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레고랜드’ 끌어들인 권력싸움, 그런 정치는 반드시 실패한다

道雨 2022. 10. 24. 09:22

‘레고랜드’ 끌어들인 권력싸움, 그런 정치는 반드시 실패한다

 

 

* 레고랜드 전경. 박수혁 기자

 

 

20대 대통령선거에서 윤석열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직후인 3월11일치 이 코너에 ‘“말 위에서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란 제목의 글을 썼다. 중국 한나라를 세운 고조 유방에게 그의 참모인 육고가 한 말을 그대로 딴 제목이다. 육고는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쓰던 방식으로는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수 없다고 유방에게 고언했다.

그의 말대로,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도 취임하면 지난 정권과 싸우기보다 당면한 문제에 맞서달라고 주문했다. 헛된 글이 되고 말았다.

윤 대통령은 여전히 과거와 싸우는 데 여념이 없다. 국민을 고통스럽게 하는 경제난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주현 금융위원장,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일요일인 23일 한자리에 모여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었다. 회사채와 기업어음 등을 통한 기업 자금 조달 시장이 극도로 불안정해졌기 때문이다.

 

회사채 시장부터 보자. 금융투자협회 집계로 보면 21일 회사채(AA급, 3년 만기) 금리는 연 5.736%로 전날보다 0.148%포인트나 올랐다. 소용돌이의 중심에 한국전력이 발행하는 한전채가 있다.

한전은 올 들어 21조8천억원어치를 발행했다. 이로 인해 한전채 금리가 급등하며 역대 최고치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한전채는 신용등급이 최상위인 트리플에이(AAA)인데, 3년 만기짜리 금리가 21일 연 5.8%대에 이르렀다. 2009년 세계 금융위기 때의 4.5%를 크게 뛰어넘고 있다.

 

한전이 대규모 채권 발행에 나선 것은, 올해 큰 폭의 적자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정부가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여전히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때리기에 ‘올인’하다시피 하고 있다. 월성 1호기 한곳 폐쇄가 사실상 전부인 문재인 정부 때의 탈원전이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라고 공격하고 있으니, 진짜 원인인 연료 가격 상승을 전기요금에 거의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한전의 자본이라도 신속히 확충해야 할 텐데, 그런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신용도가 매우 높은 한전채가 시중 자금을 ‘싹쓸이’해가면서, 신용도가 낮은 회사채는 명함조차 내밀기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다.

 

기업어음(CP) 시장에 폭탄을 터뜨린 것은 국민의힘 소속인 김진태 강원도지사다.

강원도는 최문순 지사 시절 강원중도개발공사를 통해 레고랜드 테마파크 개발에 뛰어들었고, 이를 위해 조달한 2050억원의 지급을 보증했다. 그런데 6·1 지방선거에서 새로 당선된 김 지사가 9월 말에 못 갚겠다고 선언해버렸다.

자금 조달을 위해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발행한 특수목적회사는 부도가 났다. 이 기업어음은 증권사 10곳, 자산운용사 1곳이 나눠서 보유하고 있다.

 

강원도의 연간 예산은 8조원대다. 그런 지방자치단체가 지급보증을 해 최고 신용등급(A1)을 받은 기업어음이 부도나리라고 생각한 투자자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김 지사는 “(레고랜드 테마파크 개발) 사업이 불투명했다”며, “불의와 불공정을 강원도에서 뿌리뽑겠다”고 했다.

명분이 무엇이든, 시장의 신뢰를 깨버리는 그런 행동이 기업어음 시장을 마비시킬 것임을 전혀 몰랐던 것일까?

 

지방자치단체가 지급보증해 신용도를 높인 유동화증권이 올해 상반기에만 1조3천억원어치에 이른다. 강원도는 레고랜드 개발용 2050억원만이 아니라, 이들 유동화증권 모두의 신용을 위험에 빠뜨렸다.

지자체가 보증한 것조차 돈을 못 받게 될 위험이 커진 형편에, 증권사들이 건설사가 지급보증한 기업어음 인수를 기피하는 것은 당연하다.

 

금융위원회가 채권시장 안정펀드를 재가동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서자, 김 지사는 21일 “예산을 편성해 늦어도 내년 1월29일까지 강원도가 상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번 무너진 신뢰가 회복되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권력 쟁탈전에는 능한 사람들이 문제 해결 정치에는 그야말로 ‘꽝’인 경우가 있다.

그런 사람들은 갈등을 조정해 새로운 협력을 조직하려는 노력보다는, 적을 지목하고 맞서 싸우는 것으로 정치를 대체하려고 한다.

그런 정치는 반드시 실패한다.

 

신자유주의 이념을 내세워 고소득층과 기업 감세를 추진했다가, 영국 채권과 파운드화 가치를 폭락시킨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취임 45일 만에 사임한 것이 바로 그런 사례다.

 

 

 

정남구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