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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외교’에 국가 명운 맡길 수는 없다

道雨 2022. 10. 17. 09:26

‘아마추어 외교’에 국가 명운 맡길 수는 없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2일 ‘국가안보전략’을 설명하는 연설에서 주목할 만한 비유를 했다. 현재 상황이 2차 세계대전 직후와 같은 국제질서의 큰 변곡점이라는 것이다.

그는 1947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전후 국제질서를 정립했던 것처럼, 조 바이든 대통령도 새로운 국제질서의 틀을 세울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는 “트루먼은 마셜 플랜과 나토를 만들었으며, 국제사회에 대한 미국의 관여의 조건을 설정했다”고 밝혔다. 설리번이 이날 ‘냉전’이나 ‘봉쇄 전략’이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청중에게 이를 연상시키려는 의도가 분명해 보였다.

1947년은 사실상 냉전이 시작된 해이며, 트루먼이 이때 대소련 봉쇄 전략의 큰 틀을 짰기 때문이다.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은 새 행정부가 대외전략을 천명하는 문서다. 바이든은 이 문서에서 “탈냉전의 시대는 분명히 끝났다”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신냉전’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상대는 중국이다.

문서는 “중국은 국제질서를 재편하려는 의도와 그 목적에 다가가기 위한 경제·외교·군사·기술적 힘을 가진 유일한 국가”라고 지목했다. 이어 중국과의 경쟁은 모든 지역과 경제, 기술, 외교, 개발, 안보, 글로벌 거버넌스 전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 문서와 설리번의 연설문을 보다 보면, 미국이 75년 전 소련을 상대로 펼쳤던 봉쇄 전략을 지금 중국에 펴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문서는 외교안보적으론 오커스와 쿼드, 경제적으론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는데, 이는 트루먼의 나토, 마셜 플랜과 유사하다.

물론 중국과 세계 경제의 상호의존성이 매우 깊은 탓에, 봉쇄 전략보다는 중국을 첨단산업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기술 디커플링(분리)’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핵심 전장이 유럽에서 아시아로 바뀐 점만 다를 뿐이다.

 

특히 이 문서는 앞으로 10년이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의 조건을 설정할 “결정적 시기”가 될 것으로 규정했다. 지금 저지하지 않으면 중국의 경제력과 기술 수준이 미국을 추월할 수도 있으리라는 불안과 초조감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이 최근 ‘반도체와 과학법’과 ‘인플레 감축법’을 시행하고, 중국에 반도체 제조장비의 수출통제를 대폭 강화한 것은, 미국이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섰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미-중 신냉전의 직접적 피해를 본다는 점이다. 미-중 대결이 첨단기술을 무대로 펼쳐지고 있어, 이 산업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견줘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전기차 차별대우로 이미 현대차가 영향을 받고 있는 데 이어, 반도체 제조장비 수출통제로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의 중국 사업 차질이 우려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배터리와 바이오산업 등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이런 국제질서의 대전환기에 우리는 과연 제대로 대응할 태세가 돼 있는가. 전기차 문제의 적기 대응에 실패한 데 이어, 반도체 분야에선 ‘1년 유예’라는 땜질식 처방만 이뤄졌다. 1년 이후엔 어떻게 될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중장기 사업 전망이 불확실하면 기업은 투자 결정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 일각에선 ‘1년 유예’가 마치 미국이 우리를 배려해준 것처럼 받아들이는데 어이가 없다.

 

현 정부 대외정책의 컨트롤타워는 이미 역량의 한계를 드러냈다. 국가안보실과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순방 외교 때 의전과 일정 조정 등 기본적인 것조차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고, 대통령은 실수를 했다.

그런데도 적반하장식으로 잘못을 외부 탓으로 돌리고, 언론사 재갈 물리기에 나서고 있다. ‘이×× 논란’ 사건에 대한 대응 방식을 보면, 마치 안데르센 동화 속 ‘벌거벗은 임금님’과 ‘신하들’을 보는 듯하다. 컨트롤타워의 이런 ‘신뢰의 위기’를 더 방치할 여유가 우리에겐 없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이 실수는 ‘쿨하게’ 인정하고,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함으로써 리더십을 되찾아야 한다. 그리고 초당적으로 지혜를 모아 엄혹한 신냉전 시대를 헤쳐나갈 대외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

 

외교안보팀의 인적 쇄신은 불가피해 보인다. 내치를 잘못하면 어떻게든 수습할 기회가 있으나 외교는 그렇지 않다. 자칫 발을 잘못 디디면 국가의 운명이 달라지고 그 대가는 국민들이 치른다.

 

대통령이 ‘외교 초보’인 만큼 참모진이 이를 보완해야 한다. 역대 정부 중 최약체로 평가되는 현 외교안보팀에 국가의 명운을 맡길 수는 없다.

 

 

 

 

박현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