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노인빈곤 해결 위한 연금개혁의 원칙

道雨 2022. 12. 23. 10:27

노인빈곤 해결 위한 연금개혁의 원칙

 

 

 

우리나라 노인들은 심각한 빈곤에 고통받고 있다.

2020년 기준 노인빈곤율(중위소득 50% 미만)은 40.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가장 높다. 이웃나라 대만과 일본의 노인빈곤율도 각각 23%와 20%로 우리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런 빈곤은 노인들이나 그 가족 잘못이 아니다. 한국 사회가 걸어온 고도성장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1970년 100억달러에서 2010년 1조2900억달러로 129배 증가했다. 1970~1990년대 경제활동을 한 뒤 은퇴한 현재 노인들이 한국 고도성장의 빛나는 주역이다.

그러나 이들은 고도성장의 과실을 나누는 과정에서 배제됐다. 이들이 당시 아무리 성공했더라도, 100배 이상 팽창한 경제에서 근로하는 세대의 소득을 따라잡기는 어렵다. 성장하는 경제에서 노인들이 근로세대에 비해 빈곤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유럽의 선진국들도 2차 세계대전 이후 비슷한 경험을 했다. 1950~1960년대 이들 국가는 고도성장으로 전후 대량빈곤을 해결하고 풍요로운 사회를 마련했다. 하지만, 전쟁 피해자이자 전후 사회재건에 온몸으로 헌신했던 노인세대들은 사회적 풍요에서 소외돼 빈곤 상태를 벗어날 수 없었다.

 

이 나라들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연금제도를 혁신했다. 선구자였던 독일은 1958년 개혁으로 공적연금 급여수준을 근로세대 평균소득의 34%에서 50%까지 대폭 인상했다. 그 결과 이들 나라의 노인빈곤율은 일반 국민 빈곤율보다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공적연금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 국민연금 제도는 너무 늦게(1988년) 도입됐고, 제구실을 하기도 전에 급여수준이 대폭 삭감됐다. 또 여성과 비정규직 노동자 등 취약한 사람들은 제도적으로 배제한다. 이 결과 현재 국민연금은 노인 46%에게만 급여를 지급하고 있으며, 급여액도 월평균 53만원에 불과하다.

 

또 다른 공적연금인 기초연금도 급여액이 30만원에 불과해 빈곤 완화 효과가 크지 않다. 서구 복지국가가 약 60년 전에 구축한 공적연금 제도를 우리나라는 아직도 정착시키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연한 노인빈곤은 전혀 놀라운 것이 아니다.

 

최근 본격화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 연금개혁에 있어서 세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첫째, 연금개혁의 우선적 목표는 공적연금의 노후소득보장 기능을 강화하는 데 둬야 한다. 이번 개혁에 참여한 다수 전문가와 관료들은 연금재정의 지속가능성 강화를 우선적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여파로 연금재정의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다한 연금지출 우려는 다소 과장됐다.

2020년 우리나라 공적연금의 총지출 규모는 국내총생산의 3.7%(국민연금 1.5%, 특수직역연금 1.3%, 기초연금 0.9%)로 오이시디 국가 중 가장 낮다. 고령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2040년 연금지출 규모도 7.8%(국민연금 4.2%, 특수직역 1.6%, 기초연금 2%)로 오이시디 평균(10.2%)보다 낮다.(국회 예산정책처 ‘4대 공적연금 장기 재정전망’, 국민연금연구원 ‘공적연금제도 개선 방안’)

 

둘째, 현재 소득 하위 70%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 급여를 40만원으로 인상하고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기초연금보다 국민연금 급여 인상이 노후소득보장 강화에 더 안정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국민연금 급여 인상은 그 효과가 현 노인에게는 미치지 못한다. 또 전체 경제활동가능인구의 55%만 국민연금에 가입돼 미래 노인에게 미치는 효과도 제한적이다.

반면에 보편적 기초연금은 현 노인들의 경제적 곤란을 해소하면서 국민연금을 받는 사람들의 낮은 급여를 보완할 수 있다.

 

셋째, 재정 안정화를 위해서는 보험료 인상에 앞서 공무원연금·군인연금·사학연금 등 특수직역연금 추가적 개혁에 나서야 한다. 2020년 기준 노인 인구의 약 5%를 차지하는 특수직역연금 수급자에게 국민연금과 비슷한 수준인 국내총생산의 1.3%를 사용하고 있다. 이런 극심한 불공정은 어느 정도 시정돼야 한다.

 

공적연금은 사회발전에 평생을 공헌한 노인세대가 은퇴 뒤에도 증가하는 경제적 부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가장 유력한 수단이며, 이런 게 가능한 나라를 우리는 복지국가라고 부른다. 지체된 공적연금의 발전을 앞당기지 않고 우리나라가 복지국가가 되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김원섭 |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차기 한국연금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