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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시간, 참담한 대통령 신뢰도

道雨 2022. 10. 6. 09:27

위기의 시간, 참담한 대통령 신뢰도

 

 

 

 

세계금융시장이 한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안하다. 예상을 뛰어넘는 미국의 공격적 금리인상이 세계를 흔들어놓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유럽 상황 역시 살얼음판 같다. 겨울은 닥쳐오는데 가스관이 파괴되고 러시아의 핵 사용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발 한번 삐끗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시간이다. 채권과 주식 가격 그리고 환율의 변동폭이 워낙 크기 때문에, 수십조원을 운용하는 투자자들의 신경이 곤두서 있다. 어느 곳에서 불안 조짐이 보이면 바로 ‘패닉 셀’, 공포 투매에 나설 수 있다.

 

이런 위기 상황을 넘기는 데 특히 중요한 것이 정책 일관성과 정부 신뢰도다. 불확실의 시기에는 사람들의 예상이 중요하고, 정부나 정책에 대한 신뢰가 그 예상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만약 물가와 환율 안정을 위한 정부 대책에 신뢰가 가지 않으면, 사람들은 환율이 계속 상승할 것으로 보고 달러를 더 매입할 것이다. 그러면 환율과 물가는 더 올라가고 악순환은 반복된다. 지난 2주일 동안 영국 보수당 정부가 그 위험을 분명히 보여줬다.

 

갓 출범한 트러스 정부는 ‘공급측 경제학’이라는 철 지난 보수 경제이론에 기대어, 약 70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감세정책을 발표했다. 고소득층 최고세율 인하, 법인세 인상 보류, 금융소득세 및 부동산 취득세 인하 등을 내세웠다. 이런 감세가 투자와 생산을 촉진하고 결국은 세수도 늘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장의 평가는 정반대였다. 시장은 대규모 세수 감소와 국채 발행 증가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투자자들이 영국 국채 매각에 나서면서 국채가격이 급락했고, 파운드화 가치도 37년 내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국제신용평가사는 영국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고, 기축통화국인 영국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까지 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위기의 시간에 어울리지 않는 정책이 경제를 어떻게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고 세수를 확보해야 하는 시기에 대규모 감세정책을 채택한 것이 잘못이었다. 이례적으로 국제통화기금까지 나서 감세정책이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인플레이션 억제와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도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논평했다. 정권지지율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결국 정부는 일부 정책을 철회했다.

 

문제는 지금 윤석열 정부도 영국과 매우 비슷한 감세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낮추고, 고소득자 세금인하 폭을 늘리고, 금융소득과 부동산 관련 세금을 대폭 낮추겠다고 한다. 5년간 누적 감세규모는 영국과 비슷한 50조원 규모다. 윤석열 정부가 줄기차게 외치는 ‘자유’ 시장경제도 사실은 영국 보수당이 채택한 ‘공급측 경제학’과 같은 것이다. 수십년 전 이미 실패로 판명된 이론이다.

이번 영국 사태를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위기의 시간에 감세는 결코 바람직한 정책이 아니며, 경제를 더욱 위태롭게 만드는 이념적 정책일 뿐이라는 것을. 그런데도 우리 경제가 위기까지 가지 않은 것은 10여년간 길러진 기초체력 덕분이다.

 

원-달러 환율은 1300원 안팎에서 순식간에 1440원까지 상승했다. 미국의 급속한 금리인상 때문이라고 하지만, 지난 8월과 9월 두달 사이 원화 가치는 다른 통화에 비해 훨씬 더 큰 폭으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주요국 통화의 가치는 달러 대비 평균 5.9% 하락했는데, 원화는 거의 2배에 가까운 10.4% 하락했다. 에너지가격 충격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는 유로 하락률 4.2%보다 훨씬 크고, 심지어 영국 파운드화 하락률보다도 크다.

 

정부는 이런 환율 상승이 외국인보다는 우리 국민의 외환 매입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다시 말하면 정부의 물가·환율 안정책을 국민이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부 신뢰도에 관한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정부에 대한 국민 신뢰는 대통령에 대한 신뢰에 따라 증폭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 정부 신뢰도 하락 요인의 효과가 더 커진다는 것이다.

방미 기간 중 대통령의 비속어 사용에 대한 해명은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를 참담한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경제를 위해서라도 정직함이 절실히 필요한 시간이다.

 

 

 

박복영 | 경희대 교수·전 청와대 경제보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