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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와 피해자 뒤바뀐 강제징용 해법…"구걸 외교"

道雨 2023. 2. 2. 11:07

가해자와 피해자 뒤바뀐 강제징용 해법…"구걸 외교"

 

 

 

윤 정부 ‘성의 표시 좀 해달라’ 일본에 매달려

일본, 배상금 대신 변제에 구상권 포기도 요구

시민단체들 항의 시위 “구걸외교 중단하라”

 

 * 31일 오전 광주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와 광주전남역사정의평화행동이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강제동원(징용) 해법을 규탄하고 있다. 2023.1.31 연합뉴스

 

 

 

시민단체들 항의시위 “구걸외교 당장 중단하라”

 

“굴욕적 매국협상 중단하라!” “굴욕적 강제동원 정부해법 폐기하라!”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과 겨레하나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30일 오후 일제 강제동원(징용) 피해자 배상과 관련한 한일 국장급 협의가 진행되는 서울 외교부 청사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다.

이들 단체는 “피해자들의 편에 서서 끝까지 싸워야 할 정부가, 전범 기업의 법적 책임을 사실상 면제시켜주려고 한다”고 비판하고, 윤석열 정부에 협상 중단을 요구했다.

 

항의 움직임은 31일에도 이어졌다.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94) 할머니와 광주전남역사정의평화행동 등 광주 지역 23개 시민사회단체가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구걸 외교 중단”을 촉구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특히 양 할머니는 “우리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하는 정부가 한국 일을 하는지, 일본 일을 하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짓을 하고 있다”며 윤 정부를 질타했다.

 

 

가해자와 피해자 뒤바뀐 윤 정부 강제징용 해법

 

강제징용 피해자와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발에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

윤 정부가 마련한 해법의 내용은 물론이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정부와 협상해오는 과정에서도 윤 정부의 일관된 대일 저자세가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일제 식민지 지배와 전쟁 범죄의 가해자인 일본이 ‘갑’이고, 그 피해자인 한국이 ‘을’이란 착각이 들 정도다.

 

지난 12일 외교부 주최 공개토론회에서 윤 정부가 내놓은 강제징용 해법은, 피고인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 등 가해 전범 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내용이다.

한국 대법원의 2018년 확정판결에 따른 위자료(배상금)를, 가해 기업들이 아닌 제3자가 대신해서 원고인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갚겠다는 것이다. 그 재원은 행정안전부 산하 공익법인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이 한국 기업들의 기부를 받아 조성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강제징용 문제는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다 끝났다는 일본의 “일관된 입장”을 완벽하게 배려한 방안이라는 평가가 가능하다. 일본은 청구권협정에 따라 한국에 유무상 5억 달러를 지불한 것을 끝으로 강제징용 문제는 “최종적으로 완전히” 해결됐다고 주장한다.

강제징용 등 일제 강점기 불법행위에 대해 전범 기업들이 사과하거나 배상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게, 지금까지 일본 정부의 한결 같은 입장이다.

 

당연히 피해자들과 관련 시민단체들의 반발이 뒤따랐다. 윤 정부가 일제 강점기 강제노역이라는 불법행위에 따른 사죄와 배상 문제를, ‘돈만 받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식의 단순한 채권과 채무 관계로 변질시켰다는 비판이 나왔다.

대다수 한국 언론들도 비판적 사설로 가세했다.

 

 

윤 정부 ‘성의 표시 좀 해달라’ 일본에 매달려

 

예상보다 부정적인 여론에 당황한 윤 정부는, 지난 16일 부랴부랴 대일 협상책임자인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을 도쿄로 급파했다. 서 국장은 카운터파트인 후나코시 다케히로 일본 아시아대양주 국장에게 한국 내 여론의 심각성을 전하고, 일본에 ‘성의 표시’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피고인 가해 전범 기업의 배상 참여와 사죄와 관련해 뭔가 일본의 진전된 조치가 있어야 한국 내 여론을 돌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리고 다시 2주만인 30일 서울에서 서민정-후나코시 간에 한일 국장급 협의가 있었으나, 여전히 일본의 변화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일본 언론들의 보도를 종합하면, ‘성의 표시’와 관련해 기시다 정부가 고려하는 것은 대략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재단에 피고 전범 기업이 아닌 일본 기업이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방안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피고 기업들이 가입해 있는 게이단렌(일본 경제단체연합회)이 기부함으로써, 피고 기업이 우회적으로 재원을 출연하는 모양새를 갖추는 방안도 있다.

그러나 이런 방안들은 어디까지나 편법이다. 불법행위로 인한 피고 전범 기업의 배상 책임을 어떻게든 면제해주려는 것이어서다.

더욱이 기시다 정부는 일본 기업이 기부에 참여할 경우, 먼저 배상금을 대신 갚게 될 재단이 추후 피고 기업을 상대로 ‘구상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명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완전한 면죄부를 받겠다는 얘기다.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을 받아낸 양금덕 할머니는 “잘못한 사람이 사죄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일본이 아닌 한국 돈이 조금이라도 섞여 있으면 절대로 받지 않겠다”고, 피고 기업의 직접적인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다.

 

 

일본, 배상금 대신 변제에 구상권 포기도 요구

 

둘째는 강제징용에 대한 사죄 부분이다. 일본은 피고 기업의 사죄나 사과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한 강제징용과 관련해 일본 정부 차원에서 ‘새로운’ 사죄나 사과도 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점을 거듭 분명히 하고 있다.

다만 아시아 국민들을 상대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했던 1995년 무라야마 담화나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계승하겠다는 뜻을 밝히는 선에서 매듭지으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셋째는 한국이 ‘배상금의 대신 변제와 구상권 포기’를 공식으로 확정한다면, 그때 가서 한국 대법원 판결에 대한 보복이었던 한국의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명단, 수출관리우대대상국)배제 조치를 원래대로 환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한국이 요구하는 ‘성의 있는 호응’과 관련해,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재지정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일본이 검토 중인 이 같은 대응 조치들을 보면 ‘성의 표시’라고 할만한 내용을 찾기 어렵다. 달라진 게 사실상 아무 것도 없고, 윤 정부에게 ‘일방적 수용’을 압박하고, 윤 정부는 끌려다니는 모양새를 연출하고 있다. 

 

이에 대해 광주전남역사정의평화행동은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 피고 기업들은 대한민국 법원의 판결에 따라 배상 명령을 조속히 이행해야 할 대상이지, 성의를 구걸하거나 호응을 사정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라며 “피해자를 욕보이는 구걸 외교를 당장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이유 에디터yooillee22@daum.net