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정치의 사법화, 사회의 사법화

道雨 2022. 9. 7. 09:51

정치의 사법화, 사회의 사법화

 

 

 

 

첨예한 정치적 쟁점에 대한 법원의 적극적 판단이 나올 때마다 언급되는 개념이 ‘정치의 사법화’다.

“대한민국이 사법의 과잉지배를 받고 있다. (…) 정치의 사법화가 위험수위를 넘었다.”

 

최근 법원의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결정에 대한 비판 같지만, 아니다. 2020년 12월 법원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 징계처분은 위법하다고 판단한 직후 나온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의 발언이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자신들이 추진하는 절차가 법원에 의해 막힐 때면 정치의 사법화를 언급한다. 법원의 견제가 반대 세력을 향했을 때는? ‘사법의 독립’이라 칭송한다.

한국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된 지 20년이나 된 정치의 사법화 개념이 이처럼 도구적으로만 활용되다 보니 엄밀한 분석도, 대안에 관한 논의도 척박하다.

 

개념부터 시작해보자.

 

정치의 사법화에 대한 전통적 정의는 이렇다. ‘국가의 주요한 정책이 사법부에 의해 결정되는 경향.’

선출된 대의기구가 판단해야 할 정책적 문제를 소수 사법 엘리트들의 판단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 요체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 대통령의 주요 공약이자 여야 합의로 국회에서 통과된 행정수도 이전 관련 법률을, 조악한 법논리에 근거해 위헌으로 판단했다. 행정부와 입법부가 합의해 결정한 핵심 정책이 단 9명의 법률가에 의해 무력화된 사건. 정치의 사법화가 한국 사회에서 대중화된 계기였다.

 

용어가 널리 쓰이며 정치적 쟁점에 대한 법원 판단 모두를 정치의 사법화라고 비판하는 잘못된 경향이 생겼다. 최근 사례만 보아도 검찰총장 징계처분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정책에 대한 판단이 전혀 아님에도 정치의 사법화라는 딱지가 붙었다.

 

이번 국민의힘 가처분 결정도 마찬가지다.

 

법원은 헌법상 자율성이 보장된 대학을 비롯해 다양한 결사체 내부 문제에 대한 판단을 해왔다. 결사체가 정당이라고 해서, 즉 내용(정책)이 아닌 주체(정치인, 정당) 때문에 ‘판사가 정치를 한다’고 비판할 수는 없다.

 

정치의 사법화 개념이 이처럼 느슨하게 쓰이다 보니 비판도 엉성하다. ‘사법 자제론’이 언급되지만, 번지수가 틀렸다. 사법 자제론국방이나 외교 등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대해 사법적 판단이 자제되어야 한다는 이론일 뿐이다. 정당은 해당 사항 자체가 없다.

 

결론만 놓고 보아도 사법부가 판단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인데, 입법·행정과 달리 정해진 기간 안에 접수된 사건을 판단하는 것이 사법부의 숙명이자 미덕이다.

자제론이 활성화되면, 마치 검찰의 기소편의주의처럼 법원이 판단 여부나 시기를 자의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되고, 사법의 권한은 오히려 확대될 것이다.

 

국민의힘 가처분 결정을 보고 많은 이들이 느낀 놀라움의 본질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사법부)이 국회를 대신해 정책을 만들어서가 아니었다. 여당의 지도체제가 법원의 칼끝에 놓이게 된 상황이 낯선 것이었다.

주목하고 분석해야 할 대상은 법원이나 국회가 아니라, 모든 분쟁을 사건화해서 법관에게 갖다 바치는 사회다.

 

 

스웨덴의 정치학자 토르비에른 발린데르는 1990년대 후반 정치의 사법화 개념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당과 이익단체 등이 목표달성 수단으로 사법적 절차에 의존하는 정도가 높아지고, 무·유죄 여부나 권리관계 존부를 따지는 사법적 결정 방식이 법원을 넘어 다른 영역으로 확산하는 현상을 포착하고, 이를 ‘넓은 의미의 정치 사법화’라고 명명했다. ‘사회의 사법화’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검찰총장과 여당 대표와 같은 이들의 권력투쟁부터 유명 연예인의 미술작품 대작 여부까지 모든 쟁점이 법원에서 최종 판단되는 우리의 현실 역시, 정치를 넘어 사회까지 사법화되었다는 평가가 과하지 않다.

 

‘분쟁 해결이 사법부 역할이고 그걸 한다는데 뭐가 문제인가’라는 반문은 가능하다. 법원이 최후의 보루가 아니라 민원센터가 되는 순간 생기는 수많은 문제 중 하나만 지적하면, 사회의 다른 영역이 위축되는 것이다.

법원은 범죄자를 처벌할 수 있을 뿐, 피해자를 지원하고, 범죄로 파괴된 공동체를 복원하지 못한다. 사법화된 사회는 높은 처벌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갈등은 고소·고발로 이어지고, 검찰과 법원만이 정의의 심판자로 우뚝 선다.

 

이제 사회의 사법화를 어떻게 분석하고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임재성 |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