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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당선자, 정치협상 나서야 한다

道雨 2022. 4. 19. 10:35

윤석열 당선자, 정치협상 나서야 한다

 

 

1987년 대선 이후 당선자 지지도는 득표율보다 훨씬 높았다. 당선자를 찍은 유권자들의 지지에 찍지 않은 유권자들의 승복과 기대가 더해졌다. “내가 찍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꽤 많았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당선자가 잘하고 있다는 평가는 대략 50% 선이다. 대선 득표율 48.56%보다 약간 높은 정도다. 인기가 없어도 너무 없다. 이유가 뭘까?

실제로 잘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장관 인사 등 하는 일마다 너무 독선적이다. 당선자 신분으로 대구·경북을 방문해 어퍼컷 세리머니까지 했다. 심했다.

그런데 그게 다는 아닌 것 같다. 윤석열 당선자를 찍지 않은 유권자 상당수는 요즘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내 판단이 틀렸을 리 없다. 그런데 윤석열 당선자가 당선됐다. 따라서 윤석열 당선자는 잘할 리가 없다.”

삼단 논법 비슷하다. 일종의 유권자 불복 심리다.

 

사실은 이재명 후보가 당선됐어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훨씬 더 심각했을지도 모른다. 윤석열 후보를 찍은 사람들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해 나라가 시끄러웠을 것이다.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후보가 앞서 있었기 때문이다.

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유권자가 늘어나는 현상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2020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한 미국 유권자들은 폭동을 일으켜 국회의사당을 점령했다.

이유가 뭘까? 확증 편향 때문이다.

정보화 혁명은 대략 2000년부터, 모바일 혁명은 대략 2010년부터 시작됐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모든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모바일로 무장한 사람들은 “나는 똑똑하다”는 착각에 빠졌다. 그런가? 검색은 지식이 아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안에 들어갔다고 학자가 되지는 않는다.

여기에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의 추천 알고리즘이 사람들을 점점 더 극단으로 몰고 갔다. 사랑보다 증오가, 인정보다 질투가 인간의 원초적 감정에 가깝다. ‘분노는 나의 힘’인 셈이다. 영국의 브렉시트, 미국의 트럼프 당선이라는 황당한 사건이 2016년에 벌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확증 편향 심화로 인한 민주주의 붕괴에는 아직 처방이 없다. 모바일을 손에 들고 분노에 가득 찬 사람들에게 숙려와 숙의를 기대하기는 당분간 어렵다. 어쩌면 지금 우리도 바로 그 함정에 빠진 것 같다.

더불어민주당이 다소 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검찰 수사권 분리 법안을 밀어붙이는 배경에는 검찰개혁을 강하게 요구하는 지지층의 압력이 있다.

윤석열 당선자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지명으로 맞불을 놓은 것은,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을 절대 악으로 보고 감옥에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지지층 때문일 수 있다.

 

이대로 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민주당은 법안 처리를 강행할 것이다. 검찰은 집단 사표로 맞서고, 사법 시스템은 멈출 것이다. 국회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은 부결될 것이다. 그다음 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도 부결될 것이다.

5월10일 대통령 취임식은 하겠지만, 윤석열 정부는 제대로 출범하지 못할 것이다. 6월1일 지방선거는 국민의힘이 이길 것이다. 그래 봐야 무슨 소용일까? 국정은 파탄으로 치달을 것이다. 피해는 온 국민이 입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이런 사태를 막을 수 있을까? 정치인들이 나서야 한다.

첫째, 자기 지지층을 설득해야 한다. 분노를 끝없이 키우면 공동체가 무너지고, 공동체 구성원은 모두 피해자가 된다는 자명한 이치를 설명해야 한다.

둘째, 대화하고 타협해야 한다. 지금 당장 정치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여야 대표성을 가진 당사자와 실세들이 참여해서 전권을 가지고 협상해야 한다. 윤석열 당선자, 이준석 대표, 권성동 원내대표, 윤호중·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 박홍근 원내대표가 나서면 좋을 것 같다. 정의당도 참여해야 한다.

코로나 피해 보상, 여성가족부 폐지, 검찰 수사권, 국무총리 임명동의안, 한동훈 장관 후보자 지명 등 모든 현안을 의제로 올려야 한다. 합의문도 공표해야 한다.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해야 한다. 정치가 법치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여야가 대화하고 타협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파멸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성한용 |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