' 선고
검찰·경찰 제시 증언 등 증거 능력 없어
일부 학생 '북침설 수업' 과장 또는 신빙성 없어
강 교사 "기쁘고 서글프다. 검찰개혁, 보안법 폐지해야"
강 교시 1989년 5월 교실서 연행, 보안법 유죄

 

* 32년 만에 국가보안법 위반죄 재심에 나선 강성호 교사가 청주지법 앞에서 관련 기록 등을 보이고 있다. 오윤주 기자

 

 

수업시간에 미군 북침설 교육을 했다며, 불법 강제 연행돼, ‘빨갱이 교사’라는 오명 속에 살아온 강성호(59·청주 상당고) 교사가 32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청주지방법원 2형사부(부장 오창섭)는 강 교사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재심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불법 체포·구금 중에 작성된 일부 진술, 경찰 피의자 신문 조서·압수물·압수 조서, 참고인 일부 진술 등은 증거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또 “학생 일부가 수사기관·원심 법정에서 한 진술은, 스스로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내용을, 일부 교사·수사기관이 의도하는 바에 따라 과장해 진술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워 신빙성이 없다. 강 교사가 수업시간에 한 발언은 교육 목적으로 개인 의사를 표명한 정도이며, 반국가단체에 이익이 되거나 이롭게 하려는 게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32년 만에 ‘빨갱이 교사’ 낙인을 벗은 강 교사는 제자를 먼저 떠올렸다.

그는 “저는 이제 누명을 벗지만, 스승을 고발한 고통 속에 살아온 제자는 어떻게 하나요. 체제 유지의 희생양이었던 제자를 용서하고, 따뜻한 손길을 보내달라”고 했다. 이어 그는 “8개월을 감옥에서 보낸 뒤, 1990년 10월 집행유예로 나올 때, 아버지께서 하신 ‘기쁘고도 서글프다’는 말이 떠오른다. 이제 누명을 벗어 기쁘지만, ‘이념’으로 빨갱이 멍에를 씌운 못된 검찰과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살아 있는 게 서글프다. 검찰을 개혁하고, 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교사는 교사 첫 발령 3개월 만인 1989년 5월24일, 제천 제원고(현 제천디지털전자고)에서 일본어 수업을 하다 경찰에 강제 연행돼 수감됐다. 당시 체포영장이나 미란다원칙 고지 등도 없었다.

 

그에게는 수업 때 학생들에게 “6·25는 미군에 의한 북침이었다”고 말하고, 틈틈이 북한을 찬양·고무했다는 등,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씌워졌다. 당시 학생 6명이 강 교사로부터 같은 내용의 수업을 받았다는 내용을 진술했다. 하지만 2명은 당시 결석한 것이 드러났고, 나머지의 진술도 흔들렸다.

강 교사가 구속된 뒤, 제원고 학생 600여명이 집회를 열어 “강 선생님을 좌경용공으로 모는 것은 완전히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1989년 10월 그에게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고, 이듬해 대법원도 형을 확정했다. 그는 ‘북침설 교사’, ‘빨갱이 교사’란 낙인 속에 교단에서도 쫓겨났다.

 

그는 해직 10년 4개월 만인 1999년 9월 복직했고, 2006년 7월 민주화 보상심의위원회는 “수업 때 북한 실상을 보여준 것은 북한을 찬양·고무한 게 아니다”라며,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

하지만 ‘빨갱이 교사’, ‘북침설 교사’라는 오명은 벗지 못했고, 인권·교권도 회복하지 못했다.

 

강 교사는 지난 2019년 5월 국가보안법 위반죄 재심을 청구했고, 지난해 1월부터 재심 재판이 진행됐다. 강 교사는 당시 법정에서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한 제자, 당시 수업 자료, 신문 기사, 참고인 등을 찾는 등, 누명을 벗기 위해 스스로 힘썼다.

강 교사는 지난 6월 결심 공판 최후 진술에서 “통일 의지를 심어주려던 초임 교사의 수업을 ‘좌경 의식화’ 교육으로 매도하고, 결성 초기 전교조 와해 수단으로 삼았다. 이제 양심과 정의를 바로 세워 야만과 광기가 지배하던 시대가 남긴 아픔을 치유하고, 이성과 상식이 통하는 시대를 향해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 강성호 교사 국가보안법 사건 일지. 오윤주 기자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충북지부가 청주지법 앞에서 강성호 교시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전교조 충북지부

 

 

이날 재판 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충북지부는 청주지법 앞에서 강 교사 무죄 판결 환영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강 교사가 1989년 재판장에 들어서며 손바닥에 쓴 ‘진실·승리’라는 글씨를 보였는데, 32년 만에 입증됐다. 당시 진실 은폐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교육계 관계자는 강 교사와 학생들에게 사과하고, 국가는 정신적·신체적 보상을 하라”고 밝혔다. 또 “강 교사의 보안법 무죄 선고로 사법 정의를 세웠다. 이제 보안법을 폐지해, 강 교사 같은 고통이 이 땅에서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