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탈원전 폐기의 무게, 감당할 수 있나

道雨 2022. 2. 8. 09:02

탈원전 폐기의 무게, 감당할 수 있나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일부 야당 대선 후보가 탈원전 정책 폐기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에서 중단된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로 고사 상태인 국내 원자력산업을 정상화시키겠다고 주장한다. 현 정부 출범 이래 국내 원자력계, 야당, 보수 언론들은 탈원전 정책 탓에, 국내 원자력산업이 몰락해 전기요금이 오르고 탄소중립이 불가능해졌다며, 탈원전 반대를 끊임없이 외쳐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현 정부가 출범한 2017년 국내 원자력 발전용량은 22.5GWe(기가와트일렉트릭)이었고, 지금은 23.3GWe이다. 지금도 정부는 원자력 발전소를 계속해서 건설 중이다. 1.4GWe 발전용량의 신한울 1호기가 올해, 2호기가 2023년, 신고리 5호기는 2024년, 6호기는 2025년 차례로 준공될 예정이다. 다만, 그 이후엔 신규 원전 건설이 없는 것이 현 정부 탈원전 정책의 실상이다.

탈원전 폐기 논란의 중심에 있는 신한울 3·4호기는 2017년 초 발전사업 허가를 받고 부지를 매입했으나, 실제 건설은 시작하지 않았다. 현 정부는 출범 직후 신한울 3·4호기 계획을 중지시켰는데, 이를 뒤집으려는 일부 대선 후보들이 건설 재개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오는 5월 새 정부 출범과 함께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곧바로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하면, 국내 원자력산업이 몰락하지 않고, 전기요금도 오르지 않으며, 탄소중립도 가능할 것인가?

1.4GWe 발전용량의 신한울 3·4호기는 건설에만 8~10년 가까이 걸리고, 비용도 10조원 이상 든다. 즉, 다음 정부 임기가 끝나고도 3년이 더 지난 뒤인 2030년에 준공하면 가장 빨리 건설하는 경우가 된다.

 

국내 원자력산업 인프라의 몰락을 막기 위해선, 2~3년마다 10조원 이상을 들여 원전 2기씩을 계속 지어야 한다는 것이 원자력계의 속내다. 신한울 3·4호기 이외에도 다음 정부 임기 중에 추가로 두 호기의 건설을 시작해야 국내 원자력산업 인프라의 몰락을 막을 수 있다는 발상이다. 이는 그 이후로도 2~3년마다 계속해서 원전을 건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순환고리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신한울 3·4호기를 지어야 전기요금 상승을 막을 수 있다는 것도 설득력이 없다. 현재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만 하더라도 건설 비용이 같은 노형의 기존 원전보다 이미 50% 이상 비싸다. 향후 원자력 발전 비용이 비싸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게다가 신한울 3·4호기 건설 뒤 생산한 전기를 서울 등 수요지로 보내기 위한 고전압 송전망 건설 문제도 풀어야 한다. 7년 이상 끌고 있는 밀양 송전탑 사태는 이 문제가 쉽지 않음을 드러낸다.

 

또한 국내에서 재생에너지가 증가하는 가운데 신한울 3·4호기를 추가 건설한다면, 기존의 대형 원전들의 출력을 줄여 운전하는 출력감발 운전에 더하여, 신한울 3·4호기의 출력감발 운전에 따른 더 큰 비용 손실과 안전성 손상이 불가피하게 된다. 더욱이, 8~10년 가까이 걸리는 건설 기간 동안 신한울 3·4호기 건설에 따른 추가 탄소발생 문제도 뒤따른다.

 

한편, 지난 2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원전을 녹색 분류체계(택소노미)로 인정하기 위한 두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2050년까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및 운영 계획 마련, 그리고 2025년까지 ‘사고저항성 핵연료’ 사용 등이다. 후자는 원자력계가 달성할 수 없는 현실적 장벽이다. 원자력을 둘러싼 국제적 환경이 녹록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런 국내외적 배경 아래, 우리도 이제는 탈원전 공방을 넘어, 여야 모두 이견이 없는 탄소중립의 조기 달성을 위해, 어떠한 에너지 조합 전략이 국내 에너지전환을 위해 가장 바람직한 길인지 초당적 지혜를 모을 때다.

 

 

강정민 | 전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