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왜 졌는지도 모르는 사람들

道雨 2022. 10. 17. 09:34

왜 졌는지도 모르는 사람들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 10년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불평등을 키웠다.’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비판일 게다. 특히 진보진영 내부에서 많이 나온 비판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그 10년간 불평등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유가 정말 민주정부 10년 때문이고 신자유주의적 정책 때문이란 말인가?

 

민주당 정책통으로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지낸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최병천은 최근 출간한 <좋은 불평등>에서 그건 잘못된 속설이라며 “진짜 이유는 중국의 급성장과 한국 대기업의 수출 대박 때문”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수출=좋은 것, 불평등=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수출이 잘되면 불평등이 커지고 수출이 작살나면 불평등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독자들께서 이 책을 직접 읽어보실 걸 권하는 뜻에서 왜 그렇게 되는지 자세한 설명은 건너뛰겠다.

 

이 책은 이처럼 ‘한국 경제 불평등에 관한 기존의 잘못된 통념 뒤집기’를 시도하는데, 신선하거니와 흥미진진하다.

 

‘통념 뒤집기’ 사례를 하나 더 감상해보자.

 

일부 보수언론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좌파적’이어서 실패했다고 공격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실패했다는 진단엔 동의하지 않을 사람들이 있겠지만, 2022년 대선에서 컷오프를 통과한 민주당 경선 후보 6명 가운데 소득주도성장론을 계승하겠다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는 최병천이 주목하는 건 실패한 원인이다.

‘진짜 하층’을 위한 정책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 사회의 진짜 하층은 노동조합 조합원 중에 있지 않다”며 “진짜 하층은 오히려 대한노인회 회원 중에 압도적으로 많이 몰려 있다”고 말한다.

 

그는 한국의 실제 불평등 구조와 진보세력이 인식하는 계급론의 틀이 부조화를 이루고 있음에도, 진보세력은 비노동(노인)을 하나의 계급으로 이해하지 못한 채 ‘진짜 하층’과 대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최병천은 그런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서 한국 대기업의 성공 원인을 ‘약탈’의 결과로 보는 기존 시각에도 강한 이의를 제기한다. 정경유착과 정권의 특혜, 협력업체에 대한 불공정 거래만으로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대기업들이 ‘글로벌 차원’에서 성공한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는 상층이든 하층이든 ‘상향 이동’을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상층이 더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에 반대하는, 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도와주는 억강부약 시각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는 주장이다.

 

최병천의 이런 일련의 ‘통념 뒤집기’에 반론을 펼 사람들이 많을 게다. 아니 많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과연 무엇이 잘못된 건지 알고 싶어하지 않을까? 아니면 소득주도성장은 성공했다는 반론을 듣고 싶어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런 논쟁은 거의 없다.

민주당은 다시 전의를 불태우면서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판과 공격에만 치중할 뿐, 자신들이 과거에 했던 주장엔 아무런 오류가 없었다는 듯 어떤 성찰의 말도 하지 않는다.

 

서로 편을 갈라 싸우는 기존 ‘진영 전쟁’ 모델이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고 하더라도, “상대편이 잘못해서 이기는 것”과 “우리가 잘해서 이기는 것” 사이에서 최소한의 균형은 필요한 게 아닐까?

 

최병천은 최근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1일 1망언’을 하는지 알고도 그를 뽑았다. 왜 그랬을까? 민주당과 민주당 대선 후보가 더 걱정됐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이어지는 말을 더 들어보자.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더 왼쪽으로’ 가거나, ‘더 많은’ 현찰을 나눠주는 게 아니다. 실제로 지난 대선 시기 민주당이 자체 발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2030세대의 65%가 기본소득을 반대했다. 현재 민주당과 이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더 신뢰감을 주는’ 정책 행보다.

 

탁견이다. 평범한 상식으로 여겨져야 마땅하겠건만, 민주당엔 대선에서 왜 졌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탓에 탁견이 되고 말았다.

 

민주당은 여전히 ‘윤석열 때리기’에만 집중할 뿐, ‘더 신뢰감을 주는’ 정책 행보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공격을 위해 신뢰를 훼손하는 일마저 하는 건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상대편에 대한 증오와 내부의 ‘충성 경쟁’이 신뢰를 가볍게 여기도록 만들었을까?

많은 유권자가 염증을 낸 민주당의 내로남불은 바로 신뢰의 문제임을 직시하면 좋겠다.

 

 

 

강준만 |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